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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 홍보에 소비자 배신감 : 이니스프리는 '종이보틀' 이름 붙인 화장품 용기 안쪽에 플라스틱을 썼다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논란이 일고 있는 문제의 제품.

지난 7일 페이스북 그룹 ‘플없잘’(플라스틱 없이도 잘 산다)에 올라온 게시글
지난 7일 페이스북 그룹 ‘플없잘’(플라스틱 없이도 잘 산다)에 올라온 게시글 ⓒ페이스북 그룹 ‘플없잘’(플라스틱 없이도 잘 산다) 게시물 갈무리

 

“작년 여름 이니스프리에서 산 ‘종이 보틀’ 세럼을 다 써서 한번 갈라봤더니 플라스틱 병이 들어있네요. 뒤통수 한 대 맞은 기분! 패키지에 ‘나 종이 보틀이야’라고 쓰여 있는 데다 친환경 제품이라고 판촉해서 선택했는데. 뭔가 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해 6월 아모레퍼시픽 자회사 이니스프리에서 출시한 ‘그린티 씨드 세럼 페이퍼 보틀’을 두고 뒤늦게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논란이 일고 있다. 종이 용기를 썼다며 친환경 제품으로 홍보됐지만 내부에 플라스틱 용기가 덧대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기업의 친환경 혁신과 그린워싱 사이에서 소비자 혼란이 커지고 있다.

 

이니스프리, ‘종이 보틀’ 이름 붙인 안쪽에 플라스틱 사용

이 제품 겉면에는 상품명이 들어갈 자리에 ‘Hello, I’m Paper Bottle’이라고 적혀 있다. 종이 용기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운 친환경 브랜딩이다. 이니스프리 온라인몰에서는 최근까지 160㎖ 대용량 제품을 사면 ‘친환경 크로스백’을 주는 마케팅도 했다. 소비자들은 “용량도 크고 친환경에 맞는 페이퍼 보틀이라 만족했습니다” “케이스가 환경을 생각하는 재질인 것도 좋네요” “이니스프리는 환경을 생각하는 아이템이 많아서 좋은거 같아요” 등 리뷰를 남겼다.

지난 7일 페이스북 그룹 ‘플없잘’(플라스틱 없이도 잘 산다)에는 “이니스프리 페이퍼 보틀을 갈라봤더니 플라스틱 몸체가 드러났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소비자들은 공분했다.

이니스프리 쪽은 <한겨레>의 확인 요청에 “자사 누리집과 제품 용기에 ‘플라스틱과 종이를 분리해서 버려야 한다’고 안내했으나, 제품 이름을 ‘페이퍼 보틀’로 정해 혼란을 야기했다. 제품 이름으로 인해 용기 전체가 종이 재질로 인식될 수 있단 점을 간과했다. 고객님께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니스프리 온라인쇼핑몰
이니스프리 온라인쇼핑몰 ⓒ이니스프리 온라인쇼핑몰 갈무리

이니스프리는 정말 그린워싱을 한 것일까. 우선 문제가 된 종이 용기가 친환경 제품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이니스프리 쪽 설명을 보면, 해당 제품은 내부에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고 겉면에 종이 라벨을 씌운 형태로, 기존 제품 대비 51.8%의 플라스틱을 절감했다. 내부 용기는 재활용률이 높은 무색 폴리에틸렌(PE) 재질로 사용해 재활용률을 높였다. 미국 캘리포니아 기반의 기업 ‘에콜로직 브랜드’(Ecologic Brands)도 종이 외벽에 플라스틱 주머니와 뚜껑을 덧댄 형태의 포장 용기를 생산해 주목받은 바 있다.

 

플라스틱 절반 줄였다지만 과장 홍보에 소비자 배신감

문제는 이런 제품의 친환경 이미지를 부풀려서 홍보할 때다. 의미 있는 소비를 위해 지갑을 연 이들은 친환경성이 과장됐다는 사실에 혼란과 배신감을 느끼기 쉽다. 앞서 이니스프리 종이 용기의 문제를 알린 페이스북 게시글에는 “소비자를 우롱하는 기업”이라는 댓글과 “기업 입장에서도 비용을 더 들이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인 건 맞다”는 댓글, “그래도 페이퍼 보틀이라는 홍보는 무리가 있다”는 댓글이 달리며 한바탕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허승은 녹색연합 정책팀장은 “‘페이퍼 보틀’이라는 이름을 강조하면 소비자들은 종이로만 이뤄진 용기라고 착각하기 쉽다. 마치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홍보한 게 분노를 일으켰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니스트리 온라인쇼핑몰
이니스트리 온라인쇼핑몰 ⓒ이니스트리 온라인쇼핑몰 갈무리

기업에서 제품의 친환경성을 실제보다 과장해 홍보한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비지에프(BGF)리테일, 롯데마트 등에서 ‘썩는 플라스틱’으로 홍보하며 도입한 생분해 플라스틱도 그 취지와 달리 소각되거나 썩는 조건을 갖추지 못한 곳에 매립되는 게 태반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발간된 녹색연합의 ‘생분해 플라스틱의 오해와 진실’ 보고서를 보면, 국내 생분해 플라스틱 처리 지침은 종량제 봉투에 버리는 것인데 이렇게 버려지는 폐기물의 절반 이상은 소각된다. 2018년 기준, 1일 전체 배출량 2만5572톤 중 52.7%가 소각, 28.9%가 매립됐다.

아울러 친환경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와 기업의 기준이 일치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니스프리 쪽에선 기존 화장품 용기를 기준으로 놓고 재질 구조를 개선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소비자 눈높이엔 맞지 않는다. ‘차라리 플라스틱 내부 용기만 쓰지 왜 굳이 종이 포장을 씌운 거냐’는 의문이 남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의도적으로 그린워싱을 한 것은 아닐지라도 안일한 접근이라는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 플라스틱만 덜 쓰면 된다는 단순한 논리가 소비자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덧붙였다.

한편에선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제품 용기를 생산하려는 시도도 나오고 있다. 아이쿱 생협은 내달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은 ‘멸균팩 생수’를 출시할 계획이다. 아이쿱 생협 관계자는 “멸균 우유팩과 비슷한 형태의 멸균팩 생수를 내달 중 내놓고 유통할 예정이다. 몸체는 종이와 코팅지로 이뤄져 있고 뚜껑은 사탕수수 재질로 플라스틱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겨레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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