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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을 구걸하지 않는 장애인 77명의 오체투지

  • 하금철
  • 입력 2018.04.30 16:42
  • 수정 2018.04.30 16:46
ⓒhuffpost

길을 걷다 누군가가 기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역 주변, 상가 등에서 보았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팔이나 다리가 잘린 장애인이었을 것이다. 또 그는 구슬픈 음악을 틀고 작은 바구니 하나를 끼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몸을 낮추고 낮추어, 단 하나의 메시지를 행인에게 전달한다. ‘도와달라’고. 당신의 주머니 속 여분의 동전이라도 좋으니 동정을 베풀어달라고. 이때 ‘기어간다’는 것은 행인들이 그에게 동정을 베풀 전제조건이자, 그의 구걸에 있어 행동원칙이다. 기어감으로써 한없이 낮아져야만 그의 생존은 가까스로 허락된다. 만약 그 선을 넘어선다면, 이를테면 공손하게 적선을 청하는 태도가 아니라 행인을 불편하게 하면서 자신의 권리와 이를 위한 타인의 의무 등에 대해 시끄럽게 떠들어댄다면, 지나가던 행인 중 누군가가 그를 경찰에 신고할 것이다.

이는 극단적인 궁핍에 처해 구걸을 해야 하는 소수의 장애인만이 처한 특수한 현실이 아닌, 우리 사회가 가난한 장애인에게 허락했던 사실상의 유일한 말하기 방식이었다. 자신을 한껏 낮추고 타인에게 삶의 고통을 보여줄 것, 그래서 타인의 자비로움에 의해서만 허락되는 생존을 청원할 것.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게 그렇게 해서 주어지는 삶의 기회, 그러니까 가까스로 생존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요구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연말연시 때마다 TV를 가득 채우는 ‘불우이웃돕기’ 프로그램들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번화가를 낮게 기어가는 장애인들의 모습은 그런 사회의 작은 파편에 불과하다.

ⓒKittichet Tungsubphokin / EyeEm via Getty Images

동정이 아닌 ‘권리의 몫’을 요구하는 장애인

정부가 정한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4월 19일, 그 선을 넘어선 장애인들이 있었다. 보통 도심에서 기어가는 장애인은 혼자다. 둘이나 셋일 때보다 혼자일 때 행인의 동정을 받기에 더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광화문에서 출발해 청와대까지 기어간 장애인은 무려 77명이었다. 곁에서 함께 걸었던 비장애인 활동가와 사정상 기어가지는 못했지만 동행했던 다른 장애인까지 더하면 그 수는 더 많다. 타인의 동정을 구하기에 최악의 조건이다. 물론 그들은 동정을 구걸하고 있던 것이 아니다. 사람이 많았던 데서 볼 수 있듯, 그들은 시끄러웠다. 그만큼 요구하는 것도 많았다. 도와달라 말하지 않고 애초에 자기 권리에 해당하는 ‘몫’을 내놓으라고 외쳤다. 때론 그들을 제지하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2018년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소속 장애인들의 핵심 요구는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수용시설 폐지’다. 그리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살면서 이용할 수 있는 복지제도의 장벽으로 기능하고 있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고, ‘치매 국가책임제’와 같이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도입하라는 것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왜 이렇게 과격해야만 하느냐고, 교통을 마비시키고 시민들에게 불편을 줄 뿐만 아니라 혐오감까지 주는 그런 방식의 투쟁을 해야만 하는 거냐고. ‘정상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촛불혁명을 통해 탄생한 정부이기에, 장애인들 또한 그런 대화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해 8월, 문재인정부 초대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임명된 박능후 장관이 광화문에서 5년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수용시설 폐지를 외치며 농성하던 장애인단체를 만나 민관협의체를 통한 논의를 제안했을 때만 해도 전망은 밝아 보였다. 그러나 그 이후 정부가 보여온 행보는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앞에선 ‘탈시설’ 말하고 뒤에선 시설 원장 격려하는 복지부장관

분명 문재인정부는 장애인의 탈시설과 자립지원을 제1의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장애인의 날’을 코앞에 둔 16일부터 1박2일 동안, 박장관은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교남 소망의집’이라는 장애인 거주시설에 가서 ‘시설체험’을 하고 돌아왔다. 박장관은 이 자리에서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복지를 위해 애쓰고 있다”며 원장과 시설 관계자를 격려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시설의 원장은 얼마 전 한 토론회에서 ‘탈시설’을 정부정책 과제로 제시하는 것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반대했던 인물이다. 탈시설을 추진하는 정부가 탈시설을 반대하는 시설 원장을 격려한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는 최근 장애인단체와의 민관협의체 논의에서, 매년 100명씩 탈시설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해진다. 현재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 수가 총 3만명 수준이니 이들이 다 나오기까지는 꼬박 300년이 걸린다.

그리고 4월 20일 ‘장애인의 날’ 당일, 청와대의 행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 김정숙 여사가 대신했다. 김여사는 시설거주 장애인들의 청와대 나들이를 배웅하고 평창패럴림픽 대표선수단을 초청해 격려하는 것으로 장애인의 날 청와대의 메시지를 대신했다. 바로 청와대 코앞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수용시설 폐지와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는 장애인단체의 농성이 한달여간 진행되고 있지만, 이들을 외면하고 위로와 격려의 대상이 될 장애인들만을 만난 것이다.

장애인의 오체투지, 즉 기어가기 투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6년 4월 17일, 50여명의 장애인들이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며 한강대교를 맨몸으로 기어서 건너는 투쟁을 벌였다. 그 결과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법’이 만들어졌고, 현재 가장 큰 규모의 지역사회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한껏 몸을 낮추어 동정을 호소하는 ‘기어가기’였다면 이처럼 제도로서 보장되는 권리 쟁취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도 동정에 호소하는 대신 권리보장을 요구하기 위해 장애인은 여전히 온몸을 굴려야만 한다. 이 외침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현 정부 또한 장애인에겐 ‘적폐’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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