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6월 28일 10시 56분 KST | 업데이트됨 2021년 06월 28일 10시 56분 KST

[하하호] 빈지 워칭 대신 ‘몰아 보기’

어떤 외래어든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하하호 시리즈 4편

<허프포스트>가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의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하하호’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하하호’는 어떤 외래어든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소통 특급 번역기’입니다. 새로운 신조어나 외래어가 세대 간의 소통을 막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Future Publishing via Future Publishing via Getty Imag
2020년 3월 6일, 넷플릭스(NETFLIX)에서 무엇을 볼지 고민하고 있다.

넷플릭스(NETFLIX·영화,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만 있으면 한 달간 집 밖에 안 나가도 살 수 있겠다. 즐거워했던 나날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 마음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죄책감이란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있었던 탓이다. 죄명이라 하면 시간을 흥청망청 허비한 죄.

코로나19가 정점을 찍었던 지난해 3월은 그동안 못봤던 영화와 드라마를 섭렵하느랴 오히려 조급함이 생겼던 시기였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될 수록 아이패드와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국내 좀비 드라마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킹덤’ 시즌 2가 시작했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이 연달아 사이트에 올라왔고, ‘종이의 집‘이라든가 ‘애프터 라이프 앵그리맨’ 과 같은 해외 드라마 연작물도 챙겨봐 줘야 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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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1일, 넷플리스 '킹덤' 기자간담회에서 류승룡, 배두나, 주지훈, 김은희 작가, 그리고 김성훈 감독과 죽은 자들

그 와중에 ‘인간수업‘, ‘사냥의 시간‘, ‘오 할리우드‘, ‘어둠 속으로’ 등 신작 영상들은 어찌나 재미있었던가! 그 이후로는 영화 ‘분노의 질주’ 전편을 몰아 보기도 하고, 일주일간 범죄 관련 다큐멘터리에 빠졌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다 망망대해 같던 영상의 바다에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말그대로 볼거리가 똑 떨어졌다. 친구들의 사정도 마찬가지. ”요즘 뭐 보니?”라고 물어도 마땅한 추천작이 떨어질리 만무했다. 우리는 다 거기서 거기니까. 컴퓨터 친구들이 취향 맞춰 엄선한 영상들도 그닥 끌리지 않았다. 새로운 영상을 찾아 헤매던 와중에 한 친구가 ‘중국 드라마’를 제안했다.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길다는 거다. 기본적으로 중국 드라마는 30부작이 기본이고 50부작이 넘어가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에 어떤 작품을 고르든 다음 영상을 선택할 여유가 생긴다는 게 핵심이었다.

그 덕분에 요즘 중국 배우 중 누가 유명하고, 어떤 작품들이 만들어지는지 흐름을 알게 된 건 장점이긴 하다. 다만, 문제라면 그러는 동안 2020년 한 해가 다 갔다는 거다. 볼 영화가 없어 전전긍긍할 동안 단 한 줄의 책도 읽지 않았던 한 달도 있었다. 자기개발은 커녕 자기 관리도 못 했다. 몰아 보기 하느라 누워 있던 시간은 너무나 길었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 구역의 슬기로운 의사들과 무브 투 헤븐!! 

Pascal Le Segretain via Getty Images
눈동자 속에 넷플릭스 로고가 비치고 있다.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몰아보기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가지고 있단다. 네덜란드 연구팀은 5편 이상 몰아 보기를 할 경우 즐거움이 반감되고 죄책감이 늘어난다는 결과를 밝혀냈다. 이에 넷플릭스가 직접 제작하는 대부분의 영상들은 6부 안쪽으로 만들어진다. 서사 구조도 연속적으로 몰아볼 수 있도록 복잡하게 짜는가 하면 적극적으로 건너띄기와 다음 회 보기를 권장하며 몰아보기를 유도한다.

그 때문에 미국에서는 방송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영화 등을 한꺼번에 몰아 보는 것을 ‘빈지 워칭(binge-watching)‘이라고 부른다. 폭음·폭식을 뜻하는 ‘빈지(binge)‘와 본다는 의미의 ‘워치(watch)’가 합해진 신조어다. 흔히들 폭음과 폭식을 한 이후에 후회를 하거나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처럼 여러 편의 영상을 몰아 보기 한 이후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AleksandarNakic via Getty Images
이게 문제다. 침대 위에서 숙식을 모두 해결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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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드라마를 몰아 보느라 회사에 늦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케팅 용어로 ‘빈지 워칭‘을 빈번히 사용하고 있다. 단어의 속뜻을 알고 나면야 이해가 가지만 처음 들었을 때는 젊은 사람도 생소할 정도로 알기 어려운 단어다. 언어는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용어가 발생한 곳의 사회와 문화적 특성을 담고 있어서다. 그렇기에 이런 외래어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말로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빈지 워칭‘이라는 단어가 있다면 ‘몰아 보기’로 순화해서 사용하는 아주 간단한 노력 말이다. 우리 모두가 이해하기 쉬운 단어들을 사용한다면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의 연령도 확대될 뿐만 아니라 상대의 의견을 오해할 염려가 없다. 더군다나 알아듣지 못해 기분 나쁠 일도 없다.

어쨌거나 중독성이 강했던 중국 드라마는 6개월에 걸쳐 완전히 끊어냈다. 대신에 넷플릭스는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신하균 배우의 ‘괴물’까지만 몰아 보기하고, 딱 마지막으로 ‘괴물’만 끝내고 해지하련다. 시간을 좀 먹는 죄책감의 산물을 과감히 제거할 거다. 할 거다.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그런데, 혹시 또 볼 게 남은 건 아니겠지?

’빈지 워칭‘몰아보기’

방송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영화의 시리즈물 따위를 한꺼번에 여러 편 몰아서 보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