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6월 29일 11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06월 29일 11시 16분 KST

[한글 의사] 언택트 대신 ‘비대면’

글 읽는 속도를 1초로 줄여주는 한글 의사 시리즈 3편

<허프포스트>가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의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한글 의사’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한글 의사는 영어로 써진 어려운 용어 등을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이로서 ‘글 읽는 속도를 1초로 줄여주겠다’는 포부를 가진 인물입니다. 2020년 12월까지 총 12회 독자들을 찾아갈 예정이며, 어려운 용어 때문에 정보에 소외되는 국민 없이 모두가 함께 소통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눈물 버튼 있다면 그건 ‘엄마’라는 단어다. 사무실에 앉아 가만히 ‘엄마’하고 속으로 읊조리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그런데 엄마 얼굴을 보면 안구건조증 마냥 눈가의 물기가 싹하고 말라버린다. 우리 이 여사께서는 혼자 감상에 젖을 시간을 내어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퇴근후 날 반기는 엄마의 눈동자가 빛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한글 의사의 ‘해야 할 일’ 목록이 나온다. 대부분의 요청사항은 휴대폰과 관련이 있다.

사진이 안 간다’,  ’요즘은 휴대폰으로 텔레비전을 보더라′,기차표를 예매하려고 하는데 직접 가야 하나…” 왜 엄마 친구의 딸과 아들들은 넷플릭스와 웨이브를 깔아드릴 정신은 있으면서 항상 바빠서 예매 같은 건 내가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한번 만나자 이 엄친아들아!!!) 어쨌든 그런 거(?) 잘하는 애로 찍혀버려서 포지션 변경은 이미 물 건너갔다. 하지만 종종 가다가 기쁜 일도 있는데, 엄마 친구 즉, 이모들이 먹을 것을 잔뜩 사준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는 기숙이 이모(실명, 이야기에 거짓이 없단 얘기입니다)가 사다 준 치킨과 햄버거를 먹게 되었는데, 엄마가 기숙이는 주문도 잘하는 똑순이라고 칭찬했다. 주문도 잘하는 똑순이?!

뉴스1
온라인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하는 모습(왼쪽), 패스트푸드점에서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모습(오른쪽)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이나 패스트푸드점 주문은 모두 대면으로 가능한 부문이나 최근 '언택트 시대'라 하여 '비대면'의 영역이 늘어나는 중이다.

디지털 소외의 사각지대

언택트 대신 ‘비대면’이라고 적자

적어도 비대면을 선택할 권리 있어 

지난해 박막례 할머니가 패스트푸드점에서 키오스크(kiosk·무인종합정보안내시스템)로 주문하는 모습을 담은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이란 영상이 화제가 됐다.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를 직접 보여주면서 많은 이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실제로 살 부비며 사는 엄마가 그동안 햄버거 주문을 못 했다는 것이다. 집 앞 햄버거 매장은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지만, 매대에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엄마는 기계 앞에 늘어선 줄을 보고 주춤거리다 나와야 했고, 그날 이후로는 매장에 들어가기가 무서웠단다. 덧붙여서 엄마는 ”꼭 사주고 싶었는데 주문을 못 해서, 그래서 엄마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유튜브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의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 편 캡처
박막례 할머니는 햄버거 무인주문기 매장에 방문해 주문하기에 도전했다. 하지만 기계로 주문하는 게 무섭고, 못하는 모습에 자존심이 상해 기계가 있는 매장에는 아예 안 간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사람과 사회의 연결 방식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미디어를 비롯해 기업 등에서는 ‘언택트(Untact)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연일 콘텐츠를 쏟아 놓는다. 언택트란 접촉하다는 뜻의 콘택트(contact)에 부정의 의미인 언(un-)을 합성한 것으로 우리말로는 비대면이라 한다. 많은 이들이 언택트를 ‘더 소통하기 위한 것‘이라 강력하게 자부한다.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언컨택트(Uncontact)’ 책의 부제는 ‘더 많은 연결을 위한 새로운 시대 진화 코드’이다. 그러나 왜 ‘언택트’라는 외래어가 오히려 소통을 방해하고 있음은 인지하지 못하는 걸까.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는 ‘언어’와 큰 연관성이 있다. 다시 박막례 할머니의 영상으로 돌아가자면, 테이크 아웃이라고 적힌 화면에서 “‘봉다리(봉지)’인가?”라며 그림을 보며 유추해낸다. ‘감자튀김’도 찾을 수 없었는데, ‘후렌치 후라이’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의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편 캡처
잘 보이지 않거나, 한글이 아닌 경우가 있어 박막례 할머니는 그림을 보고 유추해서 주문을 해야만 했다.

위와 같은 문제를 단순 UX/UI를 변경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 인터넷 뱅킹도 무서워하는 엄마가 ‘디지털’을 배운다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까? 세상은 젓가락질도 못 하는 애들이 광고 건너뛰기를 하는 세대에 철저히 맞춰져있다. 이곳에서 여러 세대가 함께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다각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1%에 불과하다. 언어만 잘 활용한다면 그렇게 울부짖는 ‘소통’의 세상에 다른 나라보다 빨리 갈 수 있다는 거다. 언택트가 지향하는 사회가 확실히 ‘소통의 확장‘이라면 언택트라는 말부터 ‘비대면’이라고 써야 하는 게 순서다. 적어도 비대면을 선택하지 않을 권리라는 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