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사이는 여러 사람으로 이루어진 단체입니다. 넓게 보면 단체 속 성소수자 모두가 주인인 모임이죠. 그런 모임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시작부터 많은 의견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도 다행히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오던 게이컬쳐스쿨 수업중 하나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문화의 힘은 곧바로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천천히 크게 나타나죠. 그렇게 바로 성과가 보이지 않는 프로젝트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화사업 경험이 많은 친구사이였기 때문에 꾸준하게 진행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친구사이 계단을 올라갈까 말까 한참 고민했어요. 막상 용기 내 올라왔는데 제가 제일 처음 와서 아무도 없더라고요.” 게이봉박두 1기생 중 한 분의 첫 수업 시간 회상입니다. 그때 수업을 준비하던 저의 마음도 수강생과 많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시작한 영화제작 워크숍이 벌써 5회를 마쳤고, 2012년부터 시작한 워크숍을 통해 30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어내어 관객들에게 선보였습니다. 그 중 5명의 수강생은 퀴어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주는 5명의 감독이 생겼다는 것만 해도 큰 성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동안 게이봉박두의 가장 큰 변화라면 수강생들의 태도입니다. 게이봉박두 1기 때부터 상영회 무대에 올라가 관객과의 대화를 하긴 했지만, 그 때는 관객분들에게 사진촬영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촬영을 하더라도 얼굴을 가리게 했죠. 5기 때 처음으로 수강생들에게 온라인에 공개될 인터뷰 영상을 제안했는데, 매우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사전 인터뷰 영상을 선보였습니다. 영화관에서의 사진 촬영과 공개도 자유로웠고요. 이런 변화는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그렇게 성소수자가 영화를 만들고 선보이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된 셈입니다.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표현하다니 신선하다”. 처음 게이봉박두를 선보였을 때 들었던 평가들은 강의를 준비하던 우리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당시에만 해도 국내에서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히고 영화를 선보이는 감독은 손에 꼽을 시기였으니까요. 거기에 더해 이야기의 결이 지금껏 봐왔던 퀴어영화와 다르게 감독의 욕망을 온전히 담아낸 결과물이라 더욱 신선해 보였을 겁니다. 이제 그 다음의 퀴어영화의 단계는 어디이고 무엇일까 고민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