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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영입 인재→비례대표 탈락→비례대표 23번 : '체육계 미투 1호' 김은희를 만났다

[2020 총선 인터뷰] 김은희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 23번

ⓒHangangKim / Huffpostkorea

테니스 코치 김은희씨(29)를 처음 알게 된 건 2018년 2월 SBS스페셜 ‘#미투 나는 말한다’를 통해서였다.

주말 저녁, 소파에 널브러져 쉬고 있던 눈앞에 털털한 웃음의 은희씨가 들어왔다. 은희씨는 1991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27세. 테니스 선수 생활을 하다 테니스 코치로 살아가고 있는 은희씨는 자신이 아동 성폭행 피해자라고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테니스 선수를 꿈꾸는 초등학생이었던 2001년 7월부터 2002년 8월까지 남성 테니스 코치에게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고, 코치는 ”죽을 때까지 너와 나만 아는 이야기”라며 어린 제자의 입을 막았다. 어린 은희씨는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침묵 속에서 괴로움을 홀로 견뎠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성인이 된 은희씨는 2016년의 어느 날, 한 대회에서 여전히 어린 테니스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는 가해자 김모씨를 마주쳤다. 계속 침묵하고 있으면 다른 피해자가 또 발생할 수 있음을 알게 됐고, 은희씨는 어린아이들이 자신이 겪은 고통을 경험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16년 만에 혼자 법정 투쟁을 시작한 끝에, 은희씨는 결국 가해자에게 ‘징역 10년’이 선고되도록 만들었다.(김씨에게는 2018년 7월 징역 10년이 확정됐다.) 침묵하면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나섰다는 은희씨를 보며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올해 1월 은희씨가 자유한국당 영입 인재로 발표됐을 때 꽤 놀랐다. 언제든 공적 활동을 할 인물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으나, 둥지를 튼 곳이 하필 자유한국당이라고? 여러 의문이 들었다. ”한국당 하면 인상부터 쓰던 제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정말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다”는 출마 선언문을 읽으며, 은희씨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영입 인재로 초빙됐음에도 이후 은희씨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지역구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아 보겠다”며 경기 고양갑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탈락했고, ‘한선교 파동’ 당시 비례대표 명단에서 아예 배제됐다가, 이후 한선교 대표 사퇴 끝에 다시 ‘비례대표 23번’이 됐다. 23번은 당선권인 20번의 뒤에 있는 번호다.

은희씨는 요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함께 밥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인터뷰를 요청했고, 은희씨는 흔쾌하게 승락해 주었다.

우리가 만난 것은 3월 27일 따스한 봄날의 점심 무렵. TV 속 모습 그대로 큰 키에, 털털한 말투의 은희씨가 내 앞에 앉았다. ‘단단하다. 단단한 바위 같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래는 은희씨와 나눈 대화들이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계신 건 아닐까 약간 염려했습니다.

하하. 아녜요. (명단 발표 후) 힘든 시기는 지난 것 같아요. 힘들긴 했는데, 그 또한 어리광인 것 같이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은 아니잖아요. 어쨌든 선택받은 거고, 기회를 받은 거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주어진 기회만큼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HangangKim / Huffpostkorea

최초의 비례대표 명단을 받아 들고 많이 황당하셨을 것 같습니다. 당시 심경에 대해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당시에는 억울했어요. 배제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정상참작의 사유를 납득될 정도로 소명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제 개인의 일로만 보면 아쉽죠. 그런데 당 입장에서는 (지역구 공천 탈락자는 배제한다라는) 국민과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저만 구제할 수는 없었을 것 같아요.

2차 영입 인재로 대대적인 홍보를 했으나, 당선권 밖의 번호를 받게 되신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이용당했다’는 반응도 많아요. 어떠신가요.

이용당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당의 입장, 공관위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라고 믿어요. 최초 명단에서는 탈락했다가 23번이 된 거니까. 23번은 완전히 뒷번호도 아니잖아요.

‘외면당했다‘, ‘이용당했다‘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럼 제가 그분들의 마음속에서는 ‘당선권’이라는 거잖아요? 제가 앞번호를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 신뢰감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는 당선권 밖이지만, 그분들 마음속에서만큼은 앞번호라는 거니까…. 그분들의 응원에 보답해야겠다, 마음먹고 있어요. 그분들 때문에라도 힘을 내야겠다...(웃음) 

황교안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 대표와 체육계 '미투 1호' 김은희씨가 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2020년 인재영입인사 환영식에서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황교안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 대표와 체육계 '미투 1호' 김은희씨가 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2020년 인재영입인사 환영식에서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뉴스1

#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이유

 

그런데 ‘체육계 미투 1호’로서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이 아닌 다른 정당에서는 러브콜이 없었나요?

네. 없었어요. 안 그래도 ‘하필이면 왜 자유한국당으로 갔느냐’고 주변에서 많이들 말하는데.(웃음)

하하. 저도 그 이야기를 꼭 묻고 싶었어요. 어떻게 결정하게 된 건가요?

일주일 밤을 새워서 내린 결정이에요. 원래는 염동열 인재영입위원장님한테 안 한다고 말하려고 나갔는데.. 대화해보니까 진정성이 있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스스로에게는 미안하고, 힘든 선택이었죠. 저는 테니스 코치로서 아이들과 운동하는 게 가장 행복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피해자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선택이라는 판단이 들었고…. 그래서 당시로써는 불행하다고 느꼈는데, 막상 와서 부딪혀 보니까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보람차기도 하고, 좋은 사람도 많이 알게 되고. 그때는 제가 많이 약해져 있었고, 겁을 먹었던 것 같아요. 

ⓒHangangKim / Huffpostkorea

혹시 다른 정당에서 러브콜이 왔다면 어땠을까요? 자유한국당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흠.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근데 그때는 어떤 선택을 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현재의 당을 선택한 게 잘했다고 생각해요. 당내에서 견제가 있어야 뭔가가 대두되고, 논란도 되고, 진행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인권 분야에 있어서는 당내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이 없다 보니까 앞서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이 분야 만큼은 제가 다른 당에 계신 분들과 손을 잡고 진행할 수도 있고요.

많은 분이 ‘왜 거기 가서 힘을 실어주냐’ ‘인권에 관심도 없는 당이고, 오히려 체육계 성폭력 방지법 처리를 방해한 당이다’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그럼 여기 내부에서 빨리 처리해달라고 설득하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던 것이거든요. ‘처리하면 안 된다’라고 말하려고 제가 이 당에 들어온 게 아니잖아요.(웃음) 저는 당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이 하라고 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고요.

2018년 SBS스페셜 ‘#미투 나는 말한다’를 보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공인이 아닌 일반인이 방송을 통해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고, 피해를 공개한다는 게 그만큼 힘든 일이기 때문인데요. 그때는 어떤 마음으로 출연을 결심하신 건가요.

일단, 제가 용기를 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2016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데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사건들의 영향이 커요. 광주 인화학교 사건,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 도봉구에서 22명의 고등학생이 중학생 2명을 성폭행한 사건, 섬마을 교사 성폭행 사건, 조두순 사건을 보면서 모니터링하면서 힌트를 얻었어요.

도봉구 성폭행 사건은 5년 지난 뒤에야 피해자들이 신고했는데, 그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되고 가해자들이 구속됐어요. 이렇게 각 사건마다 힌트 얻을 것들이 있어서 ‘아 나도 이런 식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하면 승산이 있겠구나’ 확신을 얻었고, 사건을 진행할 수 있었어요.

저에게 용기를 주었던 사건들처럼, 저도 다른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었던 거죠.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 시작한 싸움이에요. ‘꼭 승소해서, 나 같은 피해자도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언젠가 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예장보다 빨리 그 시기가 왔던 것 같아요. 

김은희씨의 싸움이 있었고, 미투 운동이 시작됐어요. 사회가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회적으로 달라지고 있는 것 같긴 해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 여전히 피해자는 신고를 두려워하고, 2차 피해를 두려워하고, 가해자는 계속 당당하니까요. 제가 주위에서 보고 듣고 경험해보면 그래요. 그런 걸 보면 사회가 바뀌었다 말할 수도 없고, 안 바뀌었다 말할 수도 없고.

가해자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당당할까? 왜 법도 무서워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우리나라는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무관용의 원칙으로 철저하게 법을 집행하지 않잖아요. 원칙이 우선이고, 그 뒤에 유연성이 발휘되어야 하는데. 유연성이 먼저이고, 원리원칙은 그 뒤인 것 같아요. 

ⓒHangangKim / Huffpostkorea

가해자 김씨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위자료 1억원 지급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후 상황은 어떻게 돼가고 있나요.

상고심이 진행되고 있죠. 많은 분이 도와주고 계셔서 큰 힘을 받고 있어요. 2, 3개월 안에 결과가 나올 것 같은데.. 결과는 진짜 모르겠어요. 뒤집힐 수도 있을 것고….

2018년 2월 대법원에서 징역 10년이 확정됐는데, 가해자인 김모씨는 변호인을 통해서나마 사과를 하지는 않았나요.

전혀요. 민사소송을 하는 지금까지도 무죄를 주장하면서 억울하다고 말하는걸요.

″그간 20명 넘는 체육계 폭력·성폭력 피해자를 도우면서 답답함을 느꼈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저와 유사한 사건의 피해자가 저를 보면서 용기를 얻었고, 그래서 관련 기관에 방문해 피해 사실을 신고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모습에) 되려 상처를 받고 저한테 다시 왔었고. 이런 상황이 몇번 있었죠…. 또, 제가 익명으로 신고한 적도 있었어요. 피해 당사자가 신고한 게 아니었는데, 외부로 발설이 돼서 되레 피해자가 2차 3차 피해를 받는 걸 보면서 신고가 피해자를 위한 게 아닌 거예요.(허탈한 웃음)

‘제발 신고해주세요’라는 말을 많이 하고 다녔는데, 그 이후부터는 저도 신고를 잘 못 하겠고. 과연 피해를 지속하는 게 덜 고통일까, 신고를 한 뒤 2차 3차 피해를 받는 게 덜 고통일까 따져봐서 덜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 하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현실이죠.

저는 피해자가 용기를 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 하지,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하지, 내가 과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설령 2차 피해를 받는 건 아닐까’ 등등... 피해자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게끔 하지 않아도 되도록. 

ⓒHangangKim / Huffpostkorea

# 피해자가 용기 내지 않아도 되는 세상

 

국회의원이 되면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가요?

부당하게 인권 침해를 당하는 피해자와 약자들에게 힘을 주는 의정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이 말도 안 되는 현실 속에서 가해자보다 더 힘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 가해자들이 무서워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한 거죠. 안 그러면 가해자들은 무서울 게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피해자 뒤에는 가해자보다 더 큰 힘이 있어야 해요.

″아픔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이겨내고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좀 더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 같은 경우는 ‘피해자 김은희‘와 ‘피해자 이외의 김은희‘로 나누어서 생활하는 것 같아요. ‘피해자 김은희’로서는 감정 이입을 잘 안 해요. 그렇게 하면 제가 살 수가 없거든요. 다른 피해자와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때처럼 그런 필요성이 있을 때, 감정 이입을 하고요.

피해자 김은희 외에 여자 김은희, 테니스 코치 김은희, 딸 김은희, 친구 김은희 등등 다양한 정체성을 확고히 해나가면서 새로운 김은희의 삶을 사는 것이지.. 피해 자체가 완전히 회복되거나 치유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HangangKim / Huffpostkorea

너무 심각한 이야기만 한 것 같아요. 가벼운 질문도 좀 던져볼까요. 시간 날 때는 뭐 하세요?

운동을 주로 해요. 웨이트 트레이닝, 역도, 볼링, 마라톤, 자전거, 배드민턴 등등. 이번에 당선되면 시민들과 함께 자전거 여행 가고, 국토대장정 가고 그런 걸 해보고 싶었어요. 국회의원에 대해 ‘나랑은 먼 사람이야’라고 정서적으로 많이 느끼잖아요. 수직적인 느낌을 다 깨버리고, 동등한 관계에서 함께 신체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봤죠. (웃음)

하하. 새롭네요. 은희씨가 가장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은 어떤 때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저는 소확행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가족, 친구, 지인들과 함께 예쁜 거 보고 맛있는 거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눌 때. 그럴 때 행복해요.

그럼 반대로 가장 화가 많이 날 때는요?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을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사람을 볼 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번에 탈락하시면, 이후의 계획은 어떤가요. 계속 정치인의 길을 가시는 것인가요?

그건 당과 계속 이야기해봐야 할 것 같아요. 당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할 때, 제 역할이 필요하다면 할 마음이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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