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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호] 슬립 테크 대신 ‘숙면 기술’

어떤 외래어든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하하호 시리즈 1편

<허프포스트>가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의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하하호시리즈를 진행합니다. ‘하하호’는 어떤 외래어든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소통 특급 번역기’입니다. 새로운 신조어나 외래어가 세대 간의 소통을 막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는 한때 수면 중독자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잠을 잤다. 하루에 10시간씩 숙면해도 병든 닭처럼 기운이 없었다. 구글에 ‘수면 중독’을 검색하면 노력해도 무언가를 이룰 수 없을 것 같다는 무기력감이 들 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나온다. 일종의 우울 증상 증 하나다. 잠을 끊을 수 없다는 내게 의사는 회사를 쉬어서 다행이라며 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을 감사하게 여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긴긴밤을 멀쩡한 상태로 견뎌내야 하는 ‘불면증’ 환자들도 있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줘요 그 좋은 손길에 까무룩 잠이 들어도 잠시만 그대로 두어요 깨우지 말아요 아주 깊은 잠을 잘 거예요 스르르르륵 스르르 깊은 잠을 잘 거예요 

- 아이유의 ‘무릎’ 中

아이유가 자작곡 '무릎'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장면. 어릴 적 할머니 무릎에 누워 잠들었던 때가 살면서 가장 잘 잤던 순간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아이유가 자작곡 '무릎'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장면. 어릴 적 할머니 무릎에 누워 잠들었던 때가 살면서 가장 잘 잤던 순간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JTBC '유명가수전'

“아예 자는 걸 포기해요.”

과연 포기하는 것에 잠을 포함시킬 수 있을까. 이는 아이유가 10년간 불면증을 겪으며,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자는 것을 포기하고 산책이나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을 한다면서 밝힌 자기 고백이다. 콘서트 총 연습을 2번이나 하고서도 한숨도 못 잔 당사자가 한 말이니 그 마음은 오죽할까 싶다. 악동뮤지션의 수현도 마찬가지. 그 또한 48시간 동안 잠을 못 잔 적이 있으며, 멍한 상태로 운전을 할 수 없어 아끼는 애마의 운전대를 오빠인 찬혁에게 맡기는 사태도 발생했다.

10년간 불면증을 겪고 있다고 고백하는 아이유(위), 최근 1년 반 동안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밝힌 악동뮤지션 수현(아래)
10년간 불면증을 겪고 있다고 고백하는 아이유(위), 최근 1년 반 동안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밝힌 악동뮤지션 수현(아래) ⓒJTBC '유명가수전'(위), JTBC '독립만세'(아래)

 

80대 100명 중 4명은 ‘불면증’

슬립 테크 대신 ‘숙면 기술’이라 부르자

연령과 관계없이 누구나 사회적 혜택 누릴 수 있어야

불면은 비단 연예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잠들지 않는 나라, 우리나라는 수면 부족 국가 1위다. 2016년 OECD 국가 평균 수면 시간이 8시간 22분인 데 반해 우리는 그들보다 41분 적은 7시간 41분으로 나타났다. 구인구직플랫폼이 2020년 진행한 직장인 수면 시간 조사 결과는 평균 6시간 6분이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불면증 진료를 받은 환자 수가 매년 증가해 2015년 51만 명에서 2019년에는 63만 명으로 늘었다. 진료비용 또한 약 641억 원에서 1,053억 원까지 증가했다.

숙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기기
숙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기기 ⓒ게티 이미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대인들이 ‘수면의 질’에 집착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양을 늘릴 수 없다면, 질이라도 높이자는 거다. 덕분에 잠과 관련한 용품들이 불티나게 팔린다. 최근엔 잠을 뜻하는 ‘슬립(Sleep)’과 기술인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합성어인 ‘슬립 테크’라 하여 인공 지능( AI)과 사물 인터넷(IoT) 등 첨단 기술로 수면 데이터를 분석해 숙면을 돕는 기술이 나날이 발전 중이다. 수면 습관을 측정해주는 ‘수면 추적 장치’나 체온 변화에 따라 방 온도를 조절해 주는 기기, 수면의 질을 보장해준다는 침대 등이 모두 슬립 테크가 포함된 제품이다.

신체적, 사회적 이유로 인해 수면 장애를 앓는 고령층이 늘고 있다.
신체적, 사회적 이유로 인해 수면 장애를 앓는 고령층이 늘고 있다. ⓒ게티 이미지

하지만 정작 ‘불면증’을 가장 많이 앓고 있는 60~80대까지는 ‘슬립 테크’의 기술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불면증은 나이가 들수록 유발률이 높다. 흔히 ‘나이 들면 잠이 없어진다는 말’이 맥을 함께 한다. 인구 10만 명 당 불면증 진료 인원 수를 살펴봐도 80세 이상에서는 100명 중 약 4명(10만 명당 4,219명), 70세 이상에서는 100명 중 약 3명(10만 명당 3,437명), 60대에서는 2명(10만 명당 2,229)명으로 상대적으로 고령일수록 불면증 진료를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가 0.4명(10만 명당 480명)인 것과 상대적으로 비교가 된다. 한데 정작 필요한 고령자들이  ‘슬립 테크’라는 말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용어 장벽으로 숙면에 도움이 되는 제품과 서비스를 활용할 기회조차 잃어버릴 수 있다. 60부터 80세까지 20년 넘게 괴로움으로 밤잠을 설친다고 생각해보시라.

이에 따라 최근엔 슬립 테크가 아닌 ‘숙면 기술’로 바꿔 부르자는 움직임이 생기고 있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우리말로 쓴다면 연령과 관계없이 세상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용어만 바꿔도 꿀 같은 잠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일상을 바꿀 기회가 균등하게 분배될 수 있다.

 슬립 테크숙면 기술

인공 지능과 사물 인터넷 기술로 수면 데이터를 분석하여, 숙면을 도와주는 용품을 개발하는 기술.

황혜원: hyewon.hwang@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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