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9일 14시 43분 KST | 업데이트됨 2021년 11월 29일 15시 01분 KST

[하하호] 홈루덴스 대신 '집놀이족'

어떤 외래어든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하하호 시리즈 16편

<허프포스트>가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의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하하호’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하하호’는 어떤 외래어든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소통 특급 번역기’입니다. 새로운 신조어나 외래어가 세대 간의 소통을 막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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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 따르면 집순이와 집돌이는 밖에 나가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옛날부터 집에서 놀았다’라는 말로 답을 끝낼 수가 없다. 이것은 선천적인 데다가 성향과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집순이, 집돌이라는 단어로 말미암아 비하를 당했던 날도 있었다. 물론 요즘은 모두 집 밖을 나가지 못하니 친구가 없어서 혹은 외로운 사람이라는 편견에 부딪혀야 했던 지난날에 비해 격세지감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근 집에서 노는 것을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현상이라고 분석하며 마치 세상의 정론인 것 처럼 떠들어대는 이들이 있다. 코로나가 끝나면 집을 사랑하는 우리 같은 이들이 ‘우와~’ 소리치며 밖으로 나갈 것이라 생각하는 것만 같다. 그런 이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아래와 같다.

“옛날에도 안 나갔고, 지금도 안 나가고, 다음에도 안 나갈 예정입니다.”

물론 이 세상 새로운 흐름을 만들지 못해, 아니 신조어를 만들어내지 못해 안달인 이들은 ‘습관화’라는 명제를 들이밀며 3개월 이상 반복되어 습관화된 행동은 쉽게 버리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내놓겠지만. 뭐.

 

집순이, 집돌이라고 비하

코로나19로 생활양식 변하고 집의 활용도 높아지는 추세

집에서 잘 노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 만들어져

언어는 소통의 도구라는 것 인지해야

그런 점에서 부모님 세대에서 집을 사랑하는 이들을 존경해야 한다고 본다. “밖에 좀 나와”라고 했던 친구들의 말은 “아빠랑 똑같다, 정말”이라는 엄마의 말로 바뀌었다. 은퇴를 한 아빠가 매일 하루에 1~2편의 영화를 보는 재미로 방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날이 적었던 아빠의 과거 모습을 상상하자니, 집 밖을 나가야했던 지난 40여 년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동지로서 공감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조금 큰바람이 있다면 근로일이 주 4일제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럼 목요일 밤부터 집에 있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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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가 장기화되면서 집은 직장이 되고, 헬스장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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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도대체 집에서 할 것이 있는지 걱정어린 시선을 내비치는 이들이 있다. 결론적으로 집에서 할 일은 매우 많다. 우선 다리미질을 하면 스트레스가 싹 달아난다. 좋아하는 향을 켜놓고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침대 위에서 읽으면 세상이 내 것 같고. 온라인으로 공부 영상을 보면서 내적 소양을 쌓기도 한다. 평소에 미뤄두었던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레몬청, 매실청 등 온갖 것으로 청을 담그고 달콤한 밤 조림을 만들어 먹으면서 미식의 즐거움을 느낀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해왔던 일들이 코로나 19로 말미암아 전 국민에게 퍼지고 있는 모양이다. 밖에서 활동하지 않고 주로 집에서 놀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을 일컬어 홈루덴스(HomeLudens)라고 한단다. 1938년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인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가 발표한 저서 ‘호모 루덴스(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에서 파생된 신조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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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엔 귤 까먹으면서 영화보는 재미를 놓칠 수 없다.

당연히 코로나 19를 겪으며 집의 활용도가 높아지며 가족을 중심으로 한 집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집은 직장이나 학교가 되었고, 놀이터가 되었으며 휴식처가 되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커피숍, 또 누군가에게는 영화관이 되기도 했다. 유행이 아니라 생활 양식의 변화다. 이것을 신조어로 포장해서 집에서 노는 것을 즐기는 홈루덴스족이라는 말로 돈을 벌려고 한다면 적어도 ‘집놀이족’이라는 말로 바꿔쓰기를 청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홈루덴스’를 대체할 쉬운 우리말로 ‘집놀이족’을 선정했다. 어려운 말로 소외되는 국민이 없이 모든 이들이 뜻이 통하는 우리말로서 소통하기를 원해서다. 코로나 19가 바꿔놓은 일상은 확실히 그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이는 특정 세대가 아니라 전 국민이 겪어야 할 일이며, 집놀이족들은 앞으로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갈 테다. 그리고 또다른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 또한 비단 젊은 세대만이 아니라 홈루덴스라는 말을 모르는 모든 사람일 것이니 모두가 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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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해 집순이라며 놀림당하거나, 편견 어린 시선에 겪었던 말들은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홈루덴스족이 중요해졌다는 말을 들어도 그닥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지만 확실한 건 말과 글은 아주 미묘한 차이로도 사람 간의 소통을 가로막고 서로를 배척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말로 천 냥 빚을 못 갚는 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갚는 경우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단합과 소통이 필요한 시기. 왜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느냐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우리부터 쉬운 우리말을 사용하는 노력부터 실천해보는 건 어떠한가. 생각보다 한글의 힘은 정말 위대하니까.

 ‘홈루덴스’→ ‘집놀이족’

바깥에서 활동하기보다는 집에서 놀이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