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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6월 01일 12시 21분 KST

[인터뷰] "주민번호가 1로 시작되니까.." 하리수가 15년간 차별금지법 위해 힘쓴 속내를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단단하고 깊은 사람인지가 느껴진다

하리수는 차별금지법이 여야의 정 치논리 너머에 있는 문제임을 강조했다.

한겨레
하리수가 5월 26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차별금지법(평등법)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리수는 거기 있어야만 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4월28일)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면담(5월11일) 자리에서 조명은 그에게 집중됐다. 트랜스젠더로서 그의 존재와 정체성 자체가 절실하게 차별금지법을 요청하고 있었고, 연예인이라는 그의 직업은 사회 여론을 환기하는 데 더없이 긴요했다.

그러나 그의 ‘출현’은 긴장감을 자아냈다. 사실 그가 거기 있어야 할 이유와 긴장을 자아내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는 특별하면서 예외적인 존재로, 차별금지법을 겨누는 적대의 꼭짓점 앞에 위태롭게 노출돼 있었다. 꼭짓점에 비해 차별금지법의 지평은 드넓었다. 첨예한 꼭짓점과 너른 지평의 대비가 팽팽한 긴장의 파동을 진동시켰다.

생각해보면 그의 생애는 언제나 최전선에서 열리고는 했다. 국내 최초 트랜스젠더 연예인 데뷔(2001년), 최초 법원의 공식 판결에 의한 성전환자 호적 성별 정정(2002년), 여기서 비롯된 200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성전환자 호적 정정 및 개명 인정 판례…. 그의 선택은 여러차례 우리 사회에 새 지평을 열었고, 길게 이어지는 꼬리별을 그었다.

지난 26일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하리수를 만났다. 인권활동가 미류가 국회 앞에서 46일간 이어온 단식농성을 마무리한 날이기도 했다.

한겨레 공동취재사진
5월 11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관련 간담회에 참석한 하리수 

―기자회견 기사를 보니 직업에 대한 표현이 여러가지더라고요. 가수 겸 배우라고도 하고, 방송인이라고도 하고, 연예인이라고도 하고. 뭐가 정확한가요?

“연기 활동, 모델 활동, 방송 활동 모두 계속해왔으니 다 맞는 말이죠. 앞으로도 모든 장르와 영역을 아우르려고 해요.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지금은 음반 작업에 주력하고 있어요. 지난해 데뷔 20주년 기념으로 음반을 준비하다가 코로나19 때문에 뒤로 미룬 건데, 덕분에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어요.”

―장르는?

“발라드풍 트로트예요.”

―차별금지법 제정 활동을 공개적으로 하는 걸 보면서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의외다 싶기도 했어요. 트랜스젠더라는 소수자성과 연예인이라는 직업 사이의 긴장이랄까.

“그래요?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고 노회찬 의원이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섰을 때 함께 활동한 적이 있거든요. 성소수자뿐 아니라 모든 차별받는 분들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는 걸 알고, 국회의원 선거 유세도 함께하면서 도왔어요. 그 뒤로 관심은 있어도 참여 계기가 마땅찮았는데, 이번에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쪽 지인한테서 연락이 와서 흔쾌히 응한 거예요.”

―연예인으로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나요?

“그동안 정치권에서 이런저런 러브콜이 많았지만 고사해왔어요. 연예인이라면 정치와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차별금지법이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나서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어서겠죠?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죠. 하지만 결이 좀 달라요. 차별금지법은 정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요. 여야도 상관이 없고. 그래서 제가 감히 나서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한겨레
4월28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비상시국선언'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하리수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차별금지법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첨예하게 갈등하는 정치적 쟁점 아닌가. 자신이 차별금지법의 당사자이기에 정치와 연결짓기를 애써 피하는 건 아닐까. 짐작과 다르게 “차별금지법은 진영 논리 너머에 있다는 뜻이냐”고 돌려 물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답이 돌아왔다.

“네.”

―흔쾌히 참여를 결정했다는 뜻인가요?

“그럼요. 차별금지법은 너무나 당연한 법이니까 정치적이다 뭐다 할 수도 없어요. 절대 심각하게 생각할 법이 아니에요. 차별금지법 하면 흔히 성소수자를 위한 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틀린 거죠. 비정규직을 위한 법, 노약자를 위한 법, 여성을 위한 법, 이주노동자를 위한 법, 장애인들을 위한 법, 나를 비롯해 우리 가족을 위한 법, 여러분들이 흔히 겪을 수 있는 모든 차별에 맞서는 법…. 그런데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 이유는 뭘까요?

“잘못된 정보 탓이 크겠죠. 특히 범죄자를 양성하기 위한 법, 범죄자를 옹호하기 위한 법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범죄자들이 법의 허점을 이용할 거라고도 하던데,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그런 범죄를 허용하겠어요. 그런데도 마치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그런 범죄를 용인할 거라고 착각하는 거죠.”

―어떤 범죄(자) 말이죠?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아동성범죄자나 변태성범죄자가 차별금지법 핑계를 대면서 ‘이건 내 자유인데 왜 차별하느냐’고 할 거라는 거죠. 도대체 말이 되나요?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차별금지법이 있는 세계 어느 나라도 그런 범죄행위를 용인하는 건 불가능해요. 그런데도 블로그나 유튜브에는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이 넘쳐나요. 그 빌미가 되는 게 있긴 하죠. 우리나라 법률이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너무 약하게 정하고 있는 문제인데요.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약하니까 저런 엉터리 발상도 나오는 겁니다. 법을 강화해서 그런 범죄 저지르는 사람들을 더 엄벌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차별금지법 반대할 빌미도 없앨 수 있죠.”

한겨레
2013년 서울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뮤지컬 '드랙퀸'의 주연으로 공연하는 하리수의 모습 

차별금지법과 성범죄 처벌의 상관성을 짚을 만큼, 차별금지법에 대한 하리수의 이해는 적대의 꼭짓점 앞에서 드넓은 지평으로 열려 있었다. 그의 생애 전체가 차별과 맞서온 시간이었기에 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하리수는 연예계에 데뷔할 때부터 이미 우리 사회의 차별에 정면으로 맞섰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데뷔 이전에 무명으로 10년 동안 활동했을 때 겪은 차별의 고통이 훨씬 심했어요. 그땐 트랜스젠더라는 표현조차 낯설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유명한 광고에 모델로 캐스팅됐는데 스스로 계약을 포기하기도 했죠. 제 주민등록번호가 ‘1’로 시작되니까 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하겠더라고요. 동생 주민등록번호로 계약할까도 생각해봤는데 ‘공문서위조’에 걸리겠다 싶어 포기했죠. 저 대신 다른 친구가 선발돼서 신문에 크게 나오는 거 보고 씁쓸해했던 기억도 나네요.”

―어떻게 커밍아웃하며 데뷔할 결심을 하게 됐나요?

“화장품 회사에서 모델 제안이 들어왔어요. 광고가 나가면 제 정체성이 밝혀질 수밖에 없었죠. 이때가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했어요. 숨어 활동하는 트랜스젠더로는 일회성으로 소비되고 끝날 수밖에 없다, 어려서부터의 꿈이자 부단히 배우고 훈련해왔던 연예인으로 평생 살아가기 위해 밖으로 나와야겠다고 결심했죠. 미리 포기하는 것보다 안 되더라도 도전해봐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어요.”

―하리수로 데뷔하자마자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죠.

“그때는 정말 ‘핫’했죠.(하리수라는 예명은 ‘핫이슈’에서 왔다.) 그렇지만 온전히 사랑만 받은 건 아니었어요. 사랑 40%, 호기심 30%, 차별 30%….”

―30%를 차지했던 차별이 뭐였는지 궁금하네요.

“드라마나 영화에 캐스팅됐다가 갑자기 위에서 트랜스젠더라서 안 된다고 해서 취소된 경우도 있었죠. 2002년 월드컵 때도 응원전에 정말 많이 캐스팅됐는데, 위에서 트랜스젠더라서 싫다고 했다며 취소된 경우도 그만큼 많았어요. 언제나 ‘위’가 문제더라고요.”

뉴스1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과 방송인 하리수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 차별금지법제정 촉구 단식 농성장을 방문해 있다.

하리수가 처음 차별금지법 제정 활동에 참여한 지도 15년이 지났다. 그가 보기에 너무나 당연해서 심각한 것이 외려 이상한 이 법은 왜 이토록 제정하기가 어려운 걸까. 그의 답은 예상을 까마득히 초과했다.

“사실 저는 지금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 인터넷에는 저에 대한 온갖 악담과 저주가 있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전혀 다르거든요. 어딜 가든 매니저가 다 케어하고, 쇼핑하는 데서도 케어받고, 그렇기 때문에 차별받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이렇듯이 기득권자들, 저 높은 위의 사람들은 차별의 현실을 모르겠죠. 늘 어딜 가나 대우만 받지 차별을 안 받고 사는데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한지 알기 어렵겠죠. 그리고 매일 밤 방구석에서 말도 안 되는 악플만 다는 키보드 워리어들. 부디 세상으로 나와서 자신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차별을 당해보면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알게 된다, 그런 뜻인가요?

“차별을 당해봐야 안다기보다 누구라도 차별을 당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으면 해요. 기자님도 늙잖아요. 저도 나이가 들어가고요. 차별금지법은 노약자를 위한 법이기도 하거든요. 살다 보면 누구라도 뜻하지 않게 장애를 입을 수 있어요. 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을 위한 법이기도 합니다. 장애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지하철 엘리베이터 이용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출입구 여덟곳 가운데 한곳, 많아야 두곳밖에 없어요. 비장애인 같으면 단번에 갈 수 있는 걸 길을 건너고 또 건너고 해야 합니다. 출입구 여덟곳 가운데 최소 네곳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어야 해요. 물론 그렇게 엘리베이터 설치하면 비장애인들이 훨씬 많이 이용하겠죠. 부디 ‘저런 데다 왜 돈 낭비 하느냐’는 말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세상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뚫고 하리수로 데뷔한 지 21년. 그 뒤로 우리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태도는 얼마나 나아졌다고 봅니까?

“물론 나아진 면이 많죠. 하지만 오히려 퇴행한 면도 없지 않은 거 같아요. 나아지면서 동시에 퇴행한 경우까지 있죠.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라는 분들 가운데 저 같은 트랜스젠더 여성을 혐오하는 경우는 어떤가요. 제 인스타그램에다 자신이 직장에서 성추행을 당해 너무 힘들다고 글을 올리면서, 입에 담지 못할 표현을 써가며 하리수는 진짜 여자가 아니어서 모를 거야 하는 분…. 제가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데, 성이라는 걸 구체적으로 인식한 17살 이후 온전히 여성으로 살았어요. 성차별에 반대한다면 제게 그러면 안 되는 거죠.”

하리수는 우리 사회가 갈수록 서로를 차별하는 사회가 돼가고 있지 않은지 우려했다. 그는 학교 왕따를 예로 들었다. 가해하는 아이도 문제지만, 피해를 당하는 친구를 외면하거나 가해하는 친구에게 동조하는 아이들도 문제라는 거였다. 그러고는 차별금지법의 보편적 당위성으로 다시 귀환했다. “그건 차별이다,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야죠. 강자가 약자를 차별하는 것뿐 아니라 약자끼리 서로 차별해서도 안 된다는 걸 다 같이 느껴야죠. 그게 바로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현실은 정말 녹록지 않습니다. 오늘 미류가 단식을 마무리했는데요. 국회는 여전히 묵묵부답입니다. 저들도 차별을 당해봐야 알까요?

“그런 말씀은 너무 심하고요.(웃음) 미류씨를 비롯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오랜 시간 앞장서 활동하신 분들을 보면 숙연해지고, 죄송하기도 해요. 저는 잠깐 짬을 내서 얼굴을 비칠 뿐인데, 작은 공 하나를 막 쏘아 올렸을 뿐인데, 너무 과한 관심을 받고 있어요. 제가 뭐라고.”

―그게 연예인의 역할 아니겠습니까.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앞으로도 활동을 하실 건가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국회를 상대로 한 활동이 중단됐는데요. 선거가 끝나면 다시 정치인들 만나러 다니려고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연예인으로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고요.”

―하리수씨 입장에서 차별금지법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바로 나 그리고 너, 그리고 부모님을 위한 법입니다.”

연예인 하리수에게 너무 비연예적 질문만 했다는 자각이 들었다. 서둘러 질문을 만들어낸 게 “언제까지 연예계 활동을 할 계획인가?”였다.

“죽을 때까지요. 제가 설령 노쇠해 활동을 못하게 되더라도 저 같은 성소수자 후배들의 뒷배가 돼주고 싶어요. 소수자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스스로 소수라고 생각하니까 소수가 되는 게 아닐까, 아무리 큰 것도 소수가 모여야지 커지는 거 아닐까, 스스로 주체라고 생각해야 뭐든지 만들어지는 거 아닐까…. 그리고 하리수로서 예전에도 단 하나였듯이 앞으로도 단 하나로 마지막까지 기억되고 싶어요. 누구도 단 하나밖에 될 수 없잖아요. 세상에 조용필도 하나고 비티에스(BTS)도 하나인 것처럼요. 기자님도 하나잖아요.”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