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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 피해 지붕 올라간 소들의 행방 : 그 끝에 삶은 없었다 (르포)

지붕에서 내려온 소가 거쳐 간 거리는 약 400km. 그 끝에 삶은 없었다.

8월8일 전남 구례 이상길(가명·57)씨 농장에서 축사에 갇힌 채 물에 휩쓸렸다 살아남은 송아지(10월21일 모습). “고생을 한 탓에 면역력이 떨어져서인지” 얼굴에 부스럼이 피고 털이 하얗게 셌다. <a h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9938.html?_fr=mt2#csidx2df587d4d34bc83a650015a2374ce2a'></div></a>
8월8일 전남 구례 이상길(가명·57)씨 농장에서 축사에 갇힌 채 물에 휩쓸렸다 살아남은 송아지(10월21일 모습). “고생을 한 탓에 면역력이 떨어져서인지” 얼굴에 부스럼이 피고 털이 하얗게 셌다.  ⓒ한겨레

2020년을 물로 퉁퉁 불리며 역대 최장기 장마가 쓸고 갔다. 인간이 덥힌 지구는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비를 쏟아부었다. 인간이 부른 재난 한가운데서 인간의 음식으로 사육되던 생명들이 인간이 피신한 자리에 남겨져 죽음을 맞았다. 전남 구례에서만 572마리(전국 1213마리)의 소가 목숨을 빼앗겼다. 물에 잠긴 땅에서 사람들이 살길을 잃고 울 때 살기 위해 올라간 지붕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소들이 울부짖었다. ‘기후위기 도미노의 마지막 서열’에 놓인 그들이 구겨져 칼날처럼 날카로워진 양철 지붕에 찔려 피를 흘리면서도 구조되길 포기하지 않았다. 섬진강 범람 뒤 100일(11월15일)이 됐지만 사람도 소들도 여전히 상처투성이다. ‘지붕 위 그 소들’ 중 한 마리인 90310(귀표 번호)이 죽지 않고 땅을 밟은 뒤 거쳐 간 400여㎞의 길을 좇았다.

살아남았어도 살아남지 못했다.

물에 빠진 소가 살기 위해 지붕으로 올라갔으나 살아서 땅을 밟은 소에게 허락된 ‘400여㎞ 여정’의 끝엔 삶이 없었다.

 

××× ×××× 90310

“아따 우리 집보다 좋아버리네.”

전남 구례 양정마을(구례읍 봉서리) 주민 최성옥(가명·67)은 10월19일 청와대 앞에 있었다. 그가 바닥에 드러누웠다.

지난 8월 섬진강 범람 피해를 입은 구례군민 50여명이 버스를 대절해 국회와 감사원과 청와대를 돌았다. “(섬진강 수해는) 역대 최장 장마에도 (섬진강댐이) 만수위를 유지하다 (8월8일) 하루 만에 집중 방류한 명백한 인재”라며 검은 만장을 들었다. “평생 경험한 적 없는 물폭탄에 집과 축사를 잃은” 주민들은 “생계 터전을 잃은 국민의 눈물을 닦아달라”고 대통령에게 호소했다.

“참말로 따시다.”

최성옥이 물먹은 집터보다 햇볕 내린 아스팔트가 따뜻하다며 몸을 뉘었다. 그의 집은 범람 사흘째 되던 날 말끔하게 헐렸다.

“쟈도 이번 물난리에, 쯧쯧.”

상경투쟁 이틀 뒤(10월21일) 최성옥은 양정마을회관 앞에 있었다.

개 한마리가 다리를 절룩이며 감나무밭으로 들어갔다. 물이 쓸고 간 지 석달이 차가고 있었지만 개도 사람도 여전히 상처투성이였다. 오른쪽 앞발을 쓰지 못해 걸을 때마다 몸이 가라앉는 개를 최성옥이 안쓰러운 눈으로 좇았다.

“서울서 펑펑 울어버”리느라 붉어진 최성옥의 눈앞엔 그 눈으로 올려다볼 지붕이 없었다. 철거된 그의 집 지붕도 붉은빛이었다. 붉은 지붕보다 붉은 핏물이 ‘그날’ 그의 지붕에 고였다.

8월10일 119 구조대 소방위 양달승은 그 지붕 위에 있었다.

물에 떠내려가다 지붕에 매달린 소들이 물이 빠진 뒤에도 내려오지 못하고 겁먹은 눈을 껌뻑였다. 구겨지고 찌그러져 칼날처럼 날카로워진 양철 지붕에 소들이 찔리고 긁히며 흘린 피가 흥건했다.

양달승은 전남 광양소방서 소속인데 구례에 있었다.

섬진강 물에 구례가 잠기면서 ‘응원 출동’을 나왔다. 수해 규모가 관할 순천소방서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자 광양(구례 투입)과 보성소방서(곡성 투입)에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범람 당일 양달승은 보트를 타고 다니며 주민 50여명을 구조했다. “찾아도 찾아도 안 보여 실종 신고된 노인들이 깜깜한 밤 건물 옥상에서 배를 타고 온 구조대에 발견”(최성옥)됐다.

인간이 내려간 지붕엔 소들이 있었다.

구멍 뚫린 양철 위에서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하던 소들이 지붕 아래로 툭툭 떨어졌다. 추락한 소들이 최성옥의 집 방마다 들어앉아 지붕에서 흘러내린 물을 핥았다. “방 하나 뜯고 한마리 들어내고 방 하나 뿌사뿌고 한마리 끄잡아내고를 몇번 했더만” 그의 집이 사라졌다.

“소방관 생활 18년 만에 처음 해보는 구조 임무”가 양달승에게 맡겨졌다. 그가 블로건을 불자 마취주사기가 날아가 소의 엉덩이에 꽂혔다. “이틀 동안 굶어 극도로 예민해진 소들”을 진정시킨 뒤 기중기에 걸었다. 줄에 달려 땅으로 내려진 소들이 기진한 몸으로 바닥에 배를 깔았다.

2020년을 물로 퉁퉁 불리며 역대 최장기 장마(54일)가 계속됐다. 인간이 덥힌 지구는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비를 쏟아부었다. 인간이 부른 재난 한가운데서 인간의 음식으로 사육되던 생명들이 인간이 피신한 자리에 남겨져 죽음을 맞았다.
지난여름 집중호우로 전국에서 1213마리(8월11일 기준 농림축산식품부 집계)의 소(한우)가 죽거나 실종됐다.

최대 피해는 전남에서 발생했다. 871마리(8월23일 기준 전남도 집계. 피해 농가가 보상 신청을 하지 않았거나 축산물 이력제 등록이 안 된 어린 송아지까지 합치면 더 늘어남)가 살아남지 못했다. 전남 중에서도 구례의 소가 가장 많이 죽었다. 강으로 몰려든 비는 수문을 활짝 연 섬진강댐을 빠져나와 572마리(9월8일 기준 구례군 집계)의 목숨을 빼앗았다. 사람의 재난 뒤엔 사람의 재산 피해로 집계되는 생명들의 재난이 있었다. 그들의 죽음은 사망과 실종 대신 ‘폐사’나 ‘유실’로 표기됐다.

사람 머리 위에서 소가 울고, 소가 떨어지고, 소가 들려 내려지는 모습이 이 지붕과, 저 지붕과, 그 지붕에서 축산 농가와, 구조대와, 전 국민에게 생전 처음 보는 장면을 연출했다. 양달승과 동료 대원들은 이날 하루에만 5개 지붕을 옮겨 다니며 20여마리를 구조했다.

최성옥의 ‘××× ×××× 90310번’(이력제 시스템에 등록된 12자리 귀표 번호) 소도 그들 중에 있었다.

사람들은 소의 귀에 번호를 붙여 ‘사육지’를 구분했으나 등록 번호를 조회하지 않으면 누구의 소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소를 구한 양달승도, 소의 주인 최성옥도, 90310이 어느 지붕에서 내려왔는지 기억하거나 전해 듣지 못했다.

8월 9일 오전 섬진강 범람으로 침수된 전남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의 한 축사 위 지붕으로 소들이 올라가 있다.
8월 9일 오전 섬진강 범람으로 침수된 전남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의 한 축사 위 지붕으로 소들이 올라가 있다. ⓒ뉴스1

행방불명

귀를 뚫어 새긴 숫자 90310이 이름 없는 그 소의 이름이었다.

90310은 지난해 5월25일 최성옥의 축사에서 태어났다. ‘쇠고기 이력제 시스템’(소의 출생·사육부터 수입·판매에 이르기까지 단계별 정보를 기록·관리)엔 두달 뒤인 7월16일 등록됐다. 월령 15개월 된 암소였다.

90310의 어미도 최성옥 농장에서 난 소였다. 최성옥의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2013년) 5월 송아지로 받았다. 남편 없이 혼자 키운 소가 90310 등 새끼를 여러차례 낳으며 월령 88개월이 됐다. 두 소를 포함해 최성옥 농장의 소 전체(16마리)를 8월8일 거대한 물이 덮쳤다.

양정마을은 섬진강 바로 옆 동네였다. 새벽 5시께 일어난 최성옥이 애호박 비닐하우스를 둘러본 뒤 강둑에 올랐다. 수일째 내린 폭우로 섬진강이 부풀어 오르자 마을 주민들은 날마다 둑에 나가 강 수위를 확인했다. 차오른 물이 둑을 긁으며 흙을 잡아먹고 있었다. 최성옥이 마을로 뛰어왔을 땐 이미 물이 떼로 밀려오고 있었다. 그날따라 집에 와서 자고 있던 손자를 흔들어 깨운 뒤 “소들은 우째 해보도 몬헌 채” 주민 차를 얻어 타고 동네를 빠져나갔다. 물이 허리 높이까지 내려간 이튿날 물에 잠긴 길 대신 지붕 색깔을 보고 집을 찾아갔다. 집이 “엉망진창 난장판”이었다. 어디로 쓸려갔는지 축사엔 소가 한마리도 없었다. “물탱크가 누지르고 있는 놈을 끄잡아냈지만 넘의 소”였다. 90310의 행방도 알 수 없었다.

하루 사이에 마을은 소의 무덤이 돼 있었다.

구례군에서 죽은 소 90% 이상이 양정마을에서 나왔다. 300~400㎏의 소가 축사를 받치는 쇠파이프들 틈에 목이 걸려 몸을 늘어뜨린 채 죽어 있었다. 물에 잠긴 나뭇가지 사이에 다리가 끼여 빠져나오지 못하고 익사한 소들도 있었다. 더운 여름 물에 젖은 사체들이 며칠 만에 해골로 발견되기도 했다. 주검들을 모은 ‘소 무더기’가 길가 여기저기에 산더미처럼 쌓여 쓰레기 더미와 자리를 다퉜다.

살아서는 인간의 ‘비축품’(가축을 뜻하는 영어 단어 ‘stock’의 다른 뜻)이었던 소가 죽어서는 ‘폐기물’로 처리됐다. 포클레인이 삽으로 소들을 퍼서 덤프트럭에 담았다. 트럭은 구례군과 계약한 렌더링 업체로 사체들을 가져갔다. 조달청에서 살처분 가축 처리 용역을 낙찰받은 이 업체는 동물 사체에 고온·고압을 가해 기름을 뺀 뒤 소각해서 퇴비로 재활용했다.

90310이 덤프트럭에 실렸는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을 때 25t 트럭 4대가 이상길(가명·57)의 죽은 소들을 실어냈다. 그의 소 117마리 중 53마리가 죽거나 어디론가 떠내려갔다. 둑 앞에서 송아지를 유산한 뒤 피범벅으로 발견된 어미 소도 있었다.
생존한 소들도 생사를 오갔다. 살에서 고름을 흘리며 썩어가는 소가 있었고, 다리가 굵은 통무처럼 부어올라 일어서지 못하는 소도 있었다. 어깨가 빠져 몇걸음 걷지 못하고 주저앉거나, 찢어진 피부가 아물지 않아 벌건 살을 내보이며 기력을 잃었다. 축사에 갇힌 채 물에 휩쓸렸다 살아남은 한 송아지는 “고생을 한 탓에 면역력이 떨어져서인지” 얼굴에 부스럼이 피고 털이 하얗게 셌다.

이상길의 농장은 서시천(섬진강 지류) 제방 바로 옆에 있었다. 수자원공사 섬진강지사는 8월8일 아침 6시30분부터 초당 1000t(800t에서 확대 방침을 구례군청에 7분 전 통보)의 물을 섬진강댐에서 내려보냈다. 아침 7시52분부턴 초당 1868t(8분 전 통보)으로 방류량을 늘렸다. “이명박 정부 때 자전거도로를 만들며 낮춘 서시천 둑을 급류가 타고 넘었”다. 제방 40여m를 무너뜨리며 밀고 들어온 섬진강물이 그의 농장으로 달려들었다.

“어디요? 하동이요?”

죽은 소들로 가득한 축사의 참상에 망연해하고 있을 때(8월9일) 이상길은 경남 하동소방서의 전화를 받았다. 하동군 금성면 갈사만 매립지에서 그의 암소를 구조했다는 소식이었다. 어선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원들이 배를 타고 현장에 닿아 탈진한 소를 데려왔다. 귀표를 보고 주인을 확인한 소방서가 이상길에게 알렸다. 2018년 12월에 출생한 23개월령 암소였다. 양정마을에서 직선거리 36㎞를 떠내려가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소가 10월21일 그의 농장에서 마른풀을 씹었다.

“어디요? 남해요?”

하동소방서의 전화 뒤 남해군청에서도 연락이 왔다. 남해군 고현면의 ‘난초섬’에서 그의 소를 구조했다고 군청 공무원이 전했다. 축사에서 55㎞ 떨어진 무인도에서 살아 돌아온 소는 지난해 4월 태어난 19개월령 암소였다. 몸무게 450㎏에 임신 6개월째인 소가 하동에서 돌아온 소 저편에서 같은 날 마른풀을 씹었다.

인간은 감당하지 못했을 멀고 험한 물길을 견뎌내며 바다에 닿은 소들이었다. 물속에서 머리만 내민 채 수십㎞를 헤엄치며 살아남은 소들이 이상길은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8월10일 90310과 같은 지붕에서 구조된 어미 소가 이튿날 새벽 쌍둥이를 낳았다. 그중 한마리가 10월21일 박남순(가명)씨의 축사에서 위중한 상태로 수액을 맞고 있다.<a h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9938.html?_fr=mt2#csidxbff7682dae23512b71b9d14f6a5b321'></div></a>
8월10일 90310과 같은 지붕에서 구조된 어미 소가 이튿날 새벽 쌍둥이를 낳았다. 그중 한마리가 10월21일 박남순(가명)씨의 축사에서 위중한 상태로 수액을 맞고 있다. ⓒ한겨레

 

검은 지붕

90310이 어디선가 살기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살기 위해 탈주를 감행한 소들이 있었다.

섬진강을 뛰쳐나온 물이 농장에 차오르기 직전 황정국(가명·구례군 문척면)은 축사를 열었다. 소 46마리를 몰고 나와 산(해발 530여m 높이의 오산)으로 올려 보냈다. “물에 빠져 죽느니 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구하길 바랐”다. 소가 두 무리로 나뉘었다. 절반은 산기슭에 머물렀고 절반은 도로를 타고 달렸다. 대장 소가 무리를 이끌고 산사(사성암)로 올라갔다. 그 소들의 모습이 도로와 절에서 사람들의 카메라에 잡혀 뉴스로 전파됐다.

사성암 쪽의 연락을 받은 황정국이 트럭을 몰고 가서 소들을 데려왔다. “농장에 들어찬 물이 빠질 때까지 이틀 낮밤을 야산에 뒀”다. “절로 올라가지 않은 소들과 고랑에 빠진 소를 건져내 합쳤”다.

물에서 도망쳐 생명을 구한 소들이었으나 물이 물러간 뒤 12마리가 생명을 잃었다. “산에서 죽어 사체로 내려온 소도 있었고, 축사까지 돌아온 뒤 열흘을 앓다 죽은 소도 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던 소들이 급격하게 살이 빠진 모습으로 숨을 멈췄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자리를 정하지 못한 소들이 지금도 여럿 있었다.

산에서 구조된 소들은 곡성에도 있었다. 농장주와 군청 공무원, 소방대원들이 산속에서 소 6마리를 찾았을 땐 섬진강 범람 뒤 3주가 지난 시점(8월28일)이었다. “본래 온순한 소들이 그동안 상당히 난폭해져 있었”(곡성군 공무원)다. “주인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던 소들이 산속에서 굶주린 채 몰려다니며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먹은 탓인지 야생화의 징후마저 보였”다.

낯설고 충격적인 장면들이었다.

느닷없는 급류에 휩쓸리면서도 안간힘을 다해 헤엄치고, 남쪽 바다까지 떠내려가서도 끈질기게 살아 돌아오고, 물이 따라오지 못하는 산속 절로 달려가 풀을 뜯고, 파손된 지붕 위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구조되길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고기로 태어나 오직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길러진 소들도 인간만큼이나 살고 싶어 하는 생명이란 사실을 인간 세계에 각인시켰다.

생사 불명이었던 90310도 죽지 않고 그 세계로 돌아왔다.

최성옥의 집이 헐리고 하루이틀 뒤였다. 한 주민이 트럭에 싣고 온 소들 가운데 90310도 있었다. 축사를 부순 물에 휘말렸을 때에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축사를 벗어난 소였다. 축사 밖에서 만난 첫 세상이 물바다란 사실에 놀라 네 다리를 버둥거리며 발 디딜 곳을 찾았을 것이었다.

물이 섬진강과 양정마을의 경계를 지웠을 때 물에 붙들린 소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며 주인 구분 없이 뒤섞였다. 이 축사의 소들이 저 축사에 들어와 있었고, 저 농장 소들이 이 농장 지붕에서 살려달라며 울었다. 주민들은 내 소 네 소를 가리지 않고 눈에 띄는 대로 자신의 농장으로 데려와 볏짚과 사료를 먹였다. 축사에 고인 물이 빠지고 다시 소를 넣을 수 있을 만큼 수습됐을 때 귀표로 확인한 주인에게 데려다주고 데려왔다.

“오매, 소가 우네.”

트럭이 내려준 최성옥의 소는 90310 등 6마리였다. 그의 소 16마리 중 10마리가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 덤프트럭이 죽은 소들을 실어 갔다는 사실만 알 뿐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최성옥은 듣지 못했다. 10마리 가운데 그가 죽어가는 모습을 본 소는 80개월(2013년 12월 출생)짜리 암소 한마리뿐이었다. 그가 소를 찾으러 갔을 땐 이미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를 본 소가 “밥 주는 사람인 줄 알아보고” 눈물을 떨궜다. 한우 농사 15년 동안 처음 본 소의 눈물이었다.

최성옥은 고인이 된 남편과 2005년 송아지 5마리를 사서 농장을 시작했다. 어미 소가 새끼를 낳으면 수컷은 팔고 그 돈으로 산 사료로 암소를 키워 다시 새끼를 냈다. 죽은 소 10마리는 모두 그의 농장에서 태어나 자랐다. 8마리가 암소였고 2마리만 수소였다. 수소 2마리는 지난 4월 일주일을 사이에 두고(15일과 22일) 세상에 왔다. 24.8개월이 10마리의 평균 수명이었다. 가장 오래 산 소의 나이는 88개월이었고, 수명이 가장 짧은 소는 수해 한달 전(7월5일) 태어났다. 월령 88개월 소가 90310의 엄마였다. 엄마는 죽어서 렌더링 업체로 실려 갔고, 90310은 살아 돌아와 엄마를 찾으며 엄무우 울었다.

섬진강 범람 뒤 ‘극적 스토리’로 주목받은 소들이 있었다. 남해와 하동까지 떠내려갔다 돌아온 이상길의 소가 그랬고, 좁은 산길을 따라 사성암으로 올라간 황정국의 소가 그랬다. 최성옥의 붉은 지붕 건너편 ‘검은 지붕’에서도 소들이 울었다. 그 지붕에서 소방위 양달승에게 구조된 박남순(가명·60)의 소(월령 101개월)도 시선을 잡았다.

유독 예민한 소였다. 다른 소들이 기중기에 들려 내려갈 때도 지붕에서 움직이지 않고 버텼다. 마취주사기를 맞고서야 땅에 내려온 소의 뒷다리는 양철 지붕에 긁혀 “거북이 등껍덕 모양으로” 벗겨져 있었다. 이튿날 아침 박남순이 축사에 나왔을 때 이른 새벽 혼자 쌍둥이(암컷)를 낳은 소가 혀로 새끼들을 핥아주고 있었다. “배 속 새끼들을 잃지 않으려고 지붕에서 꿈쩍도 안 했나 보다”고 박남순은 짐작했다.
어미 소가 기운을 회복하는 동안 쌍둥이들의 상태는 나빠졌다. 특히 한마리는 몸을 가누기 힘들 만큼 위중(10월21일 상황)했다. 담요를 덮고 링거를 꽂은 채 축사 한쪽 구석에 누워 가쁜 숨을 쉬었다. 박남순이 “어미가 고마워서라도 겁나게 신경 쓰는 송아지인디 자꾸 픽픽 쓰러진다”며 울먹였다. 그는 소 270여마리 중 80여마리를 잃었다.

쌍둥이의 어미 소가 구조된 지붕에 90310도 있었다. 쌍둥이 출산 소식을 전하는 뉴스 영상에 노란 귀표 숫자 90310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가 그 지붕에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의 머릿속에도 남지 않았다.  

9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의 한 마을 축사 지붕에 소가 올라가 있다. 
9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의 한 마을 축사 지붕에 소가 올라가 있다.  ⓒ뉴스1

등외

눈에 띄지 않던 그 소가 소멸 직전에야 눈에 띄었다.

“그럼 8월18일로 예약해두겠습니다.”

며칠 전 김해 ㄱ도축장의 영업과장 강태식(가명)에게 90310의 귀표 번호가 전달됐다. 그는 90310을 받을 날짜를 구례축협 담당자와 상의했다. 수해 소식을 보도하는 뉴스에서 축사를 잃고 헤매는 소들을 본 그가 구례축협에 전화해 “우리가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구례에선 전남도에서 파견한 수의사들이 농가를 돌며 생존한 소들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수의사들은 상처와 질병으로 오래 살지 못할 소들을 찍어주며 ‘도축을 보내라’고 권했다. 죽은 소는 팔 수 없다는 말에 농가 대부분이 도축을 선택했다. 김해 도축장과 구례 주민들 사이에서 축협이 절차를 조율했다.

8월16일 90310은 아직 구례에 있었다.

지붕에서 내려온 지 일주일도 안 된 날이었다. 최성옥의 다른 소 5마리와 브루셀라 검사(음성)를 받았다. 브루셀라 검사는 도축 일정이 잡힌 암소가 거치는 필수 절차였다. 검사를 통과한 소만 도축장에서 받아줬다.

검사 전 최성옥의 농장에도 수의사가 다녀갔다. 수의사는 살아남은 6마리가 머지않아 모두 죽을 것이라고 했다. “입에 거품을 무는 소가 있었고 찢어진 다리 상처에 구더기가 슨 소”도 있었다.

“죽으믄 한푼도 못 받을 게 겁나서가 아니여. 내 눈앞에서 니가 죽는 걸 못 보겄어.”

8월18일 아침 트럭에 밀어올려지는 90310을 향해 최성옥이 혼잣말을 했다.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농장에서 멀어지는 90310은 알아듣지 못했다.

지역마다 농가와 도축장 사이를 오가며 소만 전문적으로 운송하는 기사들이 있었다. 그들 중 한명의 트럭이 90310 등 6마리를 실었다. 죽어가며 최성옥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월령 80개월 소의 새끼(2017년 3월24일 출생)도 그 트럭에 있었고, 구조 이튿날 쌍둥이를 낳은 소의 농장에서 생후 11개월 무렵 사 온 소(어미 소는 지금도 박남순 농장에 생존)도 있었다. 6마리의 평균 나이는 46.6개월이었다. 가장 나이 많은 소는 110개월이었다. 월령 15개월이 가장 작고 어렸다. 그 작고 어린 소가 90310이었다.

최성옥 농장에서 도로로 171㎞를 달려간 곳에서 트럭이 멈췄다.

크고 작은 차량들이 도축장 출입구를 분주하게 드나들며 소독액을 맞았다. 90310이 김해로 실려 간 이유가 있었다. “소비자들의 입맛에도 지역별로 차이”(강태식)가 났다. “수도권에선 육즙이 약한 대신 고기가 연한 거세소 소비가 많았”(주로 충북 음성이나 경북 고령에서 도축)다. “영남 소비자들은 육즙과 육향이 풍부한 암소를 선호”했다. 전국 74곳 대형 도축장 중 김해 도축장은 암소 전문이었다. 김해로 간 최성옥의 소 6마리(구례 전체로는 100여마리) 모두 암소였다.

ㄱ도축장은 하루 최대 332마리의 소를 도축할 수 있었다. 예약 날짜에 맞춰 도착한 순서대로 소들이 계류장에서 죽음을 기다렸다. 먼저 도축된 소와 돼지들의 비린내가 건물 안에 빽빽하게 들어찼다. 성대가 터질 듯한 소들의 비명에 묻혀 90310의 울음소리는 구별되지 않았다. 몸을 두고 도축장 밖으로 뛰쳐나온 비명이 천변을 따라 도시 안으로 평온하게 흘러갔다.

90310의 머리에 타격이 가해졌다.

방혈(피 빼기), 부산물(머리와 다리) 절단, 박피(껍질 벗기기), 내장 적출(적내장과 백내장 별도 분리)을 거쳐 세로로 2분할 됐다. 40여분 만에 90310은 세척까지 마친 ‘지육’(머리·다리 분리 뒤 세로 2등분)이 됐다. 배 속에 품고 있던 새끼는 폐기(식품위생법 규정) 처분됐다.

며칠 전 공포에 질린 다리로 버티고 섰던 지붕은 90310이 살기 위해 기어오른 ‘세상의 꼭대기’였다. 필사의 발버둥으로 목숨을 건져 올렸으나 그 꼭대기에서 내려오자마자 목숨이 떠내려갔다. 인간들이 시뻘겋게 달군 지구는 인간보다 소들에게 더욱 뜨거웠다. 수해에서 살아남고도 ‘긴급 도축’된 소들이 구례에서만 213마리(9월8일 기준)였다.

90310의 지육 무게(도체중)는 145㎏이었다. 긴급 도축된 최성옥의 6마리 중 가장 육량이 적었다. 나이로 볼 때 90310은 송아지가 아니었지만 무게로만 보면 송아지 크기였다. 냉장고에서 14시간 보관된 90310을 이튿날 축산물품질평가사가 등급 판정했다.

‘등외’.

등급 자체(강태식 “도체중 150㎏ 미만은 불량으로 봐서 등급 외로 간주”)가 주어지지 않았다. 90310을 제외한 5마리는 모두 3등급(15개 등급 중 최하 등급에 속하는 3C 3마리와 3B 2마리)을 받았다. 90310의 ‘고기 정보들’이 도축장 반대쪽 건물 1층의 경매 모니터에 떴다. 경매사가 읊는 도축 데이터가 판소리 가락처럼 고저를 탔다. 중개인이 90310을 ㎏당 4020원(등외를 받으면 경매 시세가 크게 하락)에 낙찰받았다.

모두 58만2900원어치의 고기로 냉장탑차에 실린 90310은 151㎞ 떨어진 경북 구미의 ㅁ축산으로 운반됐다. 김해에서 도축된 최성옥의 소들 중 김해 밖으로 다시 팔려나간 소는 90310뿐이었다. 

8월 10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의 한 마을에서 소방대원들이 축사 지붕에 올라갔던 소를 크레인을 이용해 구조하고 있다. 
8월 10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의 한 마을에서 소방대원들이 축사 지붕에 올라갔던 소를 크레인을 이용해 구조하고 있다.  ⓒ뉴스1

㎏당 4020원

ㅁ축산은 포장업체였다. 

입고된 쇠고기를 등심, 안심, 채끝 등 부위별로 잘라 소매상에 납품했다. ㅁ축산 대표는 90310을 중개인이 보낸 다른 쇠고기들 틈에 끼워서 받았다. “생후 30개월 이상이어야 마블링이 형성되는데 이렇게 작은 소(90310)는 그냥 빨간 고깃덩어리여서 상품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90310은 죽지 않기 위해 지붕에 올랐지만 죽은 뒤엔 육중한 살을 갖지 못한 탓에 불판이나 식판에도 오르지 못했다. “고기의 질이 낮아 구이용으로 팔 수 없고 급식용으로 보낼 수도 없어 서민들이 값싸게 먹는 시장의 국밥용 고기로 포장”됐다.

ㅁ축산은 크기가 작은 90310을 부위별로 잘게 자르는 대신 큼직하게 4분할 했다. 90310은 입고 단가에 중개수수료와 상하차료를 더해 ‘몰아빵’ 가격(통으로 계산해 80만~90만원)으로 식품유통업체로 출고됐다. “전국 판매망을 가진 유통업체였지만 90310은 주로 영남 지역 소비자들에게 판매”(ㅁ축산 대표)됐다.

“내가 거러지 세상을 사네.”

죽은 소의 영혼을 달래고 섬진강 범람 원인 규명을 요구하는 위령제가 9월10일 양정마을에서 열렸다. 노제 행렬을 따라 도착한 댐 앞에서 최성옥은 “속이 시려 펑펑 울었”다. 그는 집이 사라진 자리에 컨테이너를 놓고 살았다. “집을 뿌수라고 해서 뿌샀더니 무허가 건물이란 이유로 재난지원금 200만원만 받았”다. 떠난 소들이 생각나 빈 축사 앞에 텐트를 치고 지내던 그는 조카가 놓아준 컨테이너에서 자면서도 소 울음소리를 들었다.

“도축 보내지 말고 놔둘 거인디. 놔뒀으면 살았을랑가 몰르는디.”

먹히는 존재의 눈으로 봐야 보이는 세계가 있었다. 90310은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경남 김해에서 도축되고, 경북 구미에서 포장돼, 영남 전역으로 판매됐다. 지붕에서 마트까지 90310이 밟은 거리는 400여㎞였다. 그를 먹는 세계에선 보이지 않는 경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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