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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09일 14시 1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4월 09일 14시 19분 KST

촛불 이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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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의 토론회 ‘한국인은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에서 의미심장한 조사 결과가 하나 발표되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성원 박사가 20~34세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한 청년의 42%가 “붕괴, 새로운 시작”을 원했으며,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원한 청년은 2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 결과는 무엇을 의미할까? “붕괴, 새로운 시작”을 원한 42%의 청년이 과연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원치 않았을까? 그들은 고성장 시대의 종언이 돌이킬 수 없는 현실임을 잘 알고 있기에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추구한다고 해도 달라질 게 거의 없다는 전제하에 “붕괴, 새로운 시작”을 원한 게 아니었을까?

“붕괴, 새로운 시작”은 한국 사회가 그간 유지해온 발전과 삶의 패러다임(틀)을 확 바꿔보자는 요구이다. 그간의 틀을 지배해온 원리는 크게 보아 ‘낙수 효과’(선성장 후분배론)와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학력·학벌 경쟁을 통한 계층 이동)이었다. 이 원리들은 그간 한국 사회의 발전에 적잖은 기여를 했을망정 이젠 수명을 다했으니 폐기 처분해야 마땅하다.

이론적으론 그렇지만, 한 사회를 반세기 넘게 지배해온 원리를 즉각 폐기한다는 건 현실적으론 매우 어려운 일이다. 모든 사회구조와 제도에서부터 국민의 일상적 삶과 의식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총체적 삶이 ‘낙수 효과’와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에 따라 형성되었고 고착돼 있기 때문이다.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의 주체는 정부이지만, 이건 정부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가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 해도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의식은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아우성치면서도 여전히 ‘낙수 효과’와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변화의 조짐은 있다. 아직은 일종의 마케팅 전략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과 비판이 적잖이 나오곤 있지만, 최근 등장한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등과 같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그런 조짐으로 볼 수 있다. 변화는 ‘위에서 아래로’와 더불어 ‘아래에서 위로’, 즉 쌍방향으로 시도되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보자면 ‘소확행’을 결코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모처럼 좋은 글을 하나 읽었다. 최근 <프레시안>에 실린 ‘소확행, 촛불 이후를 이야기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라는 제목의 기사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와 이홍 한빛비즈 이사의 대담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기사는 소확행을 희망이 없는 상태에 처한 사람들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평가하면서 새로운 사회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소확행이 커피나 디저트 시장 등 외식업계 트렌드로만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선 물질 중심으로 돼 있는 행복의 기존 정의를 바꿔야 한다. 일상의 소소한 것에서 기쁨을 찾으면서 어느 정도 행복감을 느껴야 남들을 돌아볼 여유도 생겨나는 법이다. 부유하게 잘살면서도 스스로 자신이 죽게 생겼다고 아우성치는 ‘정신의 빈곤층’에게서 그런 여유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여유가 있을 때에 비로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도 동참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프레시안> 기사에서도 지적되었지만, 소확행의 확산을 불길하게 볼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국제사회에서의 국가경쟁력을 걱정하는 애국주의자들은 모든 국민이 성공하겠다고 미친 듯이 일하고 경쟁하지 않으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개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한때는 성공과 축복의 원인이었던 것이 세월이 흘러 환경과 조건이 바뀌면 실패와 저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추월하는 ‘출산율 1.05’ 쇼크에 대해 언론은 ‘두려운 미래’, ‘또 하나의 핵폭탄’, ‘국가적 재앙’ 등과 같은 비명을 토해내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런 비명이 괜한 엄살이 아니라면, 언론부터 “붕괴, 새로운 시작”을 위한 구체적 방안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기사의 선택과 크기를 결정하는 기존 의제설정이 이대로 좋은지 성찰해보면 좋겠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