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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01일 13시 48분 KST

'투기꾼들만 사는 건 아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강남 아파트 가격'의 역사

강남은 진짜로 나랏돈을 들여 집중해 개발한 곳이다.

[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시간의 극장

제14화 강남아파트|글 김태권

Kim Hong-Ji / reuters
자료사진. 2015년 4월 구룡마을에서 바라본 도곡동 고층아파트 단지들

아파트값이 무섭게 오르자 <한겨레>에 이런 기사가 났다.

“정부의 태도를 지켜보면 아직도 핵심에 파고들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말하기 쑥스러워서인지는 몰라도 정책의 실패를 인정한 대목은 없다.”

2020년의 글일까? 아니다. 1988년 8월의 기사였다. 이런 문장도 있다.

“10년 전인 78년에도 똑같은 소리가 나왔었다.”

정부가 정책을 펴도 집값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옛날부터 많았다. 가진 사람의 반대도 옛날부터였다. “토지공개념에 입각, ‘균전론’을 편 성호 이익 선생은 ‘찬성하는 자가 100명이고 반대하는 자가 1명이라 하더라도, 1명의 힘이 100명의 입을 막기에 족하니 어찌 시행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생각나는 지역이 있다. 서울의 강남이다. 궁금하다. 강남 아파트는 어째서 비쌀까? 강남 아파트값이 비싸다는 사실은 또 어째서 문제가 될까? 자기가 자기 집 비싸게 팔겠다는데 신경 안 쓰면 그만, 그런데도 우리는 강남 아파트를 입길에 올리니 말이다. <한겨레> 아카이브에서 강남 아파트를 살펴봤다.

The Washington Post via Getty Images
자료사진. 도곡 렉슬아파트 단지.

강남과 아파트와 <한겨레>, 1980년대부터 이야기해보자. 왠지 한겨레신문은 아파트 개발을 싫어했을 것 같다고 지레짐작하실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1988년 한겨레 창간호의 1면 광고가 무엇일까? 우성건설의 부평단지 아파트 분양광고였다.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안기부를 비롯해 모든 부처와 기관이 총궐기하듯 <한겨레>에 광고를 못 하게 노골적으로 탄압을 하던 때”였다고 2020년에 당시 광고를 집행한 우성건설 상무 조계현은 회상했다. “이른바 ‘빨갱이 신문’에 광고를 하는 업체엔 불이익을 주겠다”며 정부가 나서서 협박을 했다나. 조계현은 “고심 끝에 사장도 회장도 몰래 혼자 결단을” 내렸다. <한겨레> 창간호에 광고를 싣기로 한 뒤 “회장에게 사직서를 내고 두달간 도피 생활을” 했다. 회사도 조계현도 “안기부 등에 4번이나 사직서 낸 사실을 확인시키며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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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창간호 1면에는 우성아파트 부평타운의 광고가 실렸다. “가치가 다르고, 만족도 다릅니다.” 군사정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겨레>에 지면광고를 게재한 조계현은 1988년에 우성건설의 상무였다. 2020년에 김경애 기자가 찍었다. <한겨레> 창간호에는 부평 동아아파트와 주안 신동아아파트의 광고도 났다.

 

잊을 만하면 물난리 나던 동네

일간지 창간호 1면에 아파트 분양광고가 실린 점 역시 눈길을 끈다. 1980년대는 아파트가 ‘사랑받기’ 시작한 시절이다. 전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1960년대 말까지 아파트에 대한 저항은 완강했다. 정부는 아파트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마당이 없다거나 공동생활의 불편함이 크다는 것 등이 아파트를 꺼리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은 아파트를 사랑하게 되었다. “한국의 아파트 가구율은 세계 최고다. 70년대부터 지속돼온 아파트값 폭등 속도도 세계 최고일 것이다.” 2005년 <한겨레21>에 실린 강준만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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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살고 싶다는 사람은 조선시대에도 많았다. 그런데도 강남이 개발되지 않은 까닭은 비 좀 온다 싶으면 물에 잠기는 침수지역이었기 때문이다. 1973년에 소양강댐이 완공된 다음에야 본격적인 개발이 가능했다. 지면에 실리지 않은 소양강댐의 사진을 이번에 찾아 공개한다. 2012년에 김명진 기자가 찍었다.

1980년대에 강남도 떴다. 전 시대에는 “한적한 농촌이었다.” 부자동네가 아닌 건 물론이고 심지어 사람이 모여 살던 동네가 아니었다. “강남 개발은 1980년대 지하철 2, 3호선의 개통과 더불어 완성됐다.” 2012년 <한겨레21>에 실린 박스 기사의 제목은 ‘강남의 탄생’이다.

급히 띄운 지역이라 강남에는 아직 해결 안 된 문제도 많다. 예를 들어 비가 많이 오면 강남 이곳저곳은 물에 잠긴다. 1990년에는 대치동의 아파트 상가가 물에 잠겨 상인들이 항의시위를 했고, 1998년에는 지하철 선릉역이 침수되었다. 여전히 강남역은 잊을 만하면 물난리가 난다. 오늘날 화려한 모습만 보면 상상이 안 되지만 말이다. 강남이 그토록 급하게 개발되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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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지역의 침수와 산사태 소식을 들으면 사람들은 놀란다. 그런데 강남은 원래 물에 잠기는 동네였다. 너무 빨리 발전했기 때문에 깜빡 잊은 것이다. 강남역의 상습침수에 대해 서울환경연합 회원들이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했다. 물안경이 눈에 띈다. 김태형 기자가 2013년에 찍은 사진을 이번에 공개한다.

짧은 기간 동안 강남 아파트값이 무섭게 올랐다. 왜일까. 사람들이 꼽는 첫번째 이유는 자녀교육이다. 한때 강남은 공교육이 좋은 동네라고 소문이 났다. “개발 수요가 강남으로 집중되도록” 정부는 “인구 집중을 유발하는 명문 고등학교와 법원 등의 강남 이전을 추진했다. 1976년 경기고를 필두로 시작된 학교 이전의 효과는 확실했다.” 2012년 <한겨레21>의 분석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집 가까운 고등학교에 배정받았다. 그런데 어떤 고등학교는 다른 고등학교보다 유명대학에 합격생을 많이 냈다. 게다가 그런 고등학교들을 정부는 이른바 “8학군”, 서울 강남 지역에 몰아넣었다. 서둘러 개발은 하는데 사람이 더디 모이니, 강남에 이사 가는 사람에게 일종의 특권을 준 셈이다. 곧 사람이 모이고 집값이 올랐다. 주소만 강남에 옮기는 ‘위장전입’의 편법도 쓰였다.

 

‘입시명문’ 학원들이 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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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의 한밤중에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이종근 기자가 찍은 사진이다. 숨이 콱 막히는 것 같다. 2005년 7월의 한겨레 기사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밤 10시,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온 최아무개양은 ‘이러나저러나 학생들만 죽어난다’고 말하고는, 막 내리기 시작한 장맛비 속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1988년 7월의 <한겨레> 칼럼은 이렇게 꼬집었다. “소위 일류학교에 입학할 기회를, 현 제도는 8학군에 입주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에게 부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제도를 대학에 적용할 경우를 가정해 보자. 서울대학이 있는 봉천동과 신림동의 주민은 부동산 값의 엄청난 상승과 함께 여러가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로 학군제 대신 직업을 배정하는 취업군제라는 것을 생각해보자. 이 제도에 의하면 여의도에 살아야 증권사에 취직할 수 있다. 이런 제도는 모두가 터무니없다고 일소에 부칠 것이다. 그런데 이들과 고교 학군제도가 기본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인가?” 이 칼럼의 제목은 ‘귀족학군과 사회병폐’였다. 강남은 이때 이미 귀족들이 사는 동네로 불린 셈이다. “교육과 부동산 관련 정책에서 이 본질적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아마도 이해당사자 사이에 묵시적 합의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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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와 90년대의 고등학생들은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이런 모습이 사라진 이유는 학생들이 입시지옥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학생들이 밤늦게 학원을 다녀야 하기 때문이었다. 서울 강남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모습이 1999년 에 실렸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1990년대 후반을 지나며 옛날 ‘명문 고등학교’의 자리를 특목고와 자립고가 가로챘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 역시 옛날 강남의 성공을 본뜬 정책이었다. “아파트값이 오르내릴 때마다 당국이 나서 곳곳에 특목고나 자립고를 세우겠다고 난리다. 서울시는 뉴타운을 개발하면서 특목고나 자립고를 세우겠다고 나서고, 실제로 서울시 교육청은 국제고 설립을 공포했다. 중앙정부는 한술 더 뜬다.” 2005년 7월에 실린 ‘특목고로 장난치는 나라’라는 제목의 칼럼이다.

이제 강남의 일반고는 더 이상 ‘입시명문’ 고등학교가 아니다. 그런데도 강남의 아파트값은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사람들은 여전히 자녀교육을 이유로 그 비싼 강남 아파트에 입주한다. 어떻게 된 영문일까? ‘입시명문’ 학원들이 강남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강남구에서도 특히 고소득 가구가 많은 곳은 대치동으로, 조사 가구의 40.7%가 501만원 이상이었다. 다음으로 압구정동(28.8%)에 고소득 가구가 많았다. 최근 강남지역 집값 서열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2002년 <한겨레21>의 기사다. ‘대치동 학원가’로 유명한 대치동이 ‘강남 8학군’을 상징하던 압구정동을 그때 이미 제쳤다.

이상한 이야기다. 한때 공교육이 좋은 동네라더니, 이제 사교육으로 유명하다고? 물론 옛날에도 사교육을 많이 하던 지역이었지만 말이다.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투기수요일까 실수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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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현대아파트의 어느 집을 손질하고 개축하는 모습이다. 1999년에 이진홍 기자가 찍었으나 지면에 실리지 않은 사진이다. 아파트 재건축으로 한몫 잡으려는 생각은 가난한 동네도 부자 동네도 마찬가지다. 크게 증축하고 싶다는 강남 주민을 얌체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여파가 어떠할지는 걱정이 된다.

설마 집값을 유지하기 위해 강남 사람이 모두 짜고 거짓말을 하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공교육도 사교육도 강남이 독식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강남을 이해하는 최고의 열쇳말은 ‘독식’이다.

강남 아파트가 비싼 또 하나의 이유는 자산가치다. 2003년 기사를 보면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신한은행은 최근 고객 3114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강남 아파트 가격 상승 이유로 ‘추가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43.7%로 가장 많았고 이어 교육여건이 41.5%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것은 투기수요일까, 실수요일까? 모르겠다. 투기와 투자와 실수요를 구별하는 일은 아주아주 어렵다.

“투자상품인가, 삶의 터전인가?”라는 제목의 임원혁의 칼럼은 2005년에 이미 이 점을 지적했다. “주택은 다른 재화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 보자면 실제 거주 목적의 수요와 가격상승을 기대하는 투자 및 투기 수요가 혼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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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개발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 이명박이다. 소양강댐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도 이명박이 일하던 현대건설이 지었다. 1977년에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이 일어났다. 이명박 일가가 이때 사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아파트 서너 채를 가로챘다는 의혹이 있다. 1990년대 말의 젊은 모습이다.

그런데도 높은 사람들은 늘 자신만만하다. 적어도 말은 자신있게 한다. “부동산을 투기 목적으로 산 건지 주거 목적으로 산 건지 분간하는 게 디지털 시대에 그리 어렵지 않다.” 누가 한 말일까? 대통령 후보이던 이명박의 발언이다.

2007년 9월에 실린 칼럼에서 김윤상은 이렇게 꼬집었다. “분간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했는데, 자신과 친인척의 부동산 거래가 많은 이 후보는 말해보라. 그게 투기 목적인지 실수요 목적인지. 제3자가 투기 목적이라고 하면 이 후보나 친인척은 펄쩍 뛸 것이다. 또 설령 판단이 쉽다고 해도 실수요 부동산에서는 불로소득이 생겨도 좋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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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은마아파트는 2002년에 재건축 승인이 났다. 시공사로 선정된 건설회사들이 현 수막을 걸었다. 그때 김종수 기자가 찍은 사진을 이번에 처음 공개한다. 그런데 2020년에도 은마아파트는 재건축을 시작하지 못했다. 초고층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아 서울시와 마찰을 빚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남, 송파, 서초구 순의 통행량

“투기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1989년의 기사다. 2006년 기사는 요즘 이야기 같다. “강남 집값 상승의 원인이 실수요인지 투기 수요인지 아직까지 확실하게 가려지지 않고 있다. 집값 상승 원인에 대한 명확한 규명 없이 규제가 우선이냐 공급이 우선이냐는 논란만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때와 달라진 면도 있다. 투기와 실수요를 구별할 놀라운 방법이 나왔을까? 그 반대다. 부동산 투자가 대중화되며 투기와 투자의 구별이 더욱 희미해졌다. “대중은 이제 ‘투기’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부동산 투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했다.” 2018년 <한겨레21>의 기사다. 제목은 “3040 흙수저가 부동산 투기세력이 된 까닭”. 물론 계층이동을 꿈꾸는 젊은 ‘흙수저’를 투기꾼으로 매도하는 내용이 아니다. 누구는 투기꾼이고 누구는 실소유자라고 구별하기 어려운 세상이라는 의미다. 강남 아파트라고 다를까. 아무려나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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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총리로 지명된 장대환. 인사청문회에서 자녀를 강남 학교에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시킨 문제가 불거졌다. “맹자 어머니가 교육 때문에 집을 세번 옮긴 일처럼 봐달라”며 사과했으나 끝내 총리가 되지 못했다. 탁기형 기자의 사진. 이후로도 위장전입은 청문회의 단골메뉴였다. 여야 인사 가릴 것 없이 자주 쓰던 편법이었나 보다.

강남 아파트값이 높은 세번째 이유는 교통이 편해서다. 이 점을 첫째 이유로 꼽는 사람도 있다. “강남 지역을 가장 번화한 곳으로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 양질의 일자리, 좋은 학군 등 몇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근본적인 요인은 교통 인프라의 강남 집중에 있다.” 2019년 8월 <한겨레>에 실린 성낙문의 칼럼이다. “서울시에서 통행량이 가장 많은 곳은 강남구, 송파구, 서초구 차례이고, 저녁 약속이 가장 많은 20개 행정동 중 11개동이 이들 3개구에 속해 있다.”

얼마 전까지도 강남 아파트는 내게 이해 못할 대상이었다. 개발되기 전 강남의 모습을 기억하는 원주민으로서, 나는 강남 아파트를 그저 못생긴 건물로 여겼을 뿐이다.

“서울의 압구정동 아파트 단지를 본 어느 독일인 교수는 ‘여기가 서울의 슬럼가냐’고 물어 한국인 안내자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프랑스의 한 도시계획가는 서울 반포의 약도를 보고선 ‘한강변의 군사기지 규모는 정말 대단하군’이라고 말했다나.” 2005년 12월 <한겨레21>에 실린 강준만의 칼럼에 공감한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생각이 변했다. 네덜란드에서 주택 정책을 공부하고 온 최경호 선생을 모시고 서울 아파트의 역사에 대해 ‘과외’도 받았다. 강남 아파트가 비싼 진짜 이유가 투기꾼이나 작전세력 때문이라고만 하긴 어렵겠다. 강남에서 살면 진짜로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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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지역에선 아파트 평수에 따라 어린아이의 친구들이 구분된다는 건 상식이다. 심지어 한국 최고급 아파트인 타워팰리스에도 아픔이 있다. 평수에 따른 차별 때문이라고 한다.” 에 실린 2005년 강준만의 글이다. 김종수 기자가 2002년에 찍은 타워팰리스의 위압적인 모습을 처음으로 공개한다.

 

수백조원 투입해 교통 인프라 집중

그런데도 강남의 아파트에 왜 우리는 관심을 가지나? 살기 편한 동네가 집값도 비싸다는데, 나는 무엇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걸까? 바로 그 ‘살기 편한’ 점이 문제다.

사람의 발길이 드물던 강남을 살기 편한 동네로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 전체가 비용을 지불했다. 위화감이니 우월의식이니 상대적 박탈감이니 하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강남을 개발하는 일에 진짜로 나랏돈이 들어갔다. “정부는 지난 수십년간 수백조원을 투입해 강남 지역에 교통 인프라를 집중시켰다.” 방금 인용한 2019년의 칼럼이다.

다른 곳에 돌아갈 기회가 강남에 대신 간 경우도 있다. 교육 인프라를 처음부터 지역마다 고르게 배분했다면 강남의 집값도 지금과 달랐을 터이다. 1988년의 칼럼에서 지적한 것처럼 “목동 주민들이 질 높은 교육 기회를 탈취당한 손해가 이 지역 아파트값이 오르지 않아 입은 잠재적 재산 손실에 비해” 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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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의 한보그룹은 1979년에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짓고 큰돈을 번다(역술인의 조언에 따랐다는 소문이 있다). 훗날 수서비리사건을 일으킨 것도 이때의 성공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정태수의 사무실도 은마아파트 단지 안에 있었다. 재기를 꿈꾸며 2004년에 기자회견을 한 장소도 그곳이다. 황석주 기자가 찍었다.

강남 지역은 수십년 동안 큰돈을 투자받았다. 그 돈과 기회는 다른 지역이 양보해준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 역시 강남에 보상을 요구할 투자자의 권리가 있지 않을까. 사회 전체가 강남의 아파트와 그 재개발 소식에 관심을 가질 이유로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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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불안과 입주민의 갑질에 시달리던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이만수 경비원은 2014년 가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강재훈 기자가 찍은 사진이다. 이때 다른 지역은 강남을 비난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나? 이제는 다른 지역도 경비원을 해고하고 갑질로 괴롭힌다. 강남의 안 좋은 면은 다들 빨리도 배운다.

▶ 해설자인 김태권 작가는 만화가입니다. 글도 쓰고 일러스트도 그립니다. 요즘은 주로 관악산 자락에서 두 아이를 떠메고 다니며 시간을 보냅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와 <히틀러의 성공시대> 등의 만화책을 그렸고, <불편한 미술관>과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등을 썼습니다.

▶ 기획 | 팩트스토리는 전문직·실화 소재 웹소설·웹툰 및 르포논픽션 기획사입니다. 저널리즘 바깥으로 확장하는 실화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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