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8년 05월 15일 16시 4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15일 16시 52분 KST

게이봉박두, 단편영화 30편과 함께 한 지난 5년의 역사

huffpost
▲ 상영회, 2017.9.

영화라는 매체는 매우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욕망과 듣고 싶어하는 욕망을 모두 가지고 있죠. 그 욕망을 위하여 여러 예술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전달 받습니다. 그 중 영화는 매우 주관적인 시선을 통해 이야기 뿐만 아니라 동시에 화자의 생각과 욕망을 전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영화를 이해하려면 능동적으로 화자의 욕망과 생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를 제대로 본 거라 할 수 없게 되죠. 저는 그 과정 속에서 매우 큰 희열을 느꼈습니다.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가 만든 가상의 세계 속 주인공의 마음에 잠시나마 공감한다는 것에 말이죠. 단지 그것만으로도 삶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게이봉박두 워크숍을 진행하며 몇 가지 속임수를 쓰고 싶었습니다. 수강생들에게는 ‘영화 만드는 거 별 거 아니다 매우 쉽다’, 관객에게는 ‘이 영화는 그냥 극장에서 흔히 보던 평범한 영화다’라고 말이죠. 결과적으로는 거짓말인지 아니면 현실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강생에게 거짓말 한 것임은 확실했었습니다. 영화 만드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죠. 아무튼 저 두 가지 속임수가 잘 통해야만 수강생도 관객도 얻어가는 게 있을 것 같았습니다. 

▲ 상영회, 2015.7.

“강사님한테 완전 속았어요. 처음에는 쉽다면서요” 

일단 영화를 통해 제가 느꼈던 희열은 영화를 보여주는 단계까지 가야만 느낄 수 있는 거였기에, 어떻게든 쉽게 시작하게 해서 완성까지 끌고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제작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죠. 영화를 처음 만드는 수강생들에게 모든 것을 다 알려주고 시작하게 되면 분명 겁먹고 나가떨어질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과정을 알려주지 않고 진행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쓸 때에는 장소 헌팅이나 배우 캐스팅에 대해서는 모르고, 촬영 때는 편집을 모르고, 편집 때는 상영을 모르고 진행하는 식이죠. 

그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이야기 제작과정이었습니다. 약 4주에 걸쳐 이야기를 만들게 되는데, 그 과정 속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게 됩니다. 수강생들은 그 과정 속에서 마치 가상의 이야기인양 자신의 경험담과 생각을 풀어놓게 되는데요. 한풀이를 하는 것이죠. 그렇게 이야기를 풀다보면 서로의 반응을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가 무엇인지 스스로 자각하게 됩니다. 바로 그 시점에 진짜 가상의 이야기가 탄생하는 겁니다. 자신의 소재와 욕망이 담긴 가상의 이야기가 말이죠. 그것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남에게 보여주게 됩니다. 

▲ 상영회, 2014.9.

관객들이 게이봉박두를 경험하는 과정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는데요. 관객의 경험이 태도가 되어 감독에게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게이봉박두 상영회는 매번 매우 성대하게 열립니다. 말만 상영회지 일반적인 영화가 개봉하는 것과 거의 비슷하게 보여집니다. 완성도 높은 포스터, 200석 이상의 영화관, 주말상영, 전국 순회상영,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터넷 예매. 그렇게 관객들은 평범한 주말 평범한 영화를 보듯 인터넷으로 예매하고 영화관을 찾아 영화를 관람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 앞에 수강생들이 감독으로 변신하여 관객과의 대화를 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그 변신의 완성은 관객이 시켜주는 것입니다. 연출의도와 영화 속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수강생은 거기에 답하며 점점 감독이 되어갑니다. 그렇게 감독은 자신의 분신과 같은 이야기를 선보이는 과정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하게 됩니다.

▲ 상영회, 2013.11.16.

친구사이는 여러 사람으로 이루어진 단체입니다. 넓게 보면 단체 속 성소수자 모두가 주인인 모임이죠. 그런 모임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시작부터 많은 의견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도 다행히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오던 게이컬쳐스쿨 수업중 하나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문화의 힘은 곧바로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천천히 크게 나타나죠. 그렇게 바로 성과가 보이지 않는 프로젝트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화사업 경험이 많은 친구사이였기 때문에 꾸준하게 진행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친구사이 계단을 올라갈까 말까 한참 고민했어요. 막상 용기 내 올라왔는데 제가 제일 처음 와서 아무도 없더라고요.” 게이봉박두 1기생 중 한 분의 첫 수업 시간 회상입니다. 그때 수업을 준비하던 저의 마음도 수강생과 많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시작한 영화제작 워크숍이 벌써 5회를 마쳤고, 2012년부터 시작한 워크숍을 통해 30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어내어 관객들에게 선보였습니다. 그 중 5명의 수강생은 퀴어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주는 5명의 감독이 생겼다는 것만 해도 큰 성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터넷에 얼굴공개요? 네, 상관없어요.”

그 동안 게이봉박두의 가장 큰 변화라면 수강생들의 태도입니다. 게이봉박두 1기 때부터 상영회 무대에 올라가 관객과의 대화를 하긴 했지만, 그 때는 관객분들에게 사진촬영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촬영을 하더라도 얼굴을 가리게 했죠. 5기 때 처음으로 수강생들에게 온라인에 공개될 인터뷰 영상을 제안했는데, 매우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사전 인터뷰 영상을 선보였습니다. 영화관에서의 사진 촬영과 공개도 자유로웠고요. 이런 변화는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그렇게 성소수자가 영화를 만들고 선보이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된 셈입니다.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표현하다니 신선하다”. 처음 게이봉박두를 선보였을 때 들었던 평가들은 강의를 준비하던 우리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당시에만 해도 국내에서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히고 영화를 선보이는 감독은 손에 꼽을 시기였으니까요. 거기에 더해 이야기의 결이 지금껏 봐왔던 퀴어영화와 다르게 감독의 욕망을 온전히 담아낸 결과물이라 더욱 신선해 보였을 겁니다. 이제 그 다음의 퀴어영화의 단계는 어디이고 무엇일까 고민이 됩니다.

▲ 상영회, 2012.9.27.

게이봉박두가 퀴어 커뮤니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이야기를 우리들이 직접 영화로 만들고 선보인다’, 이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 하나는 확실히 전달한 것 같습니다. 누구나 쉽게 창작하고 선보일 수 있고 그것을 통해 나를 직간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된다면, 우리가 다양한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올해 게이봉박두는 매년 그래왔듯 또 변화합니다. 지금까지의 게이봉박두는 이름 때문인지 몰라도 남성 성소수자의 참여 빈도가 높았습니다. 올해부터는 게이뿐만 아니라 다른 성소수자를 더 적극적으로 모집하고, 영화 제작과정과 선보이는 방법에 변화를 주려고 합니다. 특히 여러 변화 중 가장 큰 변화는 주강사의 교체가 아닐까 합니다. 올해 게이봉박두는 스마트하고 매력적인 강사님이 지도해주실 예정입니다. 기대되시죠? 저도 기대됩니다.

글 : 최영준(게이봉박두 1~5기 워크숍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