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년차, 대화 많지만 섹스 어색한 우리 괜찮을까?"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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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결혼 10년차입니다. 내 생애 최고 행운이 남편을 만난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남편이랑 정말 잘 맞아요. 나만의 대나무숲일 정도로 밖에서 못하는 얘기도 다 하고 대화도 많아요. 그런데, 주관적으로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가끔 객관적으로 문제가 있나 싶은 게 있어요. 대화는 많은데 스킨십이 없어요.

뭐 껴안고 뽀뽀하는 거 말고 섹스나 키스 등 성적인 교감이나 이런 건 전무한 것 같아요. 이제 두 아이가 잠자리 독립을 해서 같이 자도 되는데, 남편이 굳이 거실에서 잡니다. 친정엄마가 아이들 때문에 같이 계셔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원래 제가 잠버릇이 심하기도 하고, 암튼 그런 선택이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사실 저도 서운하거나 이 상황을 개선해서 같이 자고 싶고 그런 건 아닙니다. 가끔 술 먹고 들어오거나 어디 놀러 갔을 때 시도(?)를 해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게 너무 어색해서 그냥 모른척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무성애자는 아니에요. 다만 저는 밤에 드라마 보면서 설레고 그런 거로 어느 정도 욕구가 충족이 되거든요. 가끔 남편이랑 키스는 하고 싶기는 한데, 갑자기 들이대는 것도 어색하고요. 뭐 애들 다 키우고 집에 우리 둘만 있으면 뒤늦게 타오르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지금 크게 문제라는 생각은 안 하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불시에 생각나면 좀 긴장이 될 때가 있어요. 그리고 남편이 진짜 괜찮은 건가, 내 앞에서만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하는 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곪을 대로 곪는 건가, 그런 불안이 찾아올 때도 있고요. 뭐 그냥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겠죠? ㅡ 남매 같은 남편과의 관계 알쏭달쏭한 여자

A2. 사실 결혼 이후의 섹스리스 문제는 아주 고전적인 이슈죠. 처음엔 불같이 사랑을 나누던 커플도, 어느 순간이 되면 ‘더는 예전 같지는 않은’ 시간을 경험하게 되지요. 함께해 온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서로를 더 잘 알아가게 되는 일이기도,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사그라지는 일이기도 한 것이니까요. 생애 최고 행운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남편, 그러나 마치 남매처럼 지내는 상황. 이것이 당신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상황이네요.

이제 눈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한 상황 파악은 되었으니, 당신의 내면을 볼 차례예요. ‘친정엄마가 함께 산다.’ ‘밤에 드라마 보면서 설레는 것으로 욕구가 충족이 된다.’ ‘딱히 서운하지도 않고 자고 싶은 생각도 없다.’ ‘어쨌든 주관적으로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이 지금 상황에 대해 묘사한 말들입니다. 하지만 문제에 객관적인 것, 주관적인 것이 따로 있을까요? 당신은 ‘이대로 괜찮은가?’ ‘혹시 우리 관계가 어딘가 곪은 건 아닌가?’라는 걱정이 든다고 했어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때때로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합니다. 당신에게 남매 같은 관계가 정말 좋은 것이라면, 이런 의문은 애초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이 감정은 별것 아닐 거야’ ‘난 괜찮아’라고 설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괜찮다고, 서운하지는 않다고 말하기 전에, 당신이 느낀 감정들을 존중해야 하지 않나요? 그 감정이, 당신의 삶에 지금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성적인 것’이라면 여전히 ‘섹시함’ ‘욕구’ ‘유혹’ ‘흥분’ 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죠. 그러니 부부의 성이라고 하면 ‘가족끼리 왜 이래~’라며 섹스리스를 당연한 듯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고요. 물론 10년을 살았는데, 한달 만난 사람들처럼 뜨거울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뜨거울 수는 없어도, 말로 형용할 수 없이 따뜻한 순간을 만들 수는 있지 않나요? 성이란 그저 흥분되고 뜨거운 것이 아니라, 위로이며 대화이고 친밀한 교감의 상징이기도 하니까요. 대화가 잘 통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만, 인생의 긴 시간을 함께 관통하는 데에 있어 서로의 몸에 늘 관심을 기울이고 몸으로 교감하는 것은 부부라는 관계를 더 가깝고 끈끈하게 해주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말로 하는 대화를 통해 이해받는 만큼 몸으로 하는 대화를 통해 있는 그대로 나를 표현하고 사랑받고 싶은 것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본능일 겁니다.

이것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서로의 몸에 관해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지 않는데, 아이들이 다 크고 나서는 그것이 갑자기 될까요? 부부 사이의 성적인 친밀감은, 전구의 스위치처럼 껐다 켰다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차갑게 식어 버리지 않도록, 어느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도록 삶의 여정에서 계속 노력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내가 먼저 그 사람의 몸에 관심을 가져 보시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내가 먼저 가벼운 스킨십부터 시도해 보세요. 어색하다는 이유로 모르는 척 하는 일이 늘어날수록, 정말로 뭔가가 곪아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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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40살에 막 접어든 10년차 회사원입니다. 저는 요즘 사춘기에 접어든 것처럼 감정이 요동칩니다. 마흔이면 불혹이라는데, 미혹에 자주 빠지네요.

마흔이 되도록 모아둔 돈은 없고, 학교 다닐 적 친구들이랑은 연락도 끊겨 인간관계는 너덜너덜해진 듯해요. 오는 전화라고는 직장 상사밖에 없네요. 아내와의 연락도 ‘용건만 간단히’입니다. 연애 때는 물론 안 그랬는데 말이죠. 아직 유치원생인 두 아이랑도 벌써 데면데면해요.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애쓰는 편인데도 아빠를 회사, 출장만 다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심각하다 생각하는 문제는 특별히 뭘 잘하고 싶은 게 없다는 것입니다. 10년 뒤 제 모습을 떠올리면 불안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 불안감의 정체 또한 모호해서 더 힘들어요. 저와 비슷한 나이, 비슷한 상황에 있는 아내는 자신의 인생을 잘 개척하는 듯 보입니다. 저는 왜 이렇게 힘들까요. 10년째 한 직장만 다녔으니, 이직해서 상황을 바꿔볼까 생각해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도전하고 싶은 것이 없으니 이 또한 잠깐 생각만 하다 그칠 뿐이에요.

갈수록 담배와 술만 늡니다. 이유는 담배와 술을 할 때만이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주변 선배들은 서른에서 마흔으로 넘어갈 때, 이런 마음이 드는 사람들이 많다고 다독이더라고요. 그나마 위안이 되기도, 아니기도 합니다. 이 비슷한 마음의 40대들은 어떻게 이 시간을 보냈을까요? 저는 어떡하면 좋을까요? ㅡ ‘사십춘기’ 불혹의 남성

A2. 이래저래 삶에 대한 허무함과 무기력이 찾아와 힘드실 것 같습니다. 매일 같은 일상, 변화나 발전이 없는 현실에서 지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신기한 일이겠지요. 제가 그런 당신에게 한 가지 권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쉬는 날, 서점이나 도서관에 한 번 가보세요. 스물에 대한 책도, 서른, 마흔에 대한 책도, 쉰, 예순에 대한 책도, 그 이후의 시기에 대한 책도 똑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시기에든 인생은 지금까지의 긍정적인 경험과 부정적인 경험들을 토대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경험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다음 삶의 여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마흔까지 특별히 잘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해서, 10년 뒤에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당신의 표현대로 ‘잠깐 생각만 해보다가 그치는 것’을 반복한다면 10년 뒤에는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지도 모를 일이죠. ‘도전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아무것도 안 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 때문이든, 귀찮음 때문이든, 사실상 아무것도 시작해보지 않으니, 결과적으로 삶에 도전이란 것이 생겨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시작’이라는 것은 나 자신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가능해요. 하루에 30분이라도, 나 자신에게 ‘인풋’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려고 노력해 보세요. 그것은 독서일 수도, 혼자 하는 공원 산책일 수도, 내 마음을 기록해보는 ‘일기 쓰기’일 수도 있습니다. 대단하고 거창한 도전 이전에, 일상의 ‘소박하고 새로운 입력값’이 들어오고 그것이 어느 정도 쌓였을 때 삶의 활력이 생겨나기 때문이지요. 그 활력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주요한 동력이고요. 그저 술과 담배가 주는 얕은 안도감으로 도망치는 행동을 ‘온전한 나를 위한 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정신적 만족이란 영역은 매우 섬세하고 고차원적인 것이며 그것은 겨우 알코올과 니코틴에 의해 채워지지 않지요.

앞자리 숫자가 ‘4’로 바뀌는 것은 누구에게나 처음 있는 일이고, 마음이 요동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비슷한 나이이고, 당신과 함께 인생길을 걷고 있는 아내에게 당신의 마음을 이야기해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네요. 그것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당신이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자신도 몰랐던 욕구를 발견하게 해줄 전문 상담자를 만나는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마흔은 미혹되지 않아야 하는 나이가 아니라, 나도 몰랐던 나를 새롭게 발견하기 딱 좋은 나이입니다.

*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s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