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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09일 17시 39분 KST

대한민국 3040들이 김하온, 이병재와 사랑에 빠진 이유

대한민국 3040들이 심각한 감정 과잉에 빠졌다.

YOUTUBE/MNET

18살 동갑내기 래퍼 2명의 무대를 지켜본 대한민국 3040들이 심각한 감정 과잉에 빠졌다. 지난 6일 엠넷(MNET)의 고등학생 랩 경연 프로그램 ‘고등래퍼2’ 준결승 무대에서 ‘아디오스’를 선보인 김하온(18)과 ‘탓’이란 노래로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 1위에 오른 이병재(18)가 그 주인공이다.

이날 이병재의 무대를 본 한 누리꾼은 “형이 울었다. 나이 마흔에 눈물이...”라며 “유튜브에서 영상 보고 위로해주고 싶었는데 이제는 필요가 없다. 스스로 위로할 만큼 성장했으니까”라고 댓글을 남겼다. 1980년대 열혈 청춘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김하온의 팬으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은 “오늘도 하온이의 노래로 시작! 누나 일하고 저녁에 온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 둘이 함께한 노래 ‘바코드’는 벌써 한주 넘게 멜론 차트 1, 2위를 점령하고 있다. 18살의 두 고등학생은 어떻게 한국의 대중 힙합신을 사로잡았을까? 두 사람의 벼락같은 유명세에는 대중 힙합계의 흐름에 비추어 살펴볼 만한 면이 있다.

■식상해지던 힙합 신에 신선한 매력을 던지다

사실 대한민국 3040들은 국내 힙합 신에 매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한국 힙합 신의 지나친 자기 과시에 지쳤기 때문이다. 힙합 앨범의 가사를 분석한 이아람 씨의 석사 논문 ‘한국 힙합 음악의 주제 및 소재에 대한 고찰 : 2010년대 힙합 레이블 앨범을 중심으로’를 보면, 힙합 음악의 가사는 소재별로 △음악에 대한 자신감(26%) △성적 판타지(15%) △부에 대한 욕망(15%) 등이 주를 이뤘다. 이런 가사는 어쩔 수 없이 ‘성공하는 방법에 대한 책을 써서 성공하겠다’는 자기계발서 작가와 같은 인과 모순에 빠진다. ‘나는 음악을 잘해서 돈도 많고 여자에게 인기도 많다’는 내용의 노래 가사로 좋은 음악도 만들고 여자에게 인기도 얻고 돈도 많이 벌겠다는 건 허세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힙허세’(힙합 + 허세), ‘힙찔이’(힙합+ 찌질이) 등 인터넷 게시판에서나 쓰이던 단어들이 대중 매체의 일상어로 등장한 시기도 비슷하다. 국내 매체에서 ‘힙찔이’라는 단어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던 시기를 찾아보면, 대략 2016년부터다. 이 시기부터 힙합의 인기는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한국 힙합 대중화를 이룬 ‘쇼미더머니’의 시청률은 2015년 3.4%로 정점을 찍더니 2016년 2.9%, 2017년에는 2.5%까지 내려갔다.

힙합 신에 넘쳐나는 서로를 향한 ‘증오’ 역시 하나의 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를 잘 꼬집은 건 유병재다. 코미디언 유병재는 자신의 스탠드업 코미디 쇼 ‘블랙코미디’에서 “힙합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원하는 방식으로 화를 낼 수 있는 것 같아요”라며 “원래 철저한 원수지간이 아니에요. 초면인 분도 있고, 원래는 ‘형 동생’하는 친한 분들이 랩 배틀 시작만 하면 ‘총만 있다면 쏴버릴 거야 탕탕탕’이라며 화를 냅니다”라고 비꼰 바 있다.

MNET

■김하온이 몰고 온 ‘증오가 사라진 힙합’

김하온의 등장은 이 시류를 관통했다. 김하온은 고등래퍼 첫 사이퍼(비트를 틀어놓고 여러 래퍼가 돌아가며 랩을 하는 방식. 자기 소개처럼 흐르는 경우가 많다) 무대에서 “증오는 빼는 편이야 가사에서. 질리는 맛이기에”라며 증오를 배격했다. 증오가 빠지면 힙합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그의 가사는 뜬구름 잡는 소리 같으면서도 밝고 신선했다.

“생이란 이 얼마나 허무하고 아름다운가. 왜 우린 우리 자체로 행복할 수 없는가”라는 가사의 랩을 쓰고, 취미는 명상인데다, 직업은 ‘트레블러’라는 18살 고등학교 자퇴생을 우린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난 커다란 여정의 시작 앞에서 서 있어 따라와 줘 원한다면 나 외로운 건 싫어서”라고 말하는 이 작은 친구를 정말 따라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MELON

■이병재가 말하는 ‘나를 향하는 우울’

김하온이 밝은 해탈의 이미지라면 반대편에 이병재가 있었다. 이병재는 “제 위치는 합정역 7번 출구 도보 4분 거리 지하방. 대각선 방향에는 메세나폴리스. 거기 사는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라며 “엄마 아들은 자퇴생인데 옆방에 서울대 누나는 나를 보면 어떤 기분이신가요”라고 노래했다. 이병재의 가사에 드러난 우울의 본질은 절대적 빈곤이나, 하위권의 성적 그 자체가 아니다. 지하 방에서 올려다보는 ‘메세나폴리스’, 옆방에 사는 ‘서울대생 누나’가 아니라 메세나폴리스와 서울대생 누나가 어떤 기분일지, 자퇴하지 않은 친구가 전교 상위권에 올랐을 때 ‘애매한 표정으로’ 그 사실을 자신에게 알렸던 엄마가 어떤 기분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이병재 자신이 그 대상이다.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쇼미더머니 시즌 6’의 출연자 우원재에게 “중2병이냐” 또는 “콘셉트냐”는 비난이 쏟아졌던 것과는 달리 이병재의 노래에는 공감의 댓글이 달렸다. 한 누리꾼은 네이버에 “삼십대 후반 직딩(직장인)입니다. 처음 이 랩을 듣고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네요. 나에게 십대는 너무 오래전인데 말이죠”라고 썼다.

이렇게 둘이 만나 이야기가 완성됐다. 말수가 적은 이병재는 김하온이 ‘천재’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있는 힙합 크루 ‘키프클랜’에 김하온을 끌어들였다. 인터뷰할 때마다 “김하온이 너무 멋있다”, “쟤는 진짜 천재다”라며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김하온은 이병재가 가진 우울의 깊이를 인정하고 이해했다. 2회 단독 공연을 앞두고 긴장해 있는 이병재에게 김하온은 “그냥 너는 너이면 된다니까”라고 위로했다. 이병재의 무대가 끝난 뒤엔 눈물을 글썽이며 “이 사람의 슬픈 감정이 고스란히 밀려오니까 얼어붙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는 두 사람이 대화하듯 쓴 노래 ‘바코드’에서 폭발했다. 한 팀이 된 두 사람이 심지어 같은 집에서 살며 만든 이 노래에는 두 사람의 대립적인 세계관이 잘 녹아 있다. “난 사랑받을 가치 있는 놈일까. 방송 싫다면서 바코드 달고. 현재 여기 흰색 배경에 검은 줄이 내 팔을 내려보게 해”라고 말하는 이병재에게 김하온은 “우린 앞만 보고 살도록 배웠으니까 주위에 남아있던 행복을 놓쳐 빛나지 못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이어 “네까짓 게 뭘 알아. 잠깐 반짝하고 말 거야. 바코드 빛같이”라고 말하는 이병재에게 김하온은 “(어차피) 바코드가 붙었다면 아임 온 어 컨베이어, 외부와 내부의 의도를 동시에 쥐고 달려”라고 말한다.

김하온이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영수증은 챙겨줘 우리 추억을 위해”라고 말하고, 이병재가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영수증은 버려줘 마지막 자존심을 위해”라고 받아치는 후렴구도 매력을 발산한다. 3월 31일 발표 이후 줄곧 음원차트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 노래에 대해 래퍼 나다는 “대체 이 친구들은 뭘 먹길래 이런 걸 만드냐”며 “너무 충격을 받았다”라고 밝힌 바 있다.

■“대체 이 친구들은 뭘 먹길래 이런 걸 만드냐”

지난 6일은 같은 집에서 사는 음양의 단짝 친구 김하온과 이병재가 팀 미션을 끝내고 다시 경쟁자의 위치로 돌아가 서로의 실력을 뽐낸 무대였다. 이날 ‘탓’이란 노래를 준비한 이병재는 “하온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머리를 올렸다”며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앞 머리카락을 거두고 또랑또랑한 두 눈을 드러냈다. “내가 돈을 못 버는 탓 우리 엄마가 고생하는 건. 알바가 귀찮아서 엄마의 가게에 가는 빈도를 줄였던 건 랩도 못 하는 래퍼들이 100단위를 버는 게 너무 배알이 꼴리고 억울해서”라고 외치는 이병재의 노래를 들은 한 누리꾼은 “돈 때문에 일찍 철든 저 애의 모습이 내 과거와 닮아 있어서 보는 내내 멍했다. 스물 중반인데 이병재의 가사를 보니 그때 생각이 났고, 이 무대를 보면서 나 자신이 좀 애틋해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김하온은 과거 자신이 가졌던 비관, 우울, 증오의 감정을 ‘쇼티’(Shawty)라는 애칭으로 의인화하고, 이 쇼티에게 작별을 고하는 ‘아디오스’(안녕)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김하온은 “삶이란 영화의 감독이 되어버린 오래된 어린 녀석의 큐. 키워버린 것도 나니 치워버릴 것도 나인 것이 맞는 거야 애초에 애증의 관계였던 거지“라며 자신의 과거를 이끌던 부정적 감정들에 ”아디오스 마이 쇼티”라며 작별을 고한다.

네이버 TV/한겨레.

이제 이 두 사람에 대한 3040들의 애정은 반드시 둘이 정식으로 팀을 만들어야 한다고 우기는 수준에 이르렀다. 두 사람을 주제로 하는 팬픽이 이 생기는가 하면, 순정만화의 주인공으로 미화하는 사람들마저 있다.

이 둘이 팀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이 꼭 승산없는 게임인 것은 아니다. 고등래퍼 영상이 가장 많이 소비되는 네이버 TV에 댓글을 살펴보면, 김하온의 ‘아디오스’ 영상의 경우 여성이 75%로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10대 21%, 20대 29%, 30대 20%, 40대 22%로 전 연령대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이병재의 경우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각각 45%, 55%로 비슷했으나, 10대가 30%, 20대가 34%를 차지 해 각 17%, 12%를 차지한 30대와 40대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둘의 팬층이 많이 겹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팀 결성 시 지금보다도 더욱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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