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DC - 백인 경찰관의 ‘목조르기 체포’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으로 미국 전역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던 지난 1일(현지시각), 조 바이든이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한 전통적 흑인 교회에서 한 발언은 시위자들이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다.
″총을 들지 않은 사람이 칼이나 그런 걸 들고 달려든다면, 심장 대신 다리에 사격하도록 경찰을 훈련시켜야 한다.” 흑인 커뮤니티 지도자들과의 면담에서 바이든이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는 다르게 시위대에 지지 의사를 밝히려던 도중에 나온 말이다. ”(경찰의 법집행에 관해) 바뀔 수 있는 게 많다.”
이 발언은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진보적 활동가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 운동을 비롯해 경찰 개혁과 인종차별적 법 집행 중단, 연방정부 차원의 처벌과 대책 등을 주장하는 운동을 벌여온 이들이 보기에,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바이든의 이 발언은 정치인이 젊은 진보적 활동가들의 기대에 기대에 미치지 못한 또 하나의 사례일 뿐이었다.
아직 바이든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지 않은, 청년층 주도의 기후변화 운동 단체인 ‘선라이즈 무브먼트‘는 1일 이 발언을 ‘약탈꾼들에게 사격하라’던 트럼프의 말과 연관지어 비판했다. ”그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인가?” 이 단체가 트윗에 적었다. “XX 훨씬 더 잘, 빨리 따라와야 할 것이다. (아니면 물러나든지)”
″(바이든은) 진심이기는 한데, 그 역시도 자신은 (흑인들의)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편이 되려면 어떻게 할 지에 대해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지는 않은 다른 백인들과 똑같을 뿐이다.” 휴스턴에서 블랙 라이브스 매터 시위에 참여한 애쉬튼 우즈가 허프포스트에 말했다. 그는 마지못해 바이든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선거캠프와 측근들은 문제의 발언을 옹호하고 나섰다. 델라웨어 최초의 흑인 하원의원인 리사 블런트 로체스터(민주당)은 ”‘나는 이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며, 행동을 위한 계획이 있다’고 말하는 진정한 리더십을 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흑인 관련 정책공약을 내놓은 바 있는 바이든은 2일 의회에 경찰 개혁법 통과를 촉구했다.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시위는 민주당이 활동가와 젊은 흑인 유권자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당 지도부의 공식적인 반응들은 선제적이지 못했고,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었다. 의회는 다음주에 경찰의 잔혹성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지난해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민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하원에서든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한 상원에서든 입법을 통한 대응에 관한 명확한 일정은 나와있지 않다.
″말 뿐이라는 게 문제다.” 워싱턴DC에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던 로즈(34)씨가 말했다. ”정책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도 않고, 아젠다를 밀어부치지도 않는다. 지금은 말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민주당과 시위대의 ”거대한 격차”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은 플로이드의 사망을 일찌감치 공권력에 의한 ”범죄”로 규정했다. 민주당 지도부들도 경찰의 잔혹성을 규탄했다. 6년 전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벌어진 시위에 대응해 했던 말들과 똑같았다.
그마저도 일종의 단서가 달려있었다.
″시위를 악용해 기물을 사정없이 파손하고 폭력을 저지르는 극소수의 사람들의 행동은 잘못됐다.”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 척 슈머가 2일 의회에서 말했다. ”그들은 법을 어기고 있고, (코로나19로) 이미 고통을 겪고 있는 업체들을 파괴하고 있고, 동료 시민들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고 있다.”
뉴욕에서는 빌 더블라지오 시장(민주당)이 경찰차의 시위대 돌진 사건에 대한 조사를 약속하면서도 ”경찰차를 가로막고 에워싼” 시위대에게도 책임을 돌렸다. (영상을 보면 시위대는 경찰차를 에워싸지 않았으며, 더블라지오 시장은 비판이 쏟아진 뒤에야 보다 강력한 어조로 당시 경찰의 행위를 규탄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힐러리 클린턴 같은 인물들은 유권자들이 각자의 분노를 투표를 통해 표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같은 언급은 시위의 요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무슨 말이냐면, 투표를 통해 자유를 얻어낸 사람은 없었다는 얘기다. 물론 투표는 중요하다. 나는 선거 때마다 빠짐없이 투표를 한다. 하지만 누군가 괜찮은 사람을 앉히는 것은 기껏해봐야 우리에게 필요한 의미있는 그런 변화를 위한 여건을 조금 더 원활하게 만들 수 있을 뿐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변화를 이뤄내는 데 있어서) 언제나 통했던 건 시위다.” 로스앤젤레스의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을 공동으로 조직한 멜리나 압둘라가 말했다.
진보 정치운동 단체 ‘데모크라시 포 아메리카(Democracy for America)’의 대표 이베트 심슨은 활동가들이 요구하는 것과 민주당 지도자들이 말하는 것들 사이에는 ”여전히 거대한 격차가 있다”고 말한다.
″무언가 일이 벌어졌을 때에만 행동을 취하고, 그 행동조차도 보통은 일시적인 데다가 정치적 분위기가 바뀌거나 지도부가 바뀌면 또 달라진다.” 심슨이 경찰 폭력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에 대해 한 말이다. 그는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는 도시들도 오랫동안 경찰의 과잉 공권력 행사 문제를 해결해내지 못했으며, 이곳들에서도 시위가 벌어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지역적 차원에서 보자면, 시애틀 시장 제니 더킨(민주당)은 지난 토요일(5월30일) 시행 직전에서야 오후 5시 통행금지령을 발표해 몇몇 진보 성향의 주의회 의원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경찰차의 시위대 돌진 말고도 지난주 브루클린에서 열린 시위에서 두 명의 흑인 주의회 의원과 기자 신분을 밝혔던 허프포스트 기자가 경찰에 체포된 사건으로 비판을 받았다.
심슨은 시위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경찰의 폭력성이 민주당 지도부들에 의해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경찰의 잔혹성에 대한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 경찰의 잔혹성을 중단시킬 수 없다는 건 애석한 일이다.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서 이것(경찰의 잔혹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뿌리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위에 부응할 정책들을 찾아서
바이든은 흑인 유권자 다수로부터 지지를 확보함으로써 대선후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1994년의 강력범죄 처벌 강화법에 공동 발의자로 참여한 것을 계속해서 변호하고 있고, 경찰력 행사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여러 단체들의 환심을 사려고 한 적도 별로 없다. 그것 때문에 경선에서 떨어질 뻔한 적은 없었을지 몰라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를 꺾기 위해 필요한 진보 성향의 젊은층 유권자들, 흑인 젊은층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오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가 훨씬 더 많이 (유권자들의 말을) 들어야 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버지니아주 흑인 진보 단체의 일원이자 알링턴카운티 위원회 위원인 크리스천 도시가 말했다.
지난달에 있었던 또 다른 논란에 대해, 바이든은 자신이 흑인 유권자들의 말을 더 많이 들어야 한다고 시인했다. 당시 유명 흑인 라디오 진행자 ‘Charlamagne tha God’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나를 찍을지 트럼프를 찍을지 잘 결정하지 못하겠다면, 당신은 흑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밀했다. 바이든은 그날 있었던 흑인 경제계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이 발언을 사과했고, 흑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민주당 주류 인사들은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정책들과 레토릭에 동조해왔던 공화당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데 열심이다.
″(이념적 성향이 서로 다른 지지층들 사이에서) 어휘가 항상 똑같지는 않을 수 있어도 장기적인 목표는 완전히 일치한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민주당 전략가 애드완 시라이트가 민주당에 대해 말했다. ”우리 사이의 차이점은 다른 쪽(공화당)과의 차이와는 비교도 안 된다.”
하지만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이 벌어지기 몇 년 전에도 경찰의 잔혹성과 인종차별에 초점을 맞춘 입법 활동이 민주당 의원들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던 적은 거의 없었다. 2019년부터 민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하원에서도 말이다. 퍼거슨 사태 이후 의회 내 경찰개혁 움직임은 중단된 상태이며, 트럼프 정부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경찰의 잘못된 행위를 더 이상 조사하지 않기로 했다. 2018년에 의회가 사법개혁안을 통과시켰고, 트럼프 정부 하에서 그렇게 해냈다는 게 의미 있는 성과이기는 했지만, 변화는 미미했다. 일부 마약 관련 연방범죄의 형량을 낮춘 정도였다.
지난 일요일 ABC뉴스 ‘디스위크’ 인터뷰에서, 펠로시 하원의장은 경찰의 목조르기 체포 행위를 연방정부 차원에서 금지하는 실효성 있는 법안을 비롯해 흑인 성년 및 어린이들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위원회를 만드는 것과 같은 상징적인 조치들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시위자들은 이런 아이디어와 구상을 내놓는 사람들이 늘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
활동가 벤 베이커(26, 흑인)씨는 그동안 몇몇 흑인 정치인들이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그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더 중도 성향인 백인 정치인들이 더 많이 목소리를 내줬으면 한다.” 베이커씨가 말했다. ”(진보 정치인들의 발언으로) 아무리 많은 진보 표를 얻는다고 해도, 승리하려면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인종차별적 행위에) 공모하는 것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