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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도련님·아가씨 대신 그냥 '~씨'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 (성평등 언어사전)

왜 남성 쪽 식구만 과하게 높여 불러야 할까?

ⓒcottoncandy1 via Getty Images

“막히는 성묫길 대신 온라인 성묘 서비스 이용해요.” “상다리 휘어지는 상차림 대신 가사 분담해 간소하게 차려요.”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서울시 성평등 명절사전-2020 추석 특집편’ 제작을 위해 ‘코로나 시대에 시민이 기대하는 성평등한 명절의 모습’과 관련해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모으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그동안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 시즌1(2018년), 시즌2(2019년) 등 ‘성평등 주간’(9월1~7일)을 기념해 시민이 꼽은 명절이나 일상에서 흔히 겪는 성차별 언어를 공개해왔다. 이와 동시에 국어·여성계 전문가 자문에 따라 이를 현시대에 맞는 올바른 말로 바꿔 부르기를 제안했다.

특히 올해 추석 연휴는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만남이 권장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지내게 됐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추석을 더욱 성평등하게 보내기 위한 방법은 뭐가 있을까. 지난해 추석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발표한 ‘성평등 생활사전-추석 특집편’에서 남녀가 뽑은 명절 성차별 1위는 ‘여성만 하는 가사노동’이었다. 이번 추석 연휴를 좀더 안전하게, 그리고 성평등하게 보내기 위한 키워드는 바로 ‘호칭 개선’과 ‘비대면’이다.

“한집에 모여 올리는 차례 대신 비대면 ‘온라인 차례’를 지내요.” “‘결혼해라’ ‘취업했니?’라는 참견 대신 화상이나 통화로 명절 인사 나눠요.”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시민들은 가족 간 비대면 명절을 보내자는 의견을 냈다. 사회적관계망 발달로 얼굴을 직접 보지 않고도 가족애를 다질 방법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집사람, 안사람 대신 배우자 

이처럼 접촉 없이 대화하는 만큼 사용하는 언어도 섬세해져야 한다. 이에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그동안 명절에 알게 모르게 사용했던 성차별적 단어를 삼갈 것을 권했다. 명절 때 자주 사용하는 성차별적 단어는 주로 가족을 부르는 호칭에서 발견됐다. 예를 들어 ‘집사람’ ‘안사람’ ‘바깥사람’은 ‘배우자’로, ‘외조’ ‘내조’는 ‘배우자의 지원(도움)’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어 ‘친할머니·외할머니’를 구분하지 말고 ‘할머니’로 통일해보는 건 어떨까. 남성 쪽 식구만 ‘친’을 붙임으로써 편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친하다는 의미가 담긴 ‘친가’(親家)와 바깥·타인이라는 의미의 ‘외가’(外家) 대신 ‘아버지 본가’ ‘어머니 본가’로 부를 것을 권했다.

 

서방님, 도련님 대신 ~씨 

비슷한 의미에서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서방님·도련님·아가씨’ 대신, 이름에 ‘님’ 또는 ‘씨’를 붙여 부르는 것을 권했다. 남성 쪽 식구만을 과하게 높여 부르는 언어 구조를 평등하게 바꾸기 위해서다. 아울러 ‘주부’는 양성 모두에게 사용 가능한 ‘살림꾼’으로 바꾸고, ‘미망인’은 ‘고(故) ○○○의 배우자’로 풀어쓰기를 권장했다.

지난 1일 발표된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 시즌3’ 결과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 시즌3’은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법령·행정 용어와 서식 등에 아직도 남아 있는 성차별 언어(단어)를 시민 제안으로 바꿔본 것이다. 이들 대부분이 호칭 문제였다. 시민 821명이 1864건의 의견을 낸 이 개선안에서는 우선적으로 공유·확산해야 할 법령·행정용어 속 성차별 단어와 아예 삭제가 필요한 법령 조항 등이 포함됐다. 의견을 낸 시민 중 여성은 72.5%, 남성은 27.5%였다. 연령대는 30대(37.2%)가 가장 많았고, 이어 40대 (25.8%), 20대(21.1%)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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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바꿔야 할 대표적인 단어로는 ‘학부형, 저출산, 양자, 미혼’ 등이 꼽혔다. ‘학생의 아버지나 형이라는 뜻으로, 학생의 보호자를 이르는 말’인 ‘학부형’(學父兄)은 학교나 사회 등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경찰의식규칙, 해양경찰의식규칙 등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한다. 이에 시민들은 해당 규칙 등에서 ‘학부형’을 ‘학생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뜻하는 ‘학부모’로 개선하자고 제안했다. ‘형이 보호자가 되는데 어머니가 안 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등 법률 명칭에도 포함된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꿔 부르자는 의견도 많았다. 출산율 감소와 인구 문제 책임이 마치 여성에게 있다는 식으로 그릇되게 비칠 가능성을 꼬집었다. 한부모가족지원법 등에서 쓰이는 ‘미혼’도 ‘비혼’으로 고치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같은 의미에서 ‘미혼모’도 주체적인 의미를 담아 ‘비혼모’로 순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여전한 성차별 언어 

백미순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는 “사회적 요구와 시민의 인식 수준은 높아졌지만, 아직도 법령 등에는 성차별 언어가 그대로 남아 있다”며 “이번 시민 제안을 통해 법령 등도 성평등하게 개선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지난 1월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제작한 ‘서울시 성평등 명절사전-2020년 설 특집편’을 참고해도 다양한 성평등 단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성평등 명절사전에는 ‘이제는 꼭 써봐야 할 단어’로 사례가 수록됐다. 배우자의 부모를 ‘장인어른·장모’ 대신 ‘아버님·아버지’ 또는 ‘어머님·어머니’로, 자녀의 외조부모는 ‘외’ 자를 붙이는 대신 ‘할아버지·할머니’로 부르는 것이 그 예다.

또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자주 사용하는 성차별 속담·관용표현 목록을 서울시성평등생활사전자문위원회를 통해 선정했다. 가장 쓰지 말아야 할 표현으로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가 뽑혔고, ‘남자는 돈 여자는 얼굴’ ‘남자는 일생에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가 그 뒤를 이었다. 이어 ‘사내대장부가 부엌에 들어가면 ○○가 떨어진다’ ‘미운 며느리 제삿날 병난다’ ‘사위는 백년지객(백년손님)’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도 선정됐다.

백미순 대표는 “무심코 사용하던 성차별 언어를 시민 제안으로 성평등하게 바꿔나가는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을 2018년부터 지속해서 내며, 사회적으로 성평등 언어 사용이 크게 증가하는 변화를 실감했다”며 “앞으로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가족 간 평등한 호칭 사용 문화를 확산할 수 있도록 언어 예절 캠페인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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