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20년 10월 30일 13시 40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10월 31일 01시 23분 KST

간호사, 승무원, 군인 등 여성 노동자들이 핼러윈/할로윈 코스튬 '성적 대상화'에 "수치심 느낀다"며 경험담을 전했다

10대 여학생 교복에까지 성적 판타지 부여하는 코스튬.

Nob1234 via Getty Images
지난 2018년 일본 도쿄에서 핼러윈 코스튬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기존 간호사 복장을 타이트하게 바꾼 '코스튬' 의상을 입고 있다. 

 

가슴골이 드러난 간호사복에 적십자 문양이 새겨진 흰색 캡(Cap). 매년 ‘핼러윈/할로윈(Halloween)’이면 찾아볼 수 있는 간호사 ‘코스튬’(유명인이나 캐릭터를 따라하는 의상 및 분장)이다. 이런 복장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의료현장에서 간호사 캡은 사라진 지 오래인데다 대부분 간호사는 치마가 아닌 통이 넓은 바지를 입는데도 여전히 성적 코드가 부각된 ‘가짜 이미지’가 넘쳐난다. 이들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부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가 반영된 결과물일 것이다.

간호사뿐만이 아니다. 경찰, 군인, 승무원 등은 이른바 ‘핼러윈/할로윈 코스튬’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직업군이다. 문제는 남성의 코스튬과 달리 유독 여성의 코스튬은 지나치게 성적으로 왜곡된, 실제 유니폼과 동떨어진 복장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로 인해 해당 직업군 여성이 지닌 전문성은 지워지고 오직 성적인 요소만이 부각되고 있다. 

 

성적으로 소비되는 코스튬, 직업 전문성 떨어뜨려 : “차나 한 잔 할까?” 성희롱 빈번

네이버쇼핑
네이버쇼핑에서 '할로윈 코스튬'으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의상들(오른쪽), 군인 코스튬으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의상. 남녀 의상에 확연한 차이가 있다.

 

“실제 근무복을 입는다면 왜 논란이겠어요?” 해당 직업군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코스튬’에 던진 의문이다. 이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유니폼을 입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다. 특정 직업의 가치관과 역사를 지닌 유니폼을 성적으로 왜곡해 바라보는 시선이 코스튬에 담겼다는 게 문제다. 

익명을 요청한 5년차 간호사 A(27)씨는 “일하면서 성희롱을 많이 겪었다. 나를 다방 직원처럼 대하면서 ‘밖에 나가서 차나 한 잔 할까?‘라는 말을 하는 50~60대 아저씨들이 많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간호사를 ‘의료인’으로 생각했다면 이런 성희롱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면서 ”코스튬을 비롯해 성적으로 소비되는 여러 이미지가 해당 직업의 전문성을 떨어뜨린다”고 꼬집었다. 

4년차 대학병원 간호사 이모(28)씨는 코스튬으로 인해 불쾌한 오해를 받은 적이 있다. 그는 “병원일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선정적인 간호사 의상을 가리키면서 ‘너네도 이런 거 입어?’, ‘요즘에도 진짜 이런 의상 있어?’라고 묻는 경우가 있었다”고 불쾌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보건의료노조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2019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간호사를 비롯한 보건의료노동자 성폭력 가해자는 환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2019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간호사 14.5%가 ‘성폭력 피해(성적 의도를 가진 신체접촉 등의 추행 행위포함)’ 경험이 있다고 답해 보건의료 업종 중 피해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간호사를 포함한 의료보건인력에 대한 성폭력 가해자는 환자가 81.2%로 가장 많았다. 

 

4년차 군인 B(27)씨도 노출이 심한 군복 코스튬에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이로 인해) 여군에 이상한 환상을 품은 이들한테 성희롱성 발언을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군 내부에서도 자신을 ‘군인’으로 보지 않고 ‘여자’로 보는 이들이 있었다면서 “복장을 수선하러 갔는데 남자 선임이 내 하체가 튼실하다며 몸매를 흝어본다던가, (후임이) 나를 선배로 보지 않고, 잠재적 연애 상대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3년차 승무원 C(28)씨 역시 “실제로 승무원은 가슴골을 드러내는 복장을 하지도, 팬티가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지도 않는다”고 소위 ‘승무원 코스튬’으로 불리는 복장에 분노했다. C씨는 이렇게 왜곡된 이미지는 “승무원으로서 수치심이 들게할뿐 아니라 근무 중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가벼운 터치는 기본이고, 일부 무식한 사람들은 승무원이 앉아있을 때 대놓고 다리 사이를 뚫어져라 보거나 몰래 사진 찍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종종 제가 착용한 스타킹을 구매하겠다는 메세지를 받기도 했고요.”

뉴스1
지난 3월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간호사들의 실제 복장(왼쪽),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를 쓴 승무원들의 모습.

 

“교복 코스튬, 성인여성은 물론 10대 여성까지 성적대상화”

여학생 교복을 변형한 코스튬은 여성은 물론 여성 청소년까지 성적대상화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양지혜 활동가는 “여성 청소년의 교복을 남성의 시각에서 성적인 이미지로 소비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일상에서 입는 옷에 현실과는 다른, 섹슈얼하면서도 순결한 이중적 이미지를 투사했다”며 이미지 왜곡으로 피해를 받는 청소년들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청소년들이 주축이 된 인권단체 ‘아수나로’ 활동가 치이즈도 “스쿨미투 등을 통해 학교 내 많은 여성 청소년들이 위계적으로 취약한 위치에서 성폭력을 경험한다는 점이 드러났음에도 문제 의식 없이 교복을 ‘성적인 코스튬’으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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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성적 대상화에 이용한 사례. 실제 교복에 비해 지나치게 타이트한 복장이다.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명예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유독 유니폼 여성을 두고 성적 대상화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교수는 “직업군이라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을 무너뜨려 일종의 금기를 깨는 판타지가 있다”며 ”특정 직업군 성적 대상화는 해당 여성을 성적으로 제압한다는 환상을 제공한다”고 이투데이에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제한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에서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사회 윤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보장받는다.

“간혹 왜곡된 유니폼을 입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척 자세를 취하거나 주사를 놓는 등 그 직업을 나타내는 행동까지 하면서 사진을 찍는 경우도 봤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런 행동에 우리가 어떤 수치심을 느끼는지 관심조차 없다. 그런 행동이 포르노 배우와 다를게 있나 싶다. 보통 포르노는 현실을 많이 왜곡한다.” - 승무원 C씨 

 

핼러윈데이를 맞아 특정 직업군 의상을 왜곡한 코스튬을 즐기는 것은 해당 직업 종사자들의 명예를 침해하는 행동에 불과하다. “본인은 재밌어서, 아무 생각 없이 입고 소비하겠지만,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은 일상적이고 직접적인 고통을 받는다”는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심각성을 인지해야 하지 않을까. 더는 간호사, 승무원 등의 유니폼을 타이트하게 바꾼 ‘핼러윈 코스튬’을 보고 싶지 않다. 

 

이인혜 에디터 : inhye.lee@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