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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들 위해 그린 그림으로 유명한 할아버지가 서울에서 전시를 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35만 명이 넘는다.

  • 김태우
  • 입력 2018.06.01 15:14
  • 수정 2018.06.03 16:17

36년 전 브라질에 이민을 떠난 이찬재 할아버지(76)는 은퇴 후 두 손자 알뚤(Arthur)과 알란(Allan)의 등하교를 돕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다 두 손자가 한국으로 떠나자 이 할아버지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그저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됐다. 뉴욕에 사는 할아버지의 아들 이지별씨는 아버지가 어릴 적 그림을 그려줬던 것이 기억났고, 아버지가 다시 그림을 그려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할아버지는 당시 ‘인터넷 기술’을 전혀 모른다며 아들의 제안을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 2015년 태어난 셋째 손자 아스트로(Astro)를 보러 뉴욕에 갔을 때 생각이 바뀌었다.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우리 아로가 크면 어떻게 될까? 그땐 내가 없을 거 아니니?”라고 말했다. 이 질문에 큰 충격을 받은 아들은 아버지께 또다시 같은 제안을 했다. 그때 할아버지는 그림을 통해 손자들과 소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016년, 이지별씨는 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영상은 무려 조회수가 수백만 회에 달하며 전 세계를 휩쓸었고, 현재 이 할아버지는 인스타그램(@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에서만 35만명이 넘는 팔로워를 얻게 됐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2년여가 흐른 지금, 이 할아버지는 생애 세 번째, 한국에서는 최초의 전시회를 열게 됐다. 주한 브라질 대사관에서 전시 개막을 하루 앞두고 이 할아버지와 아내 안경자 할머니, 그리고 그림의 주인공인 손주들을 만났다. 실제로 만난 이 할아버지는 그림만큼이나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TAEWOO KIM/HUFFPOST KOREA

주제는 어떻게 정하시나요?

=주제는 다양해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그리는 거죠. 모든 게 다 소재가 돼요. 지나가다 ‘이거 애들한테 그려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려요. 중 1, 2학년이 된 손주들은 K팝을 좋아하고, 3살 된 손자는 공룡을 너무 좋아해서 공룡도 많이 그려요. 

이 할이버지의 모든 그림에는 ‘For AAA’라는 서명이 새겨져 있다. ‘AAA’는 손주들 이름의 앞 글자(알뚤, 알란, 아스트로)를 뜻한다. 
이 할이버지의 모든 그림에는 ‘For AAA’라는 서명이 새겨져 있다. ‘AAA’는 손주들 이름의 앞 글자(알뚤, 알란, 아스트로)를 뜻한다.  ⓒTAEWOO KIM/ HUFFPOST KOREA

온 가족이 함께 작업에 동참한다고 들었어요.

=식구들이 다 같이 하는 거예요. 나는 그림을 그리고, 우리 애들 엄마(안경자 할머니)가 글을 쓰면 딸은 그걸 브라질어로 번역을 하고, 뉴욕에 사는 아들은 영어로 번역을 하는 거죠. 총 3개국어로 올라가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팔로워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근데 한국은 좀 적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인스타그램을 다른 나라에 비해 적게 하나 봐. 제일 팔로워 수가 많은 건 싱가포르, 그리고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아요. 

왼쪽부터 이 할아버지의 손자들, 딸 이미루씨, 이찬재 할아버지, 안경자 할머니. 
왼쪽부터 이 할아버지의 손자들, 딸 이미루씨, 이찬재 할아버지, 안경자 할머니.  ⓒTAEWOO KIM/ HUFFPOST KOREA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35만 명이 넘는데, 그 인기를 실감하고 있나요?

=댓글과 좋아요는 많이 올라오는 데 한국에서는 잘 모르더라고요. 아들이 만든 비디오 덕분에 유명해진 것 같아요. 

전시회는 이번이 처음인가요?

=처음에는 코스타리카에서 전시가 열렸어요. 그쪽에서 ‘열었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와서 우리는 가지 않았고, 그림만 전시했어요. 브라질을 떠나오기 전에는 상파울루에서도 전시를 했어요. 서울에서는 세 번째 전시인데, 원화가 있는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TAEWOO KIM/HUFFPOST KOREA

한국에서는 어떻게 전시회를 열게 됐나요?

=주한 브라질 대사관과 주한 브라질문화관에서 연락이 왔어요. 뜻밖의 기회였죠.  

이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있다면요?

=강강술래 그림이랑 줄넘기 그림을 제일 좋아해요. 사실 이런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어요. 사람이 구체화되지 않은 그림이라 빨리, 쉽게 그릴 수 있죠. 디테일하게 그리는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고, 쓱쓱 그렸는데 만족스러운 그림이 나오는 게 제일 좋아요.

ⓒTAEWOO KIM/HUFFPOST KOREA

그림은 예전부터 그려오셨나요?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림을 그렸는데 담임선생님이 칭찬을 해주셨어요. 특별히 교육은 안 받았지만 타고난 것 같아요. 하하. 고등학교 때 ‘특활’이라고 하죠. 미술을 특별활동으로 들은 게 다였어요. 

지금까지 그린 모든 그림을 공개한 건가요?

=그림은 매일 그리지만, 어떨 때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결국 올리지 않아요. 올릴지 말지 그 기준은 내가 정하고 미국, 브라질과 한국의 문화 차이 때문에 낯설거나 그림이 이해되지 않는 경우에는 올리지 않아요.

지금도 브라질에 거주 중인가요?

=아들은 뉴욕에 살고 브라질에 살던 딸은 한국으로 와서 우리도 한국으로 나왔어요. 딸 옆으로 온 거죠.

ⓒTAEWOO KIM/HUFFPOST KOREA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그리실 건가요?

=그럼요. 앞으로 이 계정의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배운 건 손자들이 우리를 이끌어간다는 거예요. 3살 된 손자가 공룡을 좋아하는데 공룡 이름은 알지만 어떻게 생긴 줄은 몰라요. 그래서 우리는 아로(손자)에게 그림을 그려주기 위해 공부를 하는 거예요. 그렇게 얻은 결론은 소셜미디어가 노인네들과 아이들의 소통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문을 열고 가까이 가는 건 아이들이 아니라 노인들의 몫이에요. 노인들이 아이들의 이야기나 취미, 속내에 관심을 가져야 소통이 이뤄지는 거죠.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그릴 예정이에요. 이 그림들을 통해 전 세계에 많은 손주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TAEWOO KIM/HUFFPOST KOREA

이찬재 할아버지의 전시회 ‘Drawings for my Grandchildren’은 6월 1일부터 7월 29일까지 주한 브라질대사관 1층 브라질홀에서 열린다. 더 많은 작품은 이 할아버지의 인스타그램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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