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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 메이커

ⓒhuffpost

게임을 잘 하지 않는다. 그래도 푹 빠져서 했던 게임 한둘은 있다.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롤플레잉게임(RPG) ‘바람의 나라’를 열심히 했었다. 도사 캐릭터를 만렙까지 키웠다. 목검으로 다람쥐를 때린다. 그러면 도토리가 나온다. 더 큰 동물을 사냥하려면 동료가 필수였다. 학습했다. 첫째, 때리면 보상이 나온다. 둘째, 동료가 있어야 더 큰 걸 잡을 수 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하면 되는지,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알려주었다.

‘게임 회사를 때리면 메갈을 뱉어낸다.’

게임 커뮤니티는 몇년 새 이런 룰을 공유한 모양이다. 여성주의 관련 이슈가 생기면 ‘메갈 리스트’를 만든다. 리스트를 서로 공유하고 회사에 항의 민원을 넣는다. 회사는 이런 의견을 ‘경청’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 ‘즉각’ 조처에 나선다. 게임계 페미니스트 사상검증과 노동권 침해가 이렇게 반복된다.

ⓒlolostock via Getty Images

이번엔 게임 ‘트리 오브 세이비어’의 원화가가 공격을 받았다. 페미니즘 관련 글들을 개인 SNS 계정에서 리트위트하거나 ‘마음(하트)’ 표시를 했다는 이유다. 아이엠시(IMC)게임즈 김학규 대표는 원화가와의 면담 내용을 공개했다. 그는 ‘여성민우회, 페미디아 같은 계정은 왜 팔로했는지’, ‘과격한 메갈 내용이 들어간 글에 마음 표시를 찍은 이유는 무엇’인지 물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정리해 공지했다. 유저들에게 이 원화가는 ‘메갈’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메갈 내용이 들어간 글’이라니. ‘메갈 내용’이란 이 단어조합도 해괴하고, 한국여성민우회 같은 유서 깊은 시민단체를 팔로한 이유를 묻는 것도 해괴하지만 가장 해괴한 건 해명문 안에 있던 다음의 이야기다. ‘메갈’이 종종 다시 본색을 드러낸 전례가 있으니 ‘끝없는 경계와 주의’를 해결책으로 삼겠다는 것. 전사적인 교육도 실시하겠다고 한다. 대체 무슨 교육을 하겠다는 건가? 이런 구호라도 복창하게 하려는 걸까? ‘페미니즘 싫어요. 한국 남자 좋아요. 한남 단어 나빠요. 메갈 나빠요’?
운영자는 게임의 룰을 정한다. 룰은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에 선을 긋는 일이다. 게임에서 유저는 렙업 방법도 배우지만, 게임 안 동료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배운다. 게임 밖 운영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요구해야 얻어낼 수 있는지, 그 과정도 알게 된다. 이제 유저들은 ‘메갈’과 관련해 게임 회사에 항의하면 ‘메갈’을 훈육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게임의 소비자이자, 동료 시민인 그들은 누군가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내쫓는 법을 알게 되었다. 넥슨이 먼저 클로저스 성우 계약 해지를 했고, 그것이 선례가 되었다. 유저들은 이제 이런 일을 쉽게 반복한다.

김학규 대표는 “반사회적인 사상을 추구하는 사람과는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사람들은 “당신이 말하는 반사회적 논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두 가지를 말했다. 첫째, 특정 성별의 우월을 내세우며 혐오를 오락화하는 행위. 둘째, 그런 활동을 금전적으로 후원하며 부추기는 행위. 페미니즘을 비난하려 했던 김학규 대표의 말은 오히려 게임계에 적절한 고민 지점이 될 것 같다. 생각해보면 수많은 게임이 이 ‘반사회적’인 기준에 잘 들어맞지 않나. 혐오를 오락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걸 금전적으로 후원하며 부추기는 유저들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게임계는 얼른 고민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룰 메이커로서 말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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