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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결혼식 : 가수 하림은 2만6000원짜리 오케스트라 연주회로 결혼식을 대신했다

'둘만의 예식'은 5분도 지나지 않아 끝났지만 긴 여운을 남겼다.

 

너의 결혼식|친구의 연애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지만, 결혼식 이야기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어디에서 하는지, 어떤 드레스를 입는지 주어를 빼면 항상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얼굴 한 번 마주본 적 없는 남의 결혼식이 궁금해졌다. 왜냐고? 지금부터 들려줄 결혼식 이야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남들과는 완전히 다른 결혼식이다.

 

전 세계 어디든 ‘파반느’를 연주하는 그곳이 결혼식장이 될 뻔했다

″좋아하는 노래가 뭐예요?” 가수 하림의 결혼식은 ‘노래‘에서 출발했다. 하림과 신부의 공통점은 ‘노래‘였다. 클래식 작곡을 전공한 신부는 대학 때부터 좋아하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5월의 신부’를 꿈꾸던 신부를 위해 결혼식 날짜는 무조건 5월이어야만 했다. 하림은 그날부터 구글링을 시작했다. 하지만 ’2019년 5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연주되는 곳’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SOS를 쳤고, 팬의 도움으로 폴란드 그단스크 뮤직 페스티벌을 알아냈다. 곧바로 티켓을 끊었다. 두 장에 우리 돈으로 2만6000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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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관객들 속 두 사람. ⓒ하림

 

5분도 되지 않아 ‘둘만의 예식’은 끝이 났다

2019년 5월24일, 하림과 아내는 폴란드 그단스크 대공연장에서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며 ‘둘만의 예식’을 치렀다. 예식을 빛내줄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도 갖춰 입었다. 하림은 평소 자주 입는 양복을 챙겨 갔고, 아내는 서울에서 인터넷으로 드레스를 구입했다. 결혼식 전날밤 두 사람은 연주자들보다 자신들이 더 튈까봐 약간 걱정을 했는데, 공연장에는 잘 차려입은 관객들이 가득했다고 한다. 

연주가 시작되길 기다리면서.
연주가 시작되길 기다리면서. ⓒ하림

총 1시간 정도 진행되는 공연에서 ‘파반느‘는 중간 정도에 연주됐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하림은 ‘곧 있으면 내 인생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무대 위로 ‘파반느’의 지휘자가 등장했다. 지휘자가 옷매무새를 다듬는 사이 하림과 아내는 결혼반지를 나눠 꼈다.

″첫 음을 듣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어요. 평소에 웬만한 음악에는 감흥이 없는 편이거든요. 그 날은 제 결혼식이라서 그런지 평소 ‘파반느’를 들을 때보다 많이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연주가 정교하지도 않았고 음향도 작았지만요.”

5분도 지나지 않아 연주가 끝나고, 두 사람의 예식도 그렇게 끝이 났다. ”넘 짧다”는 아내의 말에 하림은 ”우리 인생도 이렇게 짧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남들보다 조금은 한가롭게 예식을 치르면서 하림은 오직 ‘결혼 생활을 잘하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팬들을 위해 인스타그램에 그날의 감동을 공유했다. 

- 소속사에서 알린 그대로 ‘둘만의 조용한 예식’을 올리셨네요?
= 사실 손님이 몇 있었어요. 아무래도 결혼식을 사진으로 남길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현지에서 급하게 사진 작가를 찾았거든요.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독일 베를린에 사는 제 오랜 팬이 직접 찍어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영화를 공부하시는 분이었는데 남편과 함께 와주셨고요. 독일에 사는 후배도 직접 만든 아코디언을 선물해주고 싶었다면서 서프라이즈로 찾아왔어요. 그날 사람 많은 공연장에서 아무도 모르게 올린 저희 결혼식을 직접 축하해준 감사한 세 분이죠.

 

- 5분 만에 끝난 결혼식인데, 역설적으로 ‘결혼식 오래도 한다’는 말도 들으셨다고요?
= 저와 아내만의 의미 있는 결혼식이었지만, 가족과 친구들을 폴란드 공연장으로 초대할 순 없는 점은 아쉬웠어요.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와 가까운 분들을 돌아가면서 만나 식사를 하고 있어요. 피로연을 1년 넘게 하고 있는 셈이에요. 코로나 때문에 마음껏 만나지 못하다보니 이 피로연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네요.

  

”남들을 귀찮게 하는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오케스트라 연주회로 결혼식을 대신 한다? 하림의 조금 특별한 결혼식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 하림의 아내는 하림보다 열네살 아래다. 전시회에서 우연히 만나 2년 정도를 만났다. 아내는 하림에게 ‘휴식’ 같은 사람이었다. 44살, 조금 늦었다고도 할 수 있는 나이에 하림이 결혼을 결심한 이유다. 

예식 당일, 공연장 근처 꽃집에서 부케와 부토니에를 샀다.
예식 당일, 공연장 근처 꽃집에서 부케와 부토니에를 샀다. ⓒ하림

″사실 인생의 대부분은 아무것도 안 하는 순간이잖아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한 게 중요하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어요. 저는 아내와 함께할 때 오롯이 편안함을 느껴요. 아내는 참 온화한 사람이에요. 목소리도 다정하고 웃음이 예쁩니다. 이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런 아내를 위해 기억에 남을 결혼식을 꼭 하고 싶었다. 하림과 아내는 남들이 다하는 뻔한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림의 눈에 결혼식은 ‘불편함’으로 비쳤다.

″신랑신부가 정한 날과 장소에 하객들이 가는 거잖아요. 물론 하객들은 축하하는 마음으로 오실 테지만 결혼식이 의도하지 않은 어떤 불편함을 주는 것 같았어요. 모종의 기대를 하면서 주고받는 축의금도 별로라고 느껴졌고요. 아내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양가 부모님께 ‘결혼식으로 장사를 하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다행히 부모님들은 저희 생각을 존중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지지해주셨어요.”

큰 틀에서 뜻을 같이한 두 사람은 구체적으로 둘만의 결혼식을 그려나갔다. 하림이 진두지휘했다. 공연을 수없이 기획해 본 하림이지만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아내에게 ‘결재‘를 받을 때마다 정말 떨렸다고 한다. ”아내가 ‘연주회 결혼식’에 오케이를 해줬을 때 정말 짜릿했어요.”

결혼식장, 웨딩드레스, 하객, 축의금 등 불편함들을 하나둘 걷어내고 나니 남은 건 오직 ‘두 사람’이었다. 음악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결혼식을 대신하기로 결정했다.

 

- 연주회가 열린 폴란드 그단크스는 가본 적 있으셨나요?

= 처음이었어요. 저희는 신혼여행을 겸해서 가는 터라 여행지로서 괜찮은지도 중요했어요. 그 기준을 놓고 보니 폴란드 그단크스가 딱이더라고요. 때마침 지역의 오랜 뮤직 페스티벌이 열려서 음악을 좋아하는 저희에겐 제격인 여행지였어요.

 

- 여행지로서는 합격이지만 결혼식장으로는 너무 모험 아니었나요? 결혼식장에 미리 가볼 수도 없었을 테고요.

= 맞아요. 저희는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오케스트라 연주로 듣고 싶었는데요. 공개된 정보만으로는 오케스트라인지조차 알 수가 없더라고요. 다행히 그날 지휘자가 제 지인과 아는 사이여서 지휘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것저것 물어봤고, 공연장과 오케스트라 수준도 예식에 어울리는지 꼼꼼하게 살폈습니다. 그단크스에 도착한 뒤에는 공연장에 미리 가봤는데 나쁘지 않았어요. 

폴란드 그단크스에 머무는 동안 날씨가 좋았던 날은 손에 꼽았다. 하림은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이라고 특히 강조했다.
폴란드 그단크스에 머무는 동안 날씨가 좋았던 날은 손에 꼽았다. 하림은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이라고 특히 강조했다. ⓒ하림

- 그때는 코로나도 없었잖아요. 폴란드 결혼식도, 여행도 마냥 좋았을 것 같아요.

= 날씨라는 변수가 있었어요. 5월이라 여름 옷을 잔뜩 싸갔는데, 5월에 눈이 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현지에서는 ‘기상 이변’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곳에서 만난 이들 모두 결혼하러 왔다는 저희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봤어요. 하지만 저희는 괜찮았어요. 앞으로 결혼 생활도 눈 오고 비 오는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저와 아내 두 사람이 의지해서 첫 변수를 이겨냈어요.

  

코로나로 고민하는 예비 부부들에게: ”중요한 건 두 사람”

바로 일 년 전, 하림 부부는 폴란드로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떠났다. 지금은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결혼식 자체가 크게 줄었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일 수 없으니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누적 혼인 건수는 12만6367건이다. 지난 1981년 통계 작성 이후 39년 만에 최저 수치다.

서울 마포구 허프포스트코리아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가수 하림. 
서울 마포구 허프포스트코리아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가수 하림.  ⓒHUFFPOST KOREA/SUJONG LEE

상황이 이렇다 보니 코로나 시대 ‘랜선 결혼식’이라는 새로운 트랜드도 생겨났다. 결혼 선배 하림은 ”결혼식의 거추장스러움을 걷어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 결혼식은 거추장스러운 의미가 붙어있는 게 사실이에요. 반갑지 않은 코로나지만, 코로나 덕분에 결혼식 속 허례허식을 걷어낼 기회가 생겼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대신 두 사람만의 의미를 담은 의식을 채워넣는 거죠.”

하림은 결혼식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불필요할 것들을 걸러내는 노력을 치열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말이야 쉽지 실제로는 정말 어려워요. 하지만 노력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 눈치보느라 제일 중요한 두 사람의 관계를 망칠 수 없는 일이니까요.”

도혜민 에디터: hyemin.d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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