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대한민국 유교걸들은 어째서 퀸와사비에 와며들었나?

퀸 와사비 노래 들으면서 트월킹 추면 진짜 신... 토bOOty

문자 그대로 ‘컬쳐 쇼크’ 그 자체,

이름부터 강렬했던 그녀는 K-유교걸들의 내면에 깃든 트월킹을 일깨웠다...

퀸 와사비.
퀸 와사비. ⓒ퀸 와사비 인스타그램

지난 5월 16일 토요일, 무료하게 주말 당직을 하고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주말에는 일하기 싫어서 네이버나 깔짝대는데, 실시간 검색어에 ‘퀸 와사비’라는 이름이 올랐다.

퀸 와사비?

고추냉이 브랜드쯤 되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사람 이름(Queen WA$ABII)이다. 이름 한 번 끝내주네! 그렇게 첫 영접하게 된 초록색 머리의 그녀. 대충 기사를 보니 이 분이 며칠 전 첫방송한 Mnet의 ‘굿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무대를 선보였는데 그게 화제가 된 모양이었다. 

애초에 나는 남자 래퍼들이 나와서 ”플렉스! 여자들은 나한테 환장해!”를 외치는 일명 ‘국힙’을 그닥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에, Mnet에서 만든 프로그램에 출연하는데다가 썸네일에서부터 헐벗고 있는 그녀를 보자 선입견부터 들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유교걸에게 그 썸네일은 묘한, 길티한 호기심을 불러왔다. 결국 클릭...

시작부터 나오는 강렬한 트월킹만큼 충격적이게도, 그녀는 랩을 너무 못 했다. 거기에 영상 내내 이어지는 ‘삐-’ 처리. 들리는 건 ”안녕, 쟈기!” 뿐. 출연진들(특히 여자 아이돌)의 표정을 보니 상당히 선정적인 내용인 듯했지만...

퀸 와사비의 무대를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
퀸 와사비의 무대를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 ⓒMnet
퀸 와사비의 무대를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
퀸 와사비의 무대를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 ⓒMnet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골프공을 올려서 뭘 친다는 거지? 뭐가 딱딱하다는 거야?

설마 그... 그것...? 남사스러워라! 이 노래 진짜 이상하네! 얼른 꺼! 얼른! 유교걸은 그렇게 깜짝 놀라서 유튜브 영상을 종료시켰다.

문제는 집에 갈 때 발생했다.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에 ”안녕 쟈기, 렛미쉣뎃부리”가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하마터면 지하철에서 야무지게 트월킹을 조질 뻔 했다. 안 돼! 유교걸! 삼강오륜 붕우유신 댓 걸!

유교걸..
유교걸.. ⓒ문명특급/YouTube
뭔진 모르겠지만 골프공 올려서 친다는 퀸 와사비.
뭔진 모르겠지만 골프공 올려서 친다는 퀸 와사비. ⓒMnet

그렇게 내뇌에서 두루마기를 입고 ‘유교걸’을 부르는 연반인 재재님과 ”누나 엉덩이는 토종 김치가 아님”을 외치는 퀸 와사비가 댄스 배틀을 펼치는 시간들을 보내며 괴로워하던 중, 또 한 번 퀸 와사비의 이름이 네이버 실검에 올랐다. 한 여성 래퍼가 퀸 와사비에게 타투 시술을 해 줬다가 오히려 협박을 들었다며 디스 랩을 공개한 것이다. 

이에 기다려 달라던 퀸 와사비는 며칠 뒤 인스타그램에 ‘타투 논란’ 총정리를 게시했다. 그런데 그 해명 내용보다는... ”대학시절 같이 팀플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해명을 이렇게 했기 때문이다.

ⓒ퀸 와사비 인스타그램

힙합 사상 최초의 PPT 디스전;; 그 와중에 가독성이 좋고 이쁘다.

듣자 하니 이 친구 고등학교 때 문과 전교 1등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빡세기로 유명한 이화여대 사범대학에 재학, 심지어 도덕교육을 전공해 교생실습까지 한 후 졸업했다고. 대학 시절 별명은 ‘PPT 신’. 이런 반전 매력...

홀린 듯 다시 유튜브에 들어가 ‘안녕 쟈기‘를 검색해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던 ‘굿걸’의 첫 무대 영상을 다시 클릭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랩을 진짜 못 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까 랩을 잘 하는 것만 같았다. 트월킹도 노래 가사도 남사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3시간이 흘러 있었고, 같은 영상을 계속 봤을 뿐인데 퀸 와사비의 랩 실력은 일취월장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내 마음... 이분의 마음..
내 마음... 이분의 마음.. ⓒYouTube

퀸 와사비가 자신의 인스타에서 말했듯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다 ‘와며들어(와사비+스며들어)’ 있었던 것이다. 가수 에일리도, 래퍼 더콰이엇도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는 그 와며들기...

와며들었다는 걸 인정하고 보니 이 친구, 유교걸들이 경계하거나 이상해 할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한 유저가 말했듯, 퀸 와사비의 트월킹은 ”여고에서 한 명씩 있는 전교에서 제일 웃긴 애가 한 번씩 삘 받아서 교탁 위에 올라가서 애들 웃겨 주려고 추는 춤” 같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마치 월드클래스의 그것과 같아, 21세기 K-유교걸들이 본받아야 할 가치인 걸 부정할 수가 없다.

″자존감이 뭔 줄 알아? 자존감. 퀸 와사비, 그 자체야!”

이런 멘트에 안 와며드고 배기는 유교걸은 없었다. 누군가는 토익 시험을 치다 말고 LC 문제 중 “Let me tell you”라는 멘트가 나오기만 하면 ”렛미쉣뎃부리”가 생각나 문제를 도무지 풀 수 없었다고 하고,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맴돌아 흥얼대다가 가사를 생각해서 흠칫하는 사람도 있었고, ”역시 도덕을 가르쳐서 그런지 인사성이 좋다”며 그 가운데서도 예절을 찾는 유교걸도 있었다. (두 번째 무대 곡이었던 ‘신토bOOty’의 중독성은 더 이상 논하지 않겠다...)

건강한 녹색채소 같은 초록색 머리와 밑도끝도 없는 돌직구의 가사, 중독성 있는 훅과 다소 부족한 듯 하지만 볼 때마다 더 잘하는 것 같은 랩 실력, 화끈한 트월킹과 넘치는 자신감 그리고 명문대학 출신의 PPT 신이었다는 경력을 총합한 퀸 와사비라는 존재는 유교걸들의 열광을 이끌어내기 충분했다.

분명 엄청 야한 노래를 부르면서 엉덩이를 신나게 흔드는데 여성 팬들이 많은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퀸 와사비의 Mnet '굿걸' 첫 번째 무대.
퀸 와사비의 Mnet '굿걸' 첫 번째 무대. ⓒMnet

본인도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DM 보내는 사람 다 여자그 중 하나가 나인데 나 혼자 X나 ‘누나 왔다~’ 이러는 게 적응 안 된다”라고 말했듯, 그녀의 ‘쟈기’들은 전부 유교걸들인 듯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퀸 와사비께서 누나라고 불리는 게 좋다면, 나이도 많고 성별도 같지만 기꺼이 그녀를 누나라고 부를 자신이 있다. 댓글창에는 오늘도 나같은 유교걸들의 재간이 넘쳐나고 있다.

‘굿걸’은 2일 막을 내렸지만, 퀸 와사비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벌써부터 유교걸들로 가득 찰 그녀의 콘서트가 기대된다. 그거야말로 진정한 K-유교걸들의 한과 흥을 풀어낼 자리가 되지 않... 녕 쟈기?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퀸와사비 #굿걸 #자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