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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역을 뒤덮고 있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 국면에서 민주당이 잘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의 대선후보 조 바이든을 비롯한 주류 정치인들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대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 허완
  • 입력 2020.06.05 17:23
  • 수정 2020.06.05 17:29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이 흑인 종교 지도자들과의 간담회 도중 얼굴에 손을 가져다대고 있다. 이 자리에서 나온 그의 발언은 진보적 활동가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윌밍턴, 델라웨어주. 2020년 6월1일.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이 흑인 종교 지도자들과의 간담회 도중 얼굴에 손을 가져다대고 있다. 이 자리에서 나온 그의 발언은 진보적 활동가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윌밍턴, 델라웨어주. 2020년 6월1일. ⓒASSOCIATED PRESS

워싱턴DC -  백인 경찰관의 ‘목조르기 체포’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으로 미국 전역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던 지난 1일(현지시각), 조 바이든이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한 전통적 흑인 교회에서 한 발언은 시위자들이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다.

″총을 들지 않은 사람이 칼이나 그런 걸 들고 달려든다면, 심장 대신 다리에 사격하도록 경찰을 훈련시켜야 한다.” 흑인 커뮤니티 지도자들과의 면담에서 바이든이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는 다르게 시위대에 지지 의사를 밝히려던 도중에 나온 말이다. ”(경찰의 법집행에 관해) 바뀔 수 있는 게 많다.”

이 발언은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진보적 활동가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 운동을 비롯해 경찰 개혁과 인종차별적 법 집행 중단, 연방정부 차원의 처벌과 대책 등을 주장하는 운동을 벌여온 이들이 보기에,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바이든의 이 발언은 정치인이 젊은 진보적 활동가들의 기대에 기대에 미치지 못한 또 하나의 사례일 뿐이었다.

아직 바이든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지 않은, 청년층 주도의 기후변화 운동 단체인 ‘선라이즈 무브먼트‘는 1일 이 발언을 ‘약탈꾼들에게 사격하라’던 트럼프의 말과 연관지어 비판했다. ”그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인가?” 이 단체가 트윗에 적었다. “XX 훨씬 더 잘, 빨리 따라와야 할 것이다. (아니면 물러나든지)”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가 백악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워싱턴DC. 2020년 6월2일.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가 백악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워싱턴DC. 2020년 6월2일. ⓒASSOCIATED PRESS

 

″(바이든은) 진심이기는 한데, 그 역시도 자신은 (흑인들의)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편이 되려면 어떻게 할 지에 대해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지는 않은 다른 백인들과 똑같을 뿐이다.” 휴스턴에서 블랙 라이브스 매터 시위에 참여한 애쉬튼 우즈가 허프포스트에 말했다. 그는 마지못해 바이든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선거캠프와 측근들은 문제의 발언을 옹호하고 나섰다. 델라웨어 최초의 흑인 하원의원인 리사 블런트 로체스터(민주당)은 ”‘나는 이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며, 행동을 위한 계획이 있다’고 말하는 진정한 리더십을 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흑인 관련 정책공약을 내놓은 바 있는 바이든은 2일 의회에 경찰 개혁법 통과를 촉구했다.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시위는 민주당이 활동가와 젊은 흑인 유권자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당 지도부의 공식적인 반응들은 선제적이지 못했고,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었다. 의회는 다음주에 경찰의 잔혹성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지난해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민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하원에서든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한 상원에서든 입법을 통한 대응에 관한 명확한 일정은 나와있지 않다.

″말 뿐이라는 게 문제다.” 워싱턴DC에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던 로즈(34)씨가 말했다. ”정책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도 않고, 아젠다를 밀어부치지도 않는다. 지금은 말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 바이든은 흑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민주당 대선후보가 될 수 있었다. 젊은층과 진보적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런 바이든에게 더 많은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조 바이든은 흑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민주당 대선후보가 될 수 있었다. 젊은층과 진보적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런 바이든에게 더 많은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JIM WATSON via Getty Images

 

 

민주당과 시위대의 ”거대한 격차”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은 플로이드의 사망을 일찌감치 공권력에 의한 ”범죄”로 규정했다. 민주당 지도부들도 경찰의 잔혹성을 규탄했다. 6년 전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벌어진 시위에 대응해 했던 말들과 똑같았다.

그마저도 일종의 단서가 달려있었다.

″시위를 악용해 기물을 사정없이 파손하고 폭력을 저지르는 극소수의 사람들의 행동은 잘못됐다.”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 척 슈머가 2일 의회에서 말했다. ”그들은 법을 어기고 있고, (코로나19로) 이미 고통을 겪고 있는 업체들을 파괴하고 있고, 동료 시민들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고 있다.”

뉴욕에서는 빌 더블라지오 시장(민주당)이 경찰차의 시위대 돌진 사건에 대한 조사를 약속하면서도 ”경찰차를 가로막고 에워싼” 시위대에게도 책임을 돌렸다. (영상을 보면 시위대는 경찰차를 에워싸지 않았으며, 더블라지오 시장은 비판이 쏟아진 뒤에야 보다 강력한 어조로 당시 경찰의 행위를 규탄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힐러리 클린턴 같은 인물들은 유권자들이 각자의 분노를 투표를 통해 표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같은 언급은 시위의 요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무슨 말이냐면, 투표를 통해 자유를 얻어낸 사람은 없었다는 얘기다. 물론 투표는 중요하다. 나는 선거 때마다 빠짐없이 투표를 한다. 하지만 누군가 괜찮은 사람을 앉히는 것은 기껏해봐야 우리에게 필요한 의미있는 그런 변화를 위한 여건을 조금 더 원활하게 만들 수 있을 뿐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변화를 이뤄내는 데 있어서) 언제나 통했던 건 시위다.” 로스앤젤레스의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을 공동으로 조직한 멜리나 압둘라가 말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이 정례 주간 브리핑을 열고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대통령이 백악관 앞 시위대 해산에 군 병력을 투입한 것의 문제를 지적했다. 워싱턴DC. 2020년 6월4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이 정례 주간 브리핑을 열고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대통령이 백악관 앞 시위대 해산에 군 병력을 투입한 것의 문제를 지적했다. 워싱턴DC. 2020년 6월4일. ⓒSarah Silbiger via Getty Images

 

진보 정치운동 단체 ‘데모크라시 포 아메리카(Democracy for America)’의 대표 이베트 심슨은 활동가들이 요구하는 것과 민주당 지도자들이 말하는 것들 사이에는 ”여전히 거대한 격차가 있다”고 말한다.

″무언가 일이 벌어졌을 때에만 행동을 취하고, 그 행동조차도 보통은 일시적인 데다가 정치적 분위기가 바뀌거나 지도부가 바뀌면 또 달라진다.” 심슨이 경찰 폭력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에 대해 한 말이다. 그는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는 도시들도 오랫동안 경찰의 과잉 공권력 행사 문제를 해결해내지 못했으며, 이곳들에서도 시위가 벌어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지역적 차원에서 보자면, 시애틀 시장 제니 더킨(민주당)은 지난 토요일(5월30일) 시행 직전에서야 오후 5시 통행금지령을 발표해 몇몇 진보 성향의 주의회 의원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경찰차의 시위대 돌진 말고도 지난주 브루클린에서 열린 시위에서 두 명의 흑인 주의회 의원과 기자 신분을 밝혔던 허프포스트 기자가 경찰에 체포된 사건으로 비판을 받았다. 

심슨은 시위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경찰의 폭력성이 민주당 지도부들에 의해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경찰의 잔혹성에 대한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 경찰의 잔혹성을 중단시킬 수 없다는 건 애석한 일이다.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서 이것(경찰의 잔혹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뿌리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 앞에서 열리고 있다. 워싱턴DC. 2020년 6월4일.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 앞에서 열리고 있다. 워싱턴DC. 2020년 6월4일. ⓒASSOCIATED PRESS

 

시위에 부응할 정책들을 찾아서

바이든은 흑인 유권자 다수로부터 지지를 확보함으로써 대선후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1994년의 강력범죄 처벌 강화법에 공동 발의자로 참여한 것을 계속해서 변호하고 있고, 경찰력 행사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여러 단체들의 환심을 사려고 한 적도 별로 없다. 그것 때문에 경선에서 떨어질 뻔한 적은 없었을지 몰라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를 꺾기 위해 필요한 진보 성향의 젊은층 유권자들, 흑인 젊은층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오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가 훨씬 더 많이 (유권자들의 말을) 들어야 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버지니아주 흑인 진보 단체의 일원이자 알링턴카운티 위원회 위원인 크리스천 도시가 말했다.

지난달에 있었던 또 다른 논란에 대해, 바이든은 자신이 흑인 유권자들의 말을 더 많이 들어야 한다고 시인했다. 당시 유명 흑인 라디오 진행자 ‘Charlamagne tha God’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나를 찍을지 트럼프를 찍을지 잘 결정하지 못하겠다면, 당신은 흑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밀했다. 바이든은 그날 있었던 흑인 경제계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이 발언을 사과했고, 흑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민주당 주류 인사들은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정책들과 레토릭에 동조해왔던 공화당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데 열심이다.

″(이념적 성향이 서로 다른 지지층들 사이에서) 어휘가 항상 똑같지는 않을 수 있어도 장기적인 목표는 완전히 일치한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민주당 전략가 애드완 시라이트가 민주당에 대해 말했다. ”우리 사이의 차이점은 다른 쪽(공화당)과의 차이와는 비교도 안 된다.” 

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해 백악관 인근에는 철조망이 설치됐다. 워싱턴DC. 2020년 6월4일.
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해 백악관 인근에는 철조망이 설치됐다. 워싱턴DC. 2020년 6월4일. ⓒASSOCIATED PRESS

 

하지만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이 벌어지기 몇 년 전에도 경찰의 잔혹성과 인종차별에 초점을 맞춘 입법 활동이 민주당 의원들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던 적은 거의 없었다. 2019년부터 민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하원에서도 말이다. 퍼거슨 사태 이후 의회 내 경찰개혁 움직임은 중단된 상태이며, 트럼프 정부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경찰의 잘못된 행위를 더 이상 조사하지 않기로 했다. 2018년에 의회가 사법개혁안을 통과시켰고, 트럼프 정부 하에서 그렇게 해냈다는 게 의미 있는 성과이기는 했지만, 변화는 미미했다. 일부 마약 관련 연방범죄의 형량을 낮춘 정도였다.

지난 일요일 ABC뉴스 ‘디스위크’ 인터뷰에서, 펠로시 하원의장은 경찰의 목조르기 체포 행위를 연방정부 차원에서 금지하는 실효성 있는 법안을 비롯해 흑인 성년 및 어린이들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위원회를 만드는 것과 같은 상징적인 조치들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시위자들은 이런 아이디어와 구상을 내놓는 사람들이 늘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

활동가 벤 베이커(26, 흑인)씨는 그동안 몇몇 흑인 정치인들이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그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더 중도 성향인 백인 정치인들이 더 많이 목소리를 내줬으면 한다.” 베이커씨가 말했다. ”(진보 정치인들의 발언으로) 아무리 많은 진보 표를 얻는다고 해도, 승리하려면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인종차별적 행위에) 공모하는 것과도 같다.” 

'숨을 쉴 수가 없다' -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기 전에 남긴 이 발언은 전 세계로 퍼진 인종차별 반대 시위의 구호가 됐다. </p></div>
<p>이 말은 2014년 용의자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목조르기'를 당하다가 끝내 사망한 흑인 남성 에릭 가너가 남겼던 말이기도 하다. 그의 죽음, 백인 경찰관에 대한 불기소 처분은 당시에도 큰 논란을 일으키며 시위를 촉발했다.
'숨을 쉴 수가 없다' -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기 전에 남긴 이 발언은 전 세계로 퍼진 인종차별 반대 시위의 구호가 됐다.

이 말은 2014년 용의자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목조르기'를 당하다가 끝내 사망한 흑인 남성 에릭 가너가 남겼던 말이기도 하다. 그의 죽음, 백인 경찰관에 대한 불기소 처분은 당시에도 큰 논란을 일으키며 시위를 촉발했다. ⓒDavid Ramos via Getty Images

 

전국적인 시위가 계속되자 민주당 의원들은 경찰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다 야심찬 제안들을 마련하고 있다. 슈머는 민주당 코리 부커, 카말라 해리스, 태미 더크워스 상원의원 등이 관련 개혁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관의 면책 요건을 재검토하는 것에서부터, 직권을 남용한 전국 경찰관들의 정보를 한 곳에 모으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한다. (지역별로 1만개 넘는 경찰 조직이 따로따로 운영되고 있는 미국에서는 비위행위를 저질러 해고된 경찰관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 경찰관으로 일하는 일이 흔하다.)

바이든은 1일 윌밍턴 교회에서 여러 약속들을 내놓았는데, 꽤나 모호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취임 100일 내로 경찰 감독 기구를 신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조직이 구체적으로 어떤 권한을 가지게 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음날(2일) 필라델피아 연설에서는 추가로 몇 가지 정책들을 내놨다. 그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경찰의 목조르기 체포 수법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전쟁 무기들”을 군이 경찰 부서들로 넘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고, 전국적으로 통일된 ”공권력 집행 기준 모델”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시위에 나선 많은 활동가들은 바이든이 이상적인 후보는 아니지만, 그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2일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재키(30)씨는 바이든에게 ”자명한 결함이 있다는 건 분명하다”면서도 ”현재로서는 그를 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이 과거에 흑인 사회에 피해를 끼친 건 분명한 사실이고, 그걸 만회하려면 그가 많은 일들을 해야 할 거라고 본다. 조금 더 자주 나서고, 더 많은 연대를 보여주고, 더 많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1일 의사당에서 만난, ‘T’라고만 신분을 밝힌 한 시위자는 이런 제안을 내놨다. ”의회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는 그 거지발싸개같은 범죄법을 없애버려야 한다. 그런 개X 같은 걸 없애버리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어떤가?”

바이든은 상원 법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1994년 이 법안의 처리를 도왔다. 공화당 닉슨 정부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이 법안은 ‘범죄 예방에는 처벌 강화가 최선‘이라는 정책 기조를 충실히 계승했다. 이는 교도소를 수감자들로 가득 채워넣은 ‘대량 투옥(mass incarceration)’ 흐름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흑인 등 유색인종들에 대한 더 가혹한 법 집행을 부추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는 지금도 진보층의 지지를 받는 여성폭력 방지법 같은 조항들도 포함되긴 했지만, 개혁법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법안이 인종차별적 투옥을 낳는 구조적 문제를 낳았다고 지적해왔다. 특정한 종류의 범죄에 대해 징역형을 의무화한 것이나 막대한 예산을 경찰과 교도소에 투입하도록 한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주. 2020년 6월2일.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주. 2020년 6월2일. ⓒASSOCIATED PRESS

 

다급한 요구

‘가슴 대신 다리에 총을 쏘라’는 바이든의 발언 사람들이 공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인종차별적 법 집행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에 비하면, 경찰이 어디에 총을 쏴야 하는지는 정말이지 사소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인식이 그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다른 민주당 후보자들이 그랬던 것과 똑같은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즉 우리의 힘 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보수층을 떨어져나가게 하지 않을 정도의 상식적 수준의 변화 정도는 가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벌어진 미니애폴리스에 거주하는 흑인 마티아스 레만씨가 말했다. ‘선라이즈 무브먼트’의 디지털 디렉터로 일하는 그는 앞서 언급한 바이든 비판 트윗을 작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바이든 선거캠프의 선임보좌관 사이먼 샌더스는 바이든의 발언을 트럼프의 것과 비교한 선라이즈 무브먼트의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조 바이든은 이 나라 곳곳에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시위자들이 느끼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도 언급한 것이었다”며 ”그러므로 도널드 트럼프나 조 바이든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말은 전적으로 틀렸다고 본다”고 말했다. 

바이든의 최근 발언을 둘러싼 논쟁은 급진적이고도 즉각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진보적 유권자들 및 젊은층과 다양한 인종이 압도적 다수를 이루는 활동가들과 이제는 바이든이 이끌게 된, 그와 같은 요구에 심정적으로 지지를 표하면서도 실제 정책적 변화에 관해서는 뒤를 따라가기에 바쁜 민주당 기득권층 사이의 깊은 틈을 잘 보여준다. 

미국 전역으로 번진 시위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대한 분노, 더 나아가서는 미국 사회의 '구조적인 인종차별'에 관한 문제의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보스턴, 매사추세츠주. 2020년 6월4일.
미국 전역으로 번진 시위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대한 분노, 더 나아가서는 미국 사회의 '구조적인 인종차별'에 관한 문제의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보스턴, 매사추세츠주. 2020년 6월4일. ⓒMaddie Meyer via Getty Images

 

시위대 다수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훨씬 더 크다고 믿는다. 그 무엇보다도 플로이드의 사망은 그저 어느날 갑자기 벌어진 사건이 아니다. 베로나 테일러(지난 3월 잠을 자던 도중 집으로 들이닥친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한 흑인 응급의료요원) 사건, 아흐마우드 아르베리(지난 2월 조깅을 하다가 별다른 이유 없이 백인의 총에 맞아 사망한 흑인 청년) 사건에 이어 연달아 벌어진 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유독 흑인 커뮤니티에 가혹한 피해를 입혔다는 점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2일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로즈씨는 인종주의가 공중보건위기로 인식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은 (인종차별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는) 믿음이 꽤 낮아져있다. 그런 희망을 갖기 어려운 때이지만, 어디서부턴가는 시작을 해야 한다.”

변호사로 일하는 테레사(33)씨는 백악관 앞에서 벌인 시위에서 요구사항들을 적은 팻말을 들고 나왔다. ”모든 경찰관들에게 인종 편견 검사를 실시해 합당한 점수를 얻어 통과하도록 해야 하고, 경찰에 의한 모든 살인 사건은 사건이 벌어진 곳에서 150마일(약 241km) 떨어진 (다른) 지역의 검사가 맡도록 해야 하고, 연방정부는 경찰관에 의한 유색인종 사망 사건에 대한 전면 재평가 및 재심을 실시해야 한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경찰에 대한 예산 지원을 중단하거나 최소한 크게 줄여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교육, 주택공급, 의료서비스, 일자리 등에 쓸 예산이 없다면서도 경찰 예산과 과잉 법 집행은 끝없이 늘어나고 있다.” 진보 정치단체 ‘근로가족당(WFP)’의 뉴욕주 지구당위원장 소치 네미카가 말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주택이나 일자리 등에) 투자하기 위해서 (경찰) 예산을 옮기는 것이다.”

미니애폴리스의 민권운동 단체 ‘리클레임더블록(Reclaim the Block)‘과 ‘블랙비전콜렉티브(Black Visions Collective)’는 시의회 의원들에게 서명을 요청한 4쪽짜리 청원서에서 경찰 예산 축소를 핵심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 앞으로 시 경찰 예산을 증액하지 말고, 기존 예산에서 4500만달러를 즉각 삭감해서 ”커뮤니티 주도의 보건의료 및 치안” 분야에 투자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또 이들은 경찰을 비롯한 사법기관들이 시위대와 주민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시킬 것을 촉구했다.

일부 시위자들은 경찰에 대한 예산 지원을 크게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치인들이 이같은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뉴욕. 2020년 6월4일.
일부 시위자들은 경찰에 대한 예산 지원을 크게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치인들이 이같은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뉴욕. 2020년 6월4일. ⓒASSOCIATED PRESS

 

뉴욕주 근로가족당은 경찰 예산을 축소하고 그 돈을 보건의료, 주택 공급, 일자리 공급 프로그램에 써야 한다는 정책을 올해 가장 핵심적인 목표로 내세웠다. 이들은 이렇게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함으로써 범죄율을 낮출 수 있다고 말한다. 이건 현실과 동떨어진 요구가 아니다. 일례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으로 세금 수입이 크게 줄어들게 된 뉴욕시와 뉴욕주는 저임금을 받는 7만5000명의 10대 및 청년들을 위해 매년 실시해왔던 여름 일자리 사업을 취소했다.

이런 제안들이 바이든이나 민주당 주류 정치인들은 커녕 지역의 진보적 정치인들에게조차 수용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바이든보다 훨씬 더 왼쪽에 있는, 진보적 의원 출신인 키스 엘리슨 미네소타주 검찰총장은 2일 인터뷰에서 경찰 예산 축소 주장을 일축했다.

″상당수 경찰관들은 개혁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고, 그에 동참하고자 한다.” 그의 말이다.

진보적 흑인 단체 활동가들도 자신들이 바라는 변화가 하루 아침에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민주당 지도부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일들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흑인 유권자들의 열정을 돋우고 움직이게 만들 바이든의 전략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진보적 풀뿌리 시민권 운동단체 ‘컬러오브체인지(Color of Change)’의 제니퍼 에드워즈가 말했다. ”바이든 뿐만이 아니고 민주당은 이 시점에서 흑인 유권자들이 바라는 것들에 우선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지금 의회에서 통과되고 있는 법안들, 그리고 코로나19와 흑인 커뮤니티에 관해 제안된 정책들을 보면, 미봉책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우선적으로는 정치인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일이 필요하다는 게 알링턴카운티 위원회 위원 도시의 설명이다.

″시급하게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활동가들의 주장을 그들이 받아들일 것인지 여부가 관건이다.” 그가 말했다. ”활동가들은 그 격차야말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보고 있다.”

 

 * 허프포스트US의 Democratic Leaders Play Catch-Up On Black Lives Matter Movement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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