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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04일 14시 43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6월 04일 14시 43분 KST

시각장애인의 '포켓몬고' 그 후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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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ffpost

1년 전 ‘포켓몬고’ 게임을 하는 내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그때도 난 그 게임을 했고 지금도 아주 재미있게 하고 있다.

조금만 앱의 접근성을 신경 써 주면 시각장애인도 누구의 도움 없이 ‘포켓몬고’를 즐길 수 있다고 간청하는 편지를 제작사인 나이언틱에 보내기도 했다. 그 스토리가 여러 매체에 보도되기도 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응답은 전혀 없다.

그렇지만 난 지금까지, 아니 더 신나게 게임을 즐기고 있다.

40레벨이 만랩인 이 게임에서 38 레벨이 됐으니 이젠 제법 고수 대열에 들만큼 내 캐릭터도 성장해 있다.

제작사의 응답이나 앱의 구조적 수정이 없이도 내가 지속적으로 같은 게임을 즐길 수 있었던것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보고 기사를 본 어떤 분은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보낸다며 ‘포켓몬고 플러스’라는 보조기기를 보내주셨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아이들과 나는 몬스터나 아이템의 위치를 진동으로 알려주는 이 기계 덕분에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몬스터를 사냥하고 경험치를 늘리고 레벨을 올려갔다.

어떤 것이 내가 수집한 몬스터인지 확인하고 싶을 때는 ‘iv go’라는 편법 어플의 도움을 빌리면 되었다.

공식어플은 아니었지만 우리에겐 너무도 고마운 도우미였다.

수집한 도구가 가득차거나 몬스터 박스를 비워야 할 때는 눈이 보이는 주변 게임어들의 도움을 받으면 되었다.

게임의 상세정보나 새로운 이밴트 소식을 알기 위해서는 유명 게임유튜버의 영상을 시청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습득한 데이터들은 내게 도움을 준 트레이너들에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하면서 나도 일방적인 도움을 받는 존재에서 조금씩 도움을 나누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체육관 격파나 레이드 배틀 같은 단체미션에서는 이제 고레벨인 나의 케릭터는 제법 큰 존재감을 나타내며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감사인사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포켓몬고’ 게임은 시작할 때처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열정적으로 플레이하던 사람들은 벌써 한참 전에 목표달성과 만랩도달을 마치고 다른 게임들로 흥미의 방향을 돌리기도 했다.

38이라는 나의 레벨은 절대적으로 보면 꽤나 높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시간적으로 보면 많이 늦었고 상대적으로 보면 그다지 상위권에 위치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충분히 즐겁고 아직도 이 게임을 사랑하고 있다.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살아가는 나의 시계는 항상 조금씩 때로는 매우 많이 느리게 움직인다.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훨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달성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낮은 성취로 끝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내 삶에서 웃음의 크기를 결정하는 데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세계 신기록을 세운 마라토너의 심장은 처음 10km을 완주한 사람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겠지만 그 기쁨의 크기는 누구의 것이 더 크다고 아무도 단언할 수 없을 것처럼 말이다.

천천히 가는 과정 안에서도 주변의 도움이 없다면 나의 도착은 더 느리거나 훨씬 더 초라했을 것이 분명하다.

직장에서도 가족 안에서도 내가 속한 여러 모양의 그룹들 안에서도 나의 시력은 다른 이의 눈을 필요로 한다.

주고 받음의 관계가 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은 하지만 받는 것들에 비하면 주는것의 크기는 참으로 민망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내가 당당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 또한 작게나마 나도 갚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벌여놓은 일도 참 많다.

그 때마다 나의 장애는 할 수 없는 부분들을 냉정하게도 알려준다.

그렇지만 ‘포켓몬고’가 그랬듯 난 조금 다른 방법들을 찾아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보조기기를 찾기도 하고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기도 한다.

목적을 수정하기도 하고 다소 다른 모양의 목표를 만들기도 한다.

내가 가는 길은 느리고 불편해서 유행이나 트랜드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난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같은 게임을 하면서 누구보다 즐거울 수 있는 힘도 그런 나의 재능에서 근거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떤 누구도 뭐든 다 잘할 수는 없다.

한 두 분야에서는 전문가이고 달인일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부족한 장애인일 수 있다.

그렇지만 잘 하는 극소수의 상황에서만 행복할 수는 없지 않는가?

내가 내 나름 게임을 즐기는것처럼 사람들도 자신들만의 기쁨을 만들어내는 비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40이라는 만랩 달성까지는 이제 겨우 2레벨 만이 남았다. 그러나 달성해야할 경험치의 크기를 보면 지금까지 온것만큼이나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멀다.

내 삶도 그것과 다르지 않다.

나름 잘 살아 왔다 자부하는 내 과거의 시간들에게 미안하지 않으려면 앞으로도 만랩 인생을 위해 끊임 없이 스스로 즐거운 방법들을 찾아내야 한다.

다들 그랬으면 좋겠다.

모두 같은 목표 같은 모양으로 행복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