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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5월 27일 09시 50분 KST

“정수기 물 먹지 마라” 해고 뒤에야 주민 갑질 벗어난 경비노동자

입주민 감시가 시작되면서부터 일터가 지옥이 됐다

한겨레
해당 아파트 구글 로드뷰 화면

“여름에 찬물 마시러 관리사무소에 가면 ‘정수기 사용하지 말라’고 민원을 넣어요. 관리사무소장은 불러서 그거 하나 못 지키냐고 말하고….”

11년 가까이 경비원으로 일한 김한성(가명·71)씨는 말을 맺지 못했다. 그는 최근 입주민 갑질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서울 강북구 우이동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59)씨의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지만, 동시에 이해가 갔다”고 했다. 김씨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25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한 주민이 계속 찾아와 ‘게시판에 붙인 종이는 왜 비뚤게 붙였느냐’, ‘난로는 왜 켜두고 있느냐’ 등의 얘기를 하며 집요하게 괴롭혔다. (경비원 일을) 그만두고 나서도 아내가 그 입주민으로 보일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부터 경기 광명시 철산동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 일을 시작했다.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고 제지업체 등을 거쳤으나 정년퇴직을 한 뒤 광명시청을 통해 얻은 일자리였다. 3.3㎡(1평)짜리 경비실에 딸린 화장실에는 온수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업무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일터가 지옥이 된 건 5년 전 동대표인 한 주민이 김씨를 감시하기 시작하면서였다. 다른 동에 거주 중인 입주민은 밤이나 이른 아침 시간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경비실에 불빛을 비추며 김씨가 쉬고 있지 않은지 들여다봤다. 여름에는 선풍기, 겨울에는 난로의 전원을 끄고 돌아다니는지 확인한 뒤 “아저씨가 전기비 내는 것도 아니면서 왜 낭비하느냐”며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넣었다. “자질구레한 걸 트집 잡아서 ‘우리 동대표도 아닌데 여기 와서 왜 이러시냐’고 하면 바로 민원을 넣더라고요.”

김씨는 결국 해고를 당한 뒤에야 갑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협력업체가 바뀌면서 지난해 12월31일 경비원 32명 가운데 김씨를 포함한 8명이 문자메시지로 갑자기 해고됐다. 곧바로 노동청에 신고했지만 “당할 수밖에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씨는 오래 우울감에 시달렸다. 입에 대지 않던 술을 시작하면서 간이 약해져 입원하기도 했다. 수입이 없어진 김씨는 시청에 경비원 등 또 다른 일자리를 신청한 상태다. “더 심한 갑질이 있을 수도 있지만 먹고살아야 하잖아요. 다만 (최씨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알겠더라고요. 경비원도 같은 인간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앞서 25일 서울지방경찰청은 당분간 아파트 등 대형 건물에서 벌어지는 ‘갑질’ 행위에 대해 실태조사에 나서는 동시에 특별신고 기간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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