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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글로브가 영화 '미나리'를 외국어 영화로 분류한 건 인종차별이다

스티븐 연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미국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미나리' 스틸
영화 '미나리' 스틸 ⓒSundance Institute

지난해, 룰루 왕 감독의 단편 ‘페어웰’은 2019년 최고의 미국 영화 중 하나였다. 감정적으로 대단히 압도적인 이야기를 독특하고도 고유한 목소리로 완벽하게 펼쳐보인 미국인 감독이 제작했고, 미국인 배우(아콰피나는 이 작품으로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로 골든 글로브 시상식 뮤지컬코미디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의 독보적인 연기가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골든 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는 이 영화를 ‘외국어 영화’로 분류했다. 대사의 대부분이 중국어라는 이유에서다.

올해, 아이작 정(한국 이름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는 2020년 최고의 미국 영화 중 하나다. 감정적으로 대단히 압도적인 이야기를 독특하고도 고유한 목소리로 완벽하게 펼쳐보인 미국인 감독이 제작했고, 미국인 배우(스티븐 연)의 독보적인 연기가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버라이어티가 22일 밤(현지시각) 보도한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올해 골든 글로브에서 ‘외국어 영화’로 분류됐다. 대사의 대부분이 한국어라는 이유에서다. 

영화 '미나리' 스틸
영화 '미나리' 스틸 ⓒ뉴스1/판씨네마

 

신비하고도 특이한 HFPA 회원들은 종종 이해하기 힘든 결정들을 내리고는 했고(골든 글로부 후보작 ‘투어리스트2010’를 보라), 수상 시즌의 정확한 예언자가 되는 대신 화려하고 멋들어진 작품을 선호해왔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건 수상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흔히 있는 그런 야단법석이 아니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이야기를 ‘외국적‘으로 간주하는 건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영원한 외국인‘이자 ‘충분히 미국스럽지 못하다’고 여기는 오래된 인종차별을 다시 공고히 하는 일이다.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이런 식의 유해한 인식은 내가 이곳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에도 낯선 사람이 나의 영어를 ‘칭찬‘해주며 내게 ‘진짜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상황을 낳는다. 

영화 '미나리'
영화 '미나리' ⓒA24

 

‘미나리‘를 ‘외국’ 영화로 규정하는 건 그 자체로도 터무니없는 일이다. 정 감독의 어린 시절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미국 아칸소주 시골로 이민을 온 한국계 미국인 가족이 미국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찾아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그렸다.

스티븐 연이 연기한 제이컵은 원대하고도 지나치게 이상적인 버전의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 땅에 도착한다. 그는 광활한 땅을 소유하겠다는 꿈을 품고 농장을 시작한다. 그러나 다른 많은 이민자들이 그렇 듯, 그는 현실에 맞춰 꿈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생존이라는 현실 말이다.

이건 한국인의 이야기도 아니고 아시아인의 이야기도 아니다. 이건 한국계 미국인과 아시아계 미국인의 이야기다. 

(당연히) 트위터에는 골든 글로브의 결정을 비판하는 글이 이어졌다.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진짜 미국 깊숙한 곳에서 다른 미국인들에 둘러싸인 채 미국인이 되는 것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이야기를 다룬 본질적으로 미국적인 영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더 프롬’을 작품상 후보에 올리려고 하는 이 신성한 기관에 의문을 제기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만.

내 나라가 미국인데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는 것과도 같은 일이네

분명히 해두자면 ‘미나리’는 미국인이 쓰고 연출을 맡고 미국의 세트에서 촬영하고 미국인이 주연배우로 나오고 미국 제작사가 제작한 미국 영화다

혹시 이게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바스터즈 : 거친녀석들’은 영어가 30%도 안 되는데도 골든 글로브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대사의 대부분이 영어가 아니었던 ‘바스터즈 : 거친녀석들’이 이런 식으로 분류되지 않았다는 걸 잊지 말자

이건 미국인이 만든,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미국인‘에 대한 훌륭한 영화이고, 어떤 부문에서든 강력한 후보가 될 수 있는 영화다. 영어로 된 영화만 ‘미국’ 영화로 봐야 한다는 건 완전 헛소리다.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미국에서 촬영된, 미국인이 출연하는, 미국인이 연출한, 미국 회사가 제작한 영화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외국 영화’라는 안타깝고도 실망스러운 리마인더. 

골든 글로브 : 어디 출신입니까?

와, 이거 인종차별적이다.

 

‘페어웰’은 중국계 미국인 여성이 중국에 있는 대가족을 만나러 가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핵심적인 이야기로 등장하는 가족들 간의 충돌은 정체성과 두 문화의 교차 지점에 놓인다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민자이거나 상당한 시간을 외국에서 보낸 게 아니라면, 아시아에 살고 있는 아시아인들 대부분은 이 영화들을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진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처럼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다수의 미국인들은 일상에서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거나 영어를 주 언어로 사용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는 영어를 쓰는 사람만 미국인으로 묘사하는 이런 낡은 규칙을 바꿔야 한다”고 왕 감독은 트위터에 적었다.

올해 ‘미나리’보다 더 미국적인 영화는 보지 못했다. 이건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쫓는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다. 우리는 영어를 쓰는 사람만 미국인으로 묘사하는 이런 낡은 규칙을 바꿔야 한다.

골든 글로브는 대사의 대부분이 영어가 아닌 영화에 대해 특히나 이상한 규칙을 두고 있다. 오스카의 경우, 영어로 제작되지 않은 영화는 제작된 국가에 따라 제출되므로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는 예전처럼 ‘최고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서 경쟁하지 않는다. (지난해 아카데미는 보다 포용적인 이름인 ‘국제영화상’으로 이 수상 부문을 변경했다.) 

할리우드와 미국 사회 전반에 자리한 다른 여러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이건 단순히 이름을 바꾸거나 정책을 변경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건 전체 업계와 인식을 바꾸는 것의 문제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다양한 목소리들이 표현되어야 한다. 더 많은 종류의 다양한 미국적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더 많은 다양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수상쩍은 범주로 분류되는 게 아니라,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아야만 한다.

 

* 허프포스트US의 The Golden Globes Calling ‘Minari’ A ‘Foreign’ Film Is More Than An Awards Season Problem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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