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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에 대한 기존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연구결과가 나오다

세 권으로 이뤄진 ‘가야고분군 연구총서’가 나왔다.

고대국가 가야의 역사는 서기 40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한반도 남부의 가야와 왜병을 공략한 것을 기점으로 낙동강 하류 지역 중심으로 번성했던 전기 가야(왼쪽 그림)와 내륙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후기 가야(오른쪽 그림)로 구분된다.
고대국가 가야의 역사는 서기 40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한반도 남부의 가야와 왜병을 공략한 것을 기점으로 낙동강 하류 지역 중심으로 번성했던 전기 가야(왼쪽 그림)와 내륙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후기 가야(오른쪽 그림)로 구분된다. ⓒ경남도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

“오늘날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고대국가 가야는 수로왕 등 여섯 형제가 건국한 여섯개 작은 나라들로 이뤄졌으며, 서로 연맹을 이뤄 사이좋게 지내다가 신라에 정복당했다.”

이것이 가야에 관한 일반적 상식이다. 그러나 각종 연구성과를 종합해서 볼 때, 이는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거리가 멀다. 여섯개 나라가 형제처럼 사이좋게 지냈다는 것은 삼국유사의 기록 때문에 빚어진 허구일 뿐이라는 것이 가야 관련 연구성과의 종합결론이다.

‘경남도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은 16일 ‘가야사총론’ ‘가야고분군1’ ‘가야고분군2’ 등 세 권으로 이뤄진 ‘가야고분군 연구총서’를 펴냈다. 연구총서는 ‘가야사의 시기 구분과 공간적 범위’ ‘가야고분군 형성과정과 경관의 특징’ ‘문헌으로 본 가야의 대외 교류’ 등 모두 25개 단락으로 구성됐는데, 대학·박물관·연구원 등 20개 기관의 전문가 25명이 한 단락씩 맡아 집필했다.

경남도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이 펴낸 ’가야고분군 연구총서’.
경남도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이 펴낸 ’가야고분군 연구총서’. ⓒ경남도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

연구총서는 “삼국지, 삼국사기, 일본서기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때 정치체제로서 가야는 2세기부터 존재하지만, 문화 성립 시기를 포함하면 가야 역사는 기원전 1세기부터 대가야가 멸망하는 562년까지 600여년에 이른다. 또 가야는 12개 이상의 작은 나라들로 이뤄져 있었으며, 고구려·백제·신라 등 삼국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역사를 갖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전성기 가야의 영역은 동쪽으로는 부산과 경남 양산·밀양까지, 서쪽으로는 전북 남원·장수와 전남 곡성·구례·광양·순천 등 호남 동부지역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가야를 제외한 고구려·백제·신라 삼국만이 한반도에 존재했던 기간은 가야 멸망 이후 660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100년도 되지 않았다.

연구총서는 서기 400년을 기점으로 전기 가야와 후기 가야로 가야 역사를 구분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가야와 일본(왜)의 침략을 받은 신라의 구원요청을 받아들여 400년 5만명 규모의 보병과 기병을 파견해 왜병과 가야를 공략했다. 이때 낙동강 하류 지역이 주전쟁터가 되면서, 낙동강 수로와 바다를 이용해 발전했던 남부 가야가 큰 타격을 입었다. 이 때문에 남부 해안지역에 있던 가야의 중심이 고구려 공격을 받은 이후 경북 고령의 가라국과 경남 함안의 아라국 등 북부 내륙지역으로 이동했다.

가야는 이해관계에 따라서 이웃 가야를 침략하기도 했고, 신라를 등에 업고 다른 가야국과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사물국 등 김해 서부지역 나라들이 일으킨 전쟁인 포상팔국전쟁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가야연맹체론은 허상일 뿐이다.

한·일 양국 역사학계의 오랜 논쟁거리인 ‘임나일본부’에 대해서, 연구총서는 ·왜 왕권이 가야에 파견했던 외교사절”이라고 정의했다. 임나일본부는 함안의 아라국에 장기체류하면서 가야 왕들과 보조를 맞춰 백제와 신라에 대한 외교활동에 참여했다. 아라국왕은 이들을 통해 왜를 배후세력으로 확보하고 백제·신라에 대항했다.

경남 함안군 가야읍에서 발견된 아라가야 왕궁터로 추정되는 유적. 아라가야는 후기 가야의 중심지였다.
경남 함안군 가야읍에서 발견된 아라가야 왕궁터로 추정되는 유적. 아라가야는 후기 가야의 중심지였다. ⓒ경남도

가야 고분 발굴 결과, 가야는 죽은 권력자를 위해 종속 관계에 있던 사람을 강제로 죽여 함께 매장하는 순장을 3세기 말부터 6세기 중엽까지 시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고대 한반도 남부의 순장은 3세기 말 조성된 금관가야 고분인 경남 김해시 대성동고분에서 처음 확인됐다. 신라에서 순장이 시행된 것보다 이른 시점이다. 6세기에 조성된 대가야 고분인 경북 고령군 지산동 44호분에서는 40여명에 이르는 순장자가 확인됐다. 이는 고대 한반도에서 확인된 최대 규모의 순장 사례다.

경남도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은 “이번에 펴낸 연구총서는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최근 연구성과를 집약해서 전문성을 갖춘 일반교양서 수준으로 정리한 것이다. 가야와 관련된 많은 연구성과를 처음으로 한데 모아 정리했다는 점에서 연구총서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둘러서 책을 펴낸 탓에 연구총서는 군데군데 오자를 남겼고, 필자들끼리 사용하는 용어를 일부 통일시키지 못했으며, 서로 다른 연구결과를 제시하는 등 문제점도 안고 있다. 850쪽을 넘는 방대한 분량의 학술서적임에도 색인을 달지 않은 아쉬움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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