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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모델이 "정신건강은 패션이 아니다"라며 무대 위에서 시위를 벌였다

구속복을 연상시키는 흰색 통옷을 입었다.

  • 김태우
  • 입력 2019.09.24 18:05
  • 수정 2019.09.24 18:07
구찌 2020 S/S 패션위크
구찌 2020 S/S 패션위크 ⓒJacopo Raule via Getty Images

이탈리아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 ‘구찌’가 22일 저녁(현지시각) 밀라노에서 열린 ‘2020 봄·여름 패션 주간’ 쇼에서 여성 모델들에게 구속복을 연상시키는 흰색 통옷을 입힌 채 출연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구속복은 정신질환자나 흉악범의 행동을 제약하거나 진정시키기 위해 몸을 꽉 옥죄는 복장이다.

이날 구찌 패션쇼의 시작은 상당히 이례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여러명의 여성 모델이 패션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흰색 통옷 차림으로, 당당한 모델 걸음인 ‘캣워크’ 대신 컨베이어 벨트처럼 움직이는 무빙워크 위에 로봇처럼 가만히 서서 관객 앞을 지나간 것이다. 기이한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영국 출신의 모델인 아이샤 탄 존스는 맨 앞에서 손바닥에 “정신질환은 패션이 아니다”라고 쓴 양손을 들어 보이며 침묵의 항의시위를 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미리 써둔 항의 문구였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밤 구찌의 쇼는 특히 초현실적이었다. 일련의 모델들을 컨베이어 벨트에 세우고 초점 잃은 눈빛으로 행진하도록 강요하는 것으로 쇼를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MILAN, ITALY - SEPTEMBER 22: A model walks the runway at the Gucci Spring/Summer 2020 fashion show during Milan Fashion Week on September 22, 2019 in Milan, Italy. (Photo by Vittorio Zunino Celotto/Getty Images for Gucci)
MILAN, ITALY - SEPTEMBER 22: A model walks the runway at the Gucci Spring/Summer 2020 fashion show during Milan Fashion Week on September 22, 2019 in Milan, Italy. (Photo by Vittorio Zunino Celotto/Getty Images for Gucci) ⓒVittorio Zunino Celotto via Getty Images

존스는 행사가 끝난 뒤 당시 현장을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강력한 항의 메시지와 함께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존스는 “많은 동료 모델들과 나는 정신질환에 낙인을 찍는 것이 끝나야 한다고 믿는 까닭에, 구찌의 2020 봄·여름 패션쇼에 항의하기로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세계적으로 4명 중 1명은 정신건강 문제로 고통받고 있으며, 엘지비티큐아이에이(LGBTQIA+, 성소수자)는 정신질환을 겪을 확률이 이성애자와 견줘 3배나 높다”고 짚었다. 또 “서구에서 비백인과 원주민, 아시아계 집단의 정신건강 문제 통계는 백인 성인보다 훨씬 높다”는 점도 지적했다.

존스는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 사람 다수가 지금도 일터와 일상생활에서 낙인이 찍히는 반면, 많은 사람이 정신건강 문제를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짜 질환’으로 여기지 않는다”며 “구속복은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가 없었을 때 환자들의 인권과 자유를 박탈하고 수용소에서 학대하며 고문하던 잔혹한 시절의 상징”이라고 썼다. 그는 끝으로 “구찌가 정신질환자를 암시하는 구속복의 이미지를 패션에 차용하고 마치 공장의 고깃덩어리처럼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가도록 한 것은 나쁜 취향”이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22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구찌의 패션쇼 모델인 아이샤 탄 존스가 구속복을 연상케 하는 복식에 강하게 항의하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22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구찌의 패션쇼 모델인 아이샤 탄 존스가 구속복을 연상케 하는 복식에 강하게 항의하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한겨레

존스는 앞서 자신이 구찌의 ‘인권 무감각’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통렬하게 비판하는 ‘아픈 사연’도 털어놨다. “나 자신이 정신건강 문제와 싸우고 있으며, 우울증·불안장애·조울증·조현병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족과 연인을 둔 예술가이자 모델로서, 구찌와 같은 대형 패션 기업이 그런 이미지를 패션 컨셉트로 이용하는 것은 상처를 주고 무감각한 행위”라는 것이다.

해당 게시물에는 순식간에 1만개가 넘는 ‘좋아요’ 표시와 500개가 넘는 지지 댓글이 달렸다. 한 사용자는 “존경한다!! 당신은 정말 용감하다! 이런 행동을 필요로 하는 여성을 위해 당당히 선 것에 감사한다!”고 썼다.

구찌의 창작 감독인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패션쇼 이후 기자회견에서 “나는 인간성과 유니폼에 대해 생각했다. 유니폼은 당신을 가로막고 속박하는 것, 당신을 익명의 존재로 만들고 어떤 방향으로 따라가도록 하는 것이며, 구속복은 그 정점의 유형이다”라고 해명했다. 구찌의 대변인은 “구속복 유니폼은 이번 패션쇼의 ‘선언’이며, 판매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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