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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들(과 모든 사람들)이 내 탈모증에 대해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들

17세 때 원형탈모증 진단을 받았다

  • 이원열
  • 입력 2019.09.24 17:01
  • 수정 2019.09.24 17:04
ⓒCaroline Howley

90년대에 어렸던 나는 스파이스 걸스의 빅토리아 베컴이나 ‘프렌즈’의 레이첼 그린(제니퍼 애니스톤) 같은 매끈한 직모를 갖는 꿈을 꿨다. 그러나 내 머리카락은 그렇지 않았다. 곱슬곱슬하고 제멋대로 였으며, 어린 아이 머리치고는 너무 굵어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 아일랜드 혈통의 영향 중에서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었다. 내 어린 시절 일기를 보면 머리를 잡아먹는 거대한 갈색 망토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막대 그림이 많이 나온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내가 머리를 자르는 것을 싫어하셨다. 내가 십대 초반에 머리를 펴게 해달라고 애걸하자 두 분은 내가 코카인을 구해달라고 공손하게 부탁한 것 같이 반응했다. 하지만 14살 때 친구가 내 머리를 펴주었을 때 아버지는 내 달라진 모습에 아주 놀랐고, 친구에게 개인적으로 감사를 표하고 몰래 나를 데리고 세라믹 고데기를 사러 갔다.

나는 머리카락이 늘 신경쓰였다. 17세 때는 원형탈모증 진단을 받았다. 둥글게 머리가 빠지는 자가면역 질환이다. 머리는 다시 자라지만 몇 년이 걸릴 때도 있었다. 다시 자라난 머리카락은 굉장히 질감이 거칠었다. 머리가 훨씬 더 많이 빠지는 전두탈모증 만큼 삶을 바꾸는 증상은 절대 아니지만, 외모와 자존감에 큰 영향을 준다.

솔직히 처음 진단받았을 때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히스테리도, “왜 하필 나야?”하는 순간도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내 머리는 언제나 내 적이었고, 나로선 그저 또 한번의 격투일 뿐이었다. “머리숱이 너무 많다고 불평해? 내가 보여주지.” 내 머리카락이 내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만큼 무관심하지 않았고, 얼른 전문가에게 나를 보였다. “안타깝게도 치료법은 없습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고, 그걸로 끝이었다. 내가 진단 받은 이야기를 하자 할머니는 얼른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여성의 머리카락을 아주 중요시하는 분이어서, 내 멋진 머리가 꼴사나워진다는 걸 길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생각했다. 그것도 나는 괜찮았다

그뒤 몇 년에 걸쳐 나는 탈모증에 대처하는 기술들을 찾아냈다. 대학교 기숙사 방에 틀어박혀 여러 실험을 했다. 머리를 비교적 짧게 유지하면 탈모가 조금은 덜해지는 것 같았고, 빈 곳을 가리기 위한 흥미로운 헤어스타일 개발은 묘하게도 만족감을 주는 취미가 되었다. 가르마를 정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가르마가 있는 곳에서 탈모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머리를 세게 묶으면 탈모가 심해졌다.

안타깝게도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 같았다. 즉 탈모가 진행되고 그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으면 상황이 악화되는 사이클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하수구에서 머리카락을 잔뜩 끄집어 내며 나는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하우스메이트들이 알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내 증상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고, 이것 때문에 내가 나쁜 사람이나 역겨운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들의 비판은 피하고 싶었다. 아주 잘못 고른 남자친구 한 명의 심술궂은 몇 마디를 제외하면 나는 비교적 잘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비싼 세럼과 컨디셔너를 써봐도, 거울 앞에서 일어난지 두 시간만 지나면 다른 사람들이 ‘자다 막 일어났을 때’의 머리보다 못해보였다. 친구들은 내가 몰라서 그런다고 생각하고 잘난 척하며 끝없이 모발 건강에 대한 조언을 늘어놓았다. 내가 어떤 증상이 있는지도, 모든 시도를 이미 다 해봤지만 성과가 없었다는 것도 모르는 채 말이다. 아침에 나는 머리를 손보느라 몇 시간을 보낸 뒤, 저널리즘 수업 중 강사에게 내 머리가 ‘엉망이라 프로답지 않아보인다’는 공개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

※ 위 사진은 원형탈모증 자료 사진으로 이 글의 필자와는 무관합니다
※ 위 사진은 원형탈모증 자료 사진으로 이 글의 필자와는 무관합니다 ⓒWIRUL KENGTHANKAN via Getty Images

미용실에 가는 것은 굴욕적 경험이었다. 미용사는 견습생들을 불러 내 머리와 두피를 보여주고, 이렇게 건조하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나무라곤 했다.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는 근처의 할아버지가 들을까봐 걱정하며 쉬쉬했다.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나는 문제가 있는 건 내가 아닌 다른 모두들이라는 믿음에 매달렸다.

졸업 후 나는 다른 도시로 옮겼다. 거기서 사귄 친구들은 강하고 지적인 여성들이었고, 우리는 서로에게 모든 걸 터놓고 지냈다. 다이어트, 탈모, 성적 실험, 정신 건강 등에 대해 수치나 편견없이 이야기했다. 우리는 밀레니얼 세대였다. 우리 세대의 작가와 셀러브리티들은 책, 에세이, 트위터를 통해 예전 세대들이 만든 터부들을 부수고 수치를 없애고 있었다. 수용의 시대인 지금, 금기시되는 주제란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탈모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자주는 아니었다) 어깨가 굳어지고 미소가 얼어붙는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났다. 친구들은 보다 편안한 대화로 넘어가려고 애쓰며 시선을 여기저기로 돌렸다. 어색한 농담으로 방향을 틀 때도 있었다. 가장 잘 받아주는 친구들조차도 탈모증에 대해 이야기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왜 그럴까?

내가 보기엔 어색함의 근원은 탈모증이 내 외모에 영향을 주는 증상이라는 점 같다. 내 건강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내 천식이나 폐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는 이런 오명을 경험한 적이 없다. 내가 보기에는 그게 훨씬 더 해롭고 무서운 이야기인데 말이다.

최근 친한 친구들에게 내가 탈모증 이야기를 꺼냈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한 명은 “네가 머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안쓰러웠다. 내 장점이라곤 머리카락 밖에 없기 때문에 내가 탈모증이 없다는 게 고맙기도 했다.”라고 답했다. 한 명은 문자를 보내 “너나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어색한 기분이 든다.”는 문자로 답했다.

살이 쪘는데 체중을 줄이고 싶다면 그건 가능하다. 코가 마음에 안 든다면 돈을 모아서 바꿀 수 있다. 입술이 작다면 필러가 있다. 카다시안에게 영향을 받은 인스타그램 시대에, 자신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문제라고 생각되는 외모를 고치는 것이 해결책이다. 그러나 고칠 수 없다면?

지금 내 친구들은 30대 페미니스트이지만, 이들과 내 증상에 대해 이야기를 시도해 보고 내가 깨달은 건 우리가 무심코 내면화한 스티그마가 정말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계정에 댓글을 다는 십대들보다 회복력이 강하다고 믿을지 몰라도, 외모가 주도하는 문화의 미묘한 영향은 아주 깊다. 다른 여성을 평가할 때 지성, 성과, 성격을 본다고 믿을 수 있지만, 내면의 가치가 외면의 아름다움과 연관이 있다는 유해한 디즈니 원칙을 믿는 기질이 우리 안에 숨어있다. 내가 탈모증 때문에 사회의 외모 집착의 가장 나쁜 영향을 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여성의 외모가 위협받을 때 사람들이 도덕적 패닉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점은 실망스럽다.

남성 시선이라는 확고부동한 시대정신 때문에, 여성의 가치는 지금도 외모에 묶여있다. 내 친구들은 나를 사랑하고 내가 가치가 낮다고 느끼길 원하지 않기 때문에 어색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한번도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치료할 수 없는 탈모증 진단을 받은 후 나는 자아수용을 위해 노력해야 했다. 세상 다른 사람들도 보조를 맞춰주길 바랄 뿐이다.

진단 후 나는 탈모증을 짜증나는 불편함 정도로만 생각해왔다. 머리를 손볼 때 시간을 더 많이 써야 하고, 안타깝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의 좋은 모습이 아닐 거라는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20대 때 이 사실을 털어놓았던 사람들(심지어 털어놓지 않았던 사람들)의 반응은 탈모증이 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수치스러운 일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숨겨야 할 사실 같았다. 내가 몇 년 전 대학교 하우스메이트들에게 숨겨왔던 것처럼.

최근 기차역을 서둘러 걸어가다 대머리 여성들이 흥겹게 잔돈이 든 통을 흔드는 것을 보았다. 탈모증 자선단체 모금 중이었다. 나는 통에 10달러를 넣고 얼른 자리를 떴다. 눈물이 나서 내 스스로도 놀랐기 때문이었다. 여성들의 용감함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단순한 행동이 용감하게, 심지어 반항적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사회가 여성들의 가치를 판단하는 맥락이 그 원인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그들처럼 지지를 받는다고 느끼고 자신감을 갖고 싶다. 내 병은 나의 전부가 아니다. 내게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은 없다.

 

* HuffPost US의 Here’s What I Wish My Friends (And Everyone Else) Knew About My Alopecia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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