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8월 17일 15시 31분 KST | 업데이트됨 2021년 08월 17일 15시 31분 KST

[하하호] 디지털 디톡스 대신 ‘디지털 거리 두기’

어떤 외래어든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하하호 시리즈 8편

<허프포스트>가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의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하하호’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하하호’는 어떤 외래어든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소통 특급 번역기’입니다. 새로운 신조어나 외래어가 세대 간의 소통을 막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Philippe TURPIN via Getty Images/Photononstop RF
늘 새롭고 재미있는 것들이 가득한 온라인 세상.

외로울 틈이 없었다. 재미있는 건 어찌 그리 많은지 휴대 전화 속 세상은 늘 새롭고 반짝반짝 윤이 났다. 이전보다 온라인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도 같았다. 절친한 친구가 오늘 바쁜지 연락을 해도 될지는 사회 관계망 서비스로 확인했고, 수업을 화상으로 진행하는 데다가 취미가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를 이용하는 세상이 된 마당에 굳이 경계를 나눠야 할 필요성이 줄었다.

특히, 기기를 오래 사용할 때마다 들었던 묘한 죄책감이 사라졌다는 게 가장 컸다. 친구와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음악을 내려받던 내 컴퓨터의 전원선을 무참히 잘라버리던 아빠의 최근 모습 때문이었다. 아빠는 티브이로 골프를 켜놓고 휴대 전화로 뉴스를 봤다. 심지어 6살 조카처럼 밥을 먹을 때도 ‘유튜브’를 보고 싶어 했다. 세상 모든 곳에서 진행되는 공놀이는 다 보겠다는 일념인지 야구, 축구, 배구, 농구, 골프와 심지어 바둑까지 동그란 것이라면 아빠는 어디든 찾아다녔다. 유료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계정을 함께 공유한 이후로는 하루에 꼭 한 편씩 영화까지 시청하실 정도였으니 영상으로 세상 모든 것을 흡수하겠다는 일념을 막을 자는 없어 보였다.

Pongtep Chithan via Getty Images/iStockphoto
한 자리에 모여 각기 다른 전자 기기를 사용하는 가족의 모습은 일상이 됐다.

격세지감. 세상은 이미 변했고 무참히 전원선을 자르던 아빠도 디지털 세상에 순응했을 지언데 순간을 마음껏 즐겼다. 물론 조금의 부작용은 있었다. 자꾸만 단어가 기억이 나지 않고 머리가 둔해진다는 것. 혹 내가 놓치는 새로운 소식이 있을까 하는 우려와 기대감에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 전화를 뒤적였다는 정도였다. 뭐 여기까지는 좋았다. 우리는 2021년을 사는 현대인이니까!

다만 참을 수 없는 게 단 한 가지 있었다. 그건 전화를 놓고서는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유행하는 반지를 만든답시고 구슬을 꿰면서도 아이유의 영상에 빠져들었고, 책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인스타그램’의 새로 고침을 눌렀다. 방에 누워 발을 까딱까딱 움직일 때도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가 휴대전화 전원이 꺼질 때면 끈 떨어진 뒤웅박처럼 불안에 시달렸다. 가슴이 뻥 뚫린 듯한 큰 공허함이 아니었다. 몸의 한구석만은 엄마에게 붙어있어야 했던 어린 시절의 모습 같았달까.

Tetiana Soares via Getty Images/iStockphoto
책을 펼쳐둔 채 꽁꽁 묶인 전자 기기를 바라보는 소녀. 휴대 전화를 멀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럴 때야 비로소 엄마 방으로 쪼르르 달려가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와다다다 내뱉었다. 깨달은 건 그것이었다. 온라인이든 현실이든 연결되어 있지 않은 오롯이 혼자인 순간을 못 견딘다는 거다. 그건, 휴대 전화가 곧 친구라는 의미였고, 때론 어린 시절 엄마처럼 늘 곁에 있어주는 존재라는 의미였다. 외로워서 휴대 전화를 붙들고 있는 것인지, 휴대 전화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외로워진 것인지는 모르겠다. 둘 다겠지만 뭐.

흔하디흔한 이 이야기의 결말은 세계적으로 디지털 중독 현상이 커지고 있으니 심리적, 정신적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디지털 디톡스’를 생활화하자는 아주뻔한 내용이다. 디톡스(detox)는 인체 유해 물질을 해독한다는 것을 의미로 ‘디지털 디톡스’는 전자기기의 사용을 멈추고 과의존으로 인해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개념이다.

jacoblund via Getty Images/iStockphoto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 전자 기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표시가 되어 있다.

전 세계 온라인 세계를 장악한 前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 또한 이미 10여 년 전인 2012년 5월 20일 보스턴 대학교 졸업식 축사를 통해 ”인생은 모니터 속에서 이뤄질 수 없다”라며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휴대 전화와 컴퓨터를 끄고 사랑하는 이의 눈을 보며 대화하라”라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경제 매체 ‘포브스’ 또한 30일간 디지털 기기에서 멀어지는 방법을 소개한 바 있다. 예를 들어 휴대 전화를 보고 싶은 충동이 들 때 ‘필요에 의한 것인지’를 스스로 물어본 뒤 필요하지 않다면 확인하지 않는 것. 정신적으로 충만감을 줄 수 있는 활동 4가지를 적되 일상에서 쉽게 시도해볼 수 있어야 하며, 1주일에 한 가지씩 체험해보기 등이다.

Justin Paget via Getty Images
해보고 싶었던 일 일주일에 한 가지씩 해보기!
Westend61 via Getty Images/Westend61
'필요하지 않을 때 의식적으로 컴퓨터, 휴대 전화 등 전자 기기를 사용하지 않기', 그 자체가 '디지털 거리 두기'의 한 방법이다.

다만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디지털 디톡스’ 대신 ‘디지털 거리 두기’라는 쉬운 우리말로 써볼 것을 제안했다. ‘디톡스‘라고 하면 뜻이 명확해지지 않을뿐더러 해당 용어를 모르는 이들에게 효용성이 없다는 점에서다. ‘디지털 거리 두기‘라고 사용한다면, 명확하게 전자 기기의 사용을 중단하고 휴식을 취하자는 의미가 쉽게 전달된다. 인간관계에도 적당한 거리가 없으면 탈이 나는 것처럼 휴대 전화 친구와도 적당한 거리를 둔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좋다. ‘제4차 혁명’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앞으로 디지털 기기 없는 문명으로 돌아갈 수 없다. 지금부터 관계 유지를 잘하지 못 한다면 현실에 발 디디고 살기 어려울 것이란 쉬운 예측도 가능하다. 그러니 한 번 거리 두기를 해보는 건 어떠한가. 오히려 인간관계처럼 좀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CentralITAlliance via Getty Images/iStockphoto
'디지털 거리 두기'

 ‘디지털 디톡스’→ ‘디지털 거리 두기’

디지털 기기를 지나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디지털 기기 사용을 중단하고 휴식을 취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