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8월 02일 08시 55분 KST | 업데이트됨 2021년 08월 02일 09시 44분 KST

[하하호] 푸드 리퍼브 대신 ‘식자재 재활용’

어떤 외래어든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하하호 시리즈 7편

<허프포스트>가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의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하하호’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하하호’는 어떤 외래어든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소통 특급 번역기’입니다. 새로운 신조어나 외래어가 세대 간의 소통을 막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트에서 보는 애호박은 참으로 다 똑같이 생겼다. 길이며 둘레까지 어쩜 그리도 일정한지 누가 보면 공장에서 찍어낸 줄 착각할 정도다. 이들이 같은 모양이 된 건 ‘비닐’을 뒤집어쓰면서부터다.

SSG 홈페이지
대부분의 애호박이 위의 이미지처럼 비닐에 쌓여 생장된 후 판매된다.

우선 곧게 자란 호박에 비닐을 씌워 놓고 2~3일 정도 기다리면 저절로 비닐에 꼭 맞는 모양으로 성장한다. 애호박 비닐을 한 번쯤 까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벗기기가 어려워 칼로 중간 부분을 ‘숭덩’하고 잘라내게 된다. 사람에게도 질기고 단단한 비닐을 애호박이 뚫고 자랄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양이 예쁜 데다가 포장할 필요도 없는 비닐 틀은 거의 모든 애호박 농장의 규격처럼 여겨져 왔다. 한국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마트나 주요 유통업체들이 비닐 없는 애호박을 취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단체 급식 등 대량 주문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동일한 모양, 일정한 무게를 지니고 있으니 가격 책정에도 용이하고 조리할 때도 편해서다.

뉴스1
마트에서 판매중인 애호박의 모습.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처럼 보인다.

비닐 사용에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애호박의 표면이 워낙 약해 찍히기 쉽고, 짓무르는 등 신선도를 장담하기가 어려워서다. 또한 호박의 겉면이 마르는 걸 방지해 좀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딸기처럼 연하디연한 과일이나 찍히면 금새 시커멓게 변하는 바나나도 비닐을 씌워야 하지 않는가?

애호박의 자연스러운 생김새는 정해져 있지 않다. 밑에 부분이 오동통하게 커지는 게 일반적이긴 하나 동그란 모양일 수도 있고, 마치 수류탄처럼 자라는 것도 있다. 이것은 호박의 고향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그럼에도 비닐에 쌓인 길쭉한 애호박 외에는 ‘못난이 농산물’ 취급을 받는다.

ilietus via Getty Images/iStockphoto
위처럼 생긴 모양의 애호박은 국내 대형 마트에서는 판매 불가다.

영양이나 맛에 문제가 없는 데도 단지 외모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못난이 농산물’은 국내 농산물 수확량의 평균 12%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미국의 경우 20%를 차지한다고 하니 빌어먹을 외모지상주의에 환멸이 들 정도다.

프랑스의 경우 슈퍼마켓 체인점인 인터마르세(Intermarche)에선 2014년 ‘못생긴 당근? 수프에 들어가면 상관없잖아‘라는 문구를 넣은 포스터를 제작해 인식 개선 캠페인과 농산물 판촉 행사를 벌였다. 영국의 대형 유통업체인 아스다(Asda)도 ‘못난이 채소 상품 박스(Wonky Veg Box)’ 를 판매해 소비자의 관심을 유도하는 캠페인을 시도했다. 미국의 월마트 같은 대형 유통업체들도 30~50% 저렴한 가격으로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프랑스의 슈퍼마켓 체인점인 인터마르세(Intermarche)
'못생긴 당근? 수프에 들어가면 상관없잖아'라는 문구를 넣은 포스터
영국의 대형 유통업체인 아스다(Asda)
'못난이 채소 상품 박스' (Wonky Veg Box)'

우리나라 또한 지난 2019년 SBS ‘맛남의 광장’에서 강원도 농가에서 버려진 못난이 감자 30톤을 판매한 바 있다. 당시 백종원은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에게 감자를 부탁했고, 당시 전국 이마트에서 못난이 감자 품절 사태를 불러일으킬 만큼 화제가 된 바 있다. 이후 한국소비자원이 소비자 2천 명을 대상으로 못난이 농산물 구매 실태 및 인식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소비자는 못난이 농산물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특히 최근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못난이 농산물 구입이 늘고 있다. 맛에 문제가 없는데 가격은 저렴하니 소비자 입장에선 좋고, 농가 경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맛과 영양에는 문제가 없는데도 외관상 상품성이 떨어지거나 유통 기한이 임박한 식자재를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일, 또는 이를 활용하여 새로운 식품을 만드는 일을 ‘푸드 리퍼브(Food Refurb)’라고 부른다.

SBS ‘맛남의 광장’
2019년 12월 12일 방송된 '맛남의 광장'에서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에게 '못난이 감자' 판매를 요청하는 백종원 대표

다만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푸드 리퍼브‘라는 어려운 외래어를 ‘식자재 재활용‘이라는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 쓰는 것을 제안했다. 못난이 농산물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적극적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쓰는 것이 좋다는 거다. 앞으로는 모양 때문에 버려지는 아까운 농산물이 줄어들기를 희망하고, 인식을 개선할 수 있도록 ‘식자재 재활용’이란 단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를 권한다.

 ‘푸드 리퍼브’→ ‘식자재 재활용’

맛과 영양에는 문제가 없으나 외관상 상품 가치가 떨어지거나 유통 기한이 임박한 식자재를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일 또는 이를 활용하여 새로운 식품을 만드는 일을 일컫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