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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호] 워케이션 대신 ‘휴가지 원격 근무’

어떤 외래어든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하하호 시리즈 2편

<허프포스트>가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의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하하호시리즈를 진행합니다. ‘하하호’는 어떤 외래어든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소통 특급 번역기’입니다. 새로운 신조어나 외래어가 세대 간의 소통을 막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강릉
강릉 ⓒPurbella via Getty Images/ImaZinS RF

대전의 한 공공기관에 다니는 친구는 지난해 4월 쯤 강릉에 있었다. 회사를 그만둔 건 아니었다. 기관이 한 달 정도 재택근무를 시행함에 따라 아예 강릉에 방을 잡아놓고 일을 할 수 있던 상황이 됐다. 비슷한 시기에 재택근무를 하던 다른 친구들까지 강릉으로 합류하게 되었다는 전개는 사돈의 팔촌이 땅을 사도 이것보다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배가 아팠다.정말. 점심이나 저녁에 만나 함께 저녁을 지어 먹고 후식으로는 바닷바람을 배터지게 먹으며 한가로운 밤의 해변을 걷는 것, 주말이면 외지 사람들을 피해 각자의 집에 모여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심심해지면 드라이브를 가는 식이다. 지금과 같은 일을 하면서 강릉에 사는 것이 목표인 내겐 그야말로 ‘구운몽’ 정도의 황홀경에 다름없지 않았달까?

강릉 안반데기 은하수
강릉 안반데기 은하수 ⓒsigint via Getty Images/ImaZinS RF

물론 해외에서는 심심치 않게 들려오던 이야기였다. 발리나 베트남 등 날씨가 따뜻한 휴양지에서 경량의 컴퓨터 하나만 들고 일하는 이들을 유목민으로 칭하기도 했으니까. 다만 대기업 위주로 움직이는 우리 사회에서 그런 건 능력 있는 프리랜서 혹은 대면 업무가 아닌 사람에게나 국한된 것이었음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갑자기 발생한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유럽 오스트리아에 있는 '파악' 호수에서 원격 근무를 하며 휴가를 보내는 모습.
유럽 오스트리아에 있는 '파악' 호수에서 원격 근무를 하며 휴가를 보내는 모습. ⓒRocky89 via Getty Images

동일 건물 내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면 즉시 건물을 폐쇄하고 방역작업을 해야 했고, 직원들은 황급히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강한 거리 두기를 하면서 평생 해본 적도 없는 재택 근무자들이 대거 발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친구처럼 집이 아닌 강릉이나 제주처럼 휴가지에서 일하는 것을 뜻하는 ‘워케이션(worcation)‘란 단어도 생겨났다. 워케이션은 일을 뜻하는 워크(work)와 휴가를 의미하는 베케이션(vacation)의 합성어다. 본래는 휴가를 낸 상황에서도 업무를 하였다면 이를 인정하여 급여를 지급하는 근무제도로 알려졌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집이나 사무실이 아닌 휴가지에서 업무와 휴식을 동시에 하는 것을 뜻하게 됐다.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다 보니 ‘장소’가 업무의 ‘질’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인정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재택근무 중인 아빠의 모습.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육아와 근무를 동시에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재택근무 중인 아빠의 모습.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육아와 근무를 동시에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hwangking via Getty Images/ImaZinS RF

직장인의 마음을 대변하듯 제주나 강원도 등 국내 대표 관광지에서는 ‘워케이션’ 제품을 내놨다. 대표적으로 강원도관광재단이 지난 3월 인터파크와 함께 ‘산으로 출근, 바다로 퇴근’이란 상품을 내놓는가 하면 제주의 호텔에서 업무와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상품을 선보인 것이 예다.

지자체와 기업들이 '휴가지 원격 근무'와 관련한 다양한 상품을 내놓았다.
지자체와 기업들이 '휴가지 원격 근무'와 관련한 다양한 상품을 내놓았다. ⓒ(위에서 아래로) 인터파크투어, 프립, 글래드 호텔앤리조트

다만, 워케이션보다는 ‘휴가지 원격 근무’라는 쉬운 우리말로 쓰는 것을 제안한다. 워케이션이란 신조어를 아는 이들이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사회 초년생인 것을 고려한다면 40대~50대의 직장인 또는 동료들이 언어로 소외되거나 소통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유행이라는 이름 아래 생겨난 신조어가 직장 내 단절을 만들어내고, 서로를 등한시하거나 차별화하는 데 일조하게 된다면 해당 단어를 안 쓰는 것이 옳을 테다.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신조어 대신 ‘휴가지 원격 근무’라는  쉬운 우리말로 쓰기 시작한다면 정확히 뜻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유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서로 간의 장벽이 생기는 것을 막을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워케이션휴가지 원격 근무

원격 근무의 한 형태로 휴가지에서 휴가·업무를 병행하는 일이나 제도

황혜원: hyewon.hwang@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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