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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은 개혁의 씨앗이다

ⓒNastco via Getty Images
ⓒhuffpost

‘욕망이 거세된 일본 젊은이들.’ 어느 신문 기사 제목이다. 일본생산성본부가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한 내용이다. 어떤 내용이길래 ‘욕망이 거세’ 운운하는 걸까?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장차 “사장까지 올라가고 싶다”는 응답이 10.3%에 불과했다는 것, 그리고 “젊어서 고생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사서 고생할 것까진 없다”는 사람이 34.1%나 됐다는 것이다. 

행여 한국 젊은이들이 이런 풍조에 물들까 봐 염려했던지 이틀 후 이 신문의 문화부장은 ‘그래도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할 만하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이 칼럼은 ‘출세 대신 작은 행복‘은 전형적인 중년 이후의 라이프스타일인데, 이런 경향이 20~30대에서 나타난 것은 고령화 사회의 특징 중 하나가 ‘정신의 고령화’임을 말해준다고 했다. 이어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능력을 시험해보는 소수의 사람이 결국 사회를 한 발짝씩 전진시키는 법인데, 작은 행복을 누리며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은 그런 선구자를 뒤따라갈 뿐이라고 했다. 

다 좋은 말씀이긴 한데, 달리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지난 반세기 넘게 한국인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던가? ‘출세 대신 작은 행복’이 전형적인 중년 이후의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건 한국에선 잘 맞지 않는 이야기다. 살인적인 입시전쟁의 주체는 사실상 학생이라기보다는 학부모였다는 사실이 그걸 잘 말해준다.

이른바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한국 사회에서도 유행하는 것은 문화와는 별 관계가 없다. 고성장 시대의 종언이 결정적인 이유다. 일자리는 부족하고, 취직한다 해도 대부분 비정규직이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신분제를 방불케 할 정도로 크며, 이런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바로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다. 소확행은 이런 ‘헬조선’을 무대로 해서 “그래도 행복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몸부림의 표현일 뿐 ‘정신의 고령화’로 인해 나타난 게 아니다.

우리는 고성장 시대의 종언에 대비하지 못했으며, 그래서 승자가 독식하는 서열사회에 깊숙이 진입했다. 청년들은 기존 서열사회의 붕괴와 공정사회의 시작을 원하지만, 우리는 오도 가도 못하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공정사회의 실현을 가로막는 적이 분명하게 보이면 ‘적폐청산’으로 돌파해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일상적 삶을 지배하는 경로가 바로 적폐라면 그걸 무슨 수로 청산할 수 있겠는가.

치열한 노력과 투쟁으로 어떤 서열 그룹에 진입한 사람에게 공정은 자신의 노력과 투쟁에 대한 인정과 보상이다. 이런 공정을 요구하는 사람은 탐욕스러운 기득권자가 아니며, 바로 우리 자신이거나 우리의 선량한 이웃이다. 서열 체제 자체의 불공정을 바꾸려는 ‘사회적 공정’의 시도는 그간 누적된 그런 ‘개인적 공정’과의 충돌을 수반하기에 매우 어려운 일이며 시간도 오래 걸린다.

모든 것이 서열화된 피라미드 구조에서 경쟁의 수혜는 상층부의 극소수에게만 돌아가지만, 이 시스템이 공정하다는 것을 만방에 알리기 위해선 들러리를 서주는 사람들의 존재가 필요하다. 이 사람들은 기존 시스템의 원초적 불공정성을 문제삼기보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사실상 그 시스템을 떠받쳐주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시스템 개혁은 영영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이게 그간 우리의 삶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확행은 시스템 개혁의 씨앗을 품고 있다. 극소수의 승리를 위한 들러리 노릇을 더 이상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자기 주도하에 하겠다는 것이니, 기존 시스템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는 ‘욕망의 거세’가 아니다. 욕망 없는 인간은 가능하지도 않다. 욕망의 재정의다. 욕망의 다양성을 부정하고 모욕하면서 속물적인 것으로 획일화시킨 세상에 대한 반란이다.

직장에서 “사장까지 올라가고 싶다”는 욕망은 사주의 온갖 추잡한 갑질에 순응하게 만든다. 그런 욕망을 갖고 있는 사원이 90%라면, 그 기업의 사주는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왕국을 가진 거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런 사원이 10%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정의롭게 살겠다는 사회적 욕망과 출세를 꿈꾸는 개인적 욕망 사이의 균형이 가능해진다. 이게 소확행이 줄 수 있는 뜻밖의 선물이라면 소확행에 대해 무엇을 두려워하랴.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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