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7월 06일 09시 21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07월 06일 09시 21분 KST

[한글 의사] 미닝 아웃 대신 '소신 소비'

글 읽는 속도를 1초로 줄여주는 한글 의사 시리즈 4편

<허프포스트>가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의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한글 의사’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한글 의사는 영어로 써진 어려운 용어 등을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이로서 ‘글 읽는 속도를 1초로 줄여주겠다’라는 포부를 가진 인물입니다. 어려운 용어 때문에 정보에 소외되는 국민 없이 모두가 함께 소통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진짜 이렇게까지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 생각이 든다. 퇴근하면서 눈물을 질질 짜더라도 다음 날 아침이면 월급 약 넣은 인형처럼 업무 계획을 세운다. 그렇다. 먹고 사는 일은 힘들다. 쉬워 보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렇게 번 돈을 쓰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일단 들어가면 한 장도 안 나오는 금고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치 민들레를 손에 쥔 아이처럼 손가락 사이로 돈을 훨훨 날려버리는(나.같.은.) 사람도 있다. 카드 명세서를 보면서 죄책감을 갖는 것도 한두 해. 신용카드와 10년쯤 고락을 하다 보면 카드값이 줄어들 때 오히려 덜컥 겁이 난다. 나 요즘 어디 아픈 건 아닌가 하고.

어쨌거나 소비하는 것이 곧 ‘나’라는 것은 정설에 가깝다. 영수증을 줄줄이 읽다 보면 어떤 사람인지가 보인다. ‘아, 나는 편한 걸 좋아하는 택시 족’이구나라는 것이 보이고, 그렇다면 ‘(돈도 없으면서)집을 구할 땐 반드시 역세권에 구해야겠다’는 당분간 이뤄지지 않을 무모한 계획도 세울 수 있다.

터치스톤 픽쳐스 제공, 영화 '쇼퍼홀릭' 스틸컷
'쓰는 게 제일 좋아!', 영화 쇼퍼홀릭 속 주인공 '레베카'. 물건을 사며 행복과 만족감을 느끼는 쇼핑 중독자로 나온다.

신념을 소비로 적극 표출하는 2030세대

천안함 뱃지, 세월호 리본, 작은 소녀상

미닝아웃이란 외래어 대신 ‘소신 소비’

 

그런데 요즘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로 소비를 한다. 이를 ‘미닝아웃’이라 부른다. 신념을 의미하는 ‘미닝(Meaning)‘과 벽장에서 나온다는 ‘커밍아웃(Coming Out)’을 합성한 신조어로 이전에는 함부로 드러내지 않았던 정치적, 사회적 신념 등을 소비행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일을 뜻한다.

특히, 20·30세대를 중심으로 ‘미닝아웃’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예쁘면서도 환경이나 인권 등 사회적 의미가 담긴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천안함 배지, 세월호 리본을 달고 다니거나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상징하는 마리몬드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도 모두 미닝아웃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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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로 '세월호 배지'를 검색하면 많은 사람이 올린 다양한 배지를 볼 수 있으며(왼쪽),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돕고 있는 기업 마리몬드(오른쪽)

2000년대 초반 지구 온난화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환경 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더불어 빈곤과 인권 등이 수면위로 떠올랐고, ‘환경‘, ‘리사이클‘, ‘공정무역’ 관련 제품이 판매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때와 차이점을 찾자면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 있다.

플라스틱 빨대 사용으로 고통받는 바다거북의 영상을 본 A 씨는 개인 컵을 들고 다니면서 적극적으로 플라스틱 사용을 거부한다. 여기까지는 이전 세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직접 컵 사진을 찍고 ‘해시태그’ 등을 달아 사회 관계망 서비스에 올리면서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다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진 않는다. 이들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과 연대를 쌓고 정보를 적극 받아들이면서 의지를 더욱 공고히 한다. 일각에서는 생각을 행위로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사람과 연대하는 모습을 두고 ‘소비자 운동’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mattpaul(왼쪽) M Swiet Productions(오른쪽) via Getty Images
물에 떠다니는 해파리 등을 먹고 사는 바다거북이 비닐 등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하고 먹고 만다. 그 때문에 폐 손상을 입어 죽는 경우가 많고 해변에 주로 서식하는 바다표범류, 고래 등도 피해를 보고 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올바른 가치에 신념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라면 희망을 좀 걸어보고 싶다. 함께 소통하기 위해, 미닝아웃이란 단어 말고 ‘소신 소비’로 바꿔 부르기에 동참하자는 거다. 저 어딘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을 거북이의 고통, 역사 속으로 사라질뻔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까지 공감하는 세대라면 분명 ‘언어적 불통’으로 인한 누군가의 상처에도 공감할 수 있을 테니까.

재벌가로 시집을 간 모 연예인이 가족들이 영어와 불어로 얘기를 해서 골탕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물론 루머였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 알 수 있듯 다른 언어를 쓴다는 것에는 ‘차별‘과 ‘모욕‘이 내포돼 있다. ‘넌 몰라도 돼‘, 혹은 ‘넌 이해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넌 몰랐으면 좋겠다’는 것을 은연중에 표현하는 것이다.

미닝아웃으로 마리몬드의 제품을 사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정작 미닝아웃이라는 단어를 모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외래어에 취약한 어르신과 취약계층과 원활한 소통과 사회의 행복을 위해 ‘소신 소비’라는 말로 표현해보는 거다. ‘소신 소비’라고 말하는 순간 당신은 지금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음을 느끼게 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