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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린이 도혜민] 플랩풋볼 체험기: 혼자서도 충분히 풋살을 할 수 있다

낯선 여성들과 120분간 뛰었다.

풋린이 도혜민|퇴근 후에 풋살을 하고 출근해선 풋살을 씁니다. 둘 다 좋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풋살 라이프가 멈추었다. 마지막으로 풋살을 한 날은 7월22일이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한 달 넘게 풋살을 못 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코로나19가 재확산했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는 2단계에서 2.5단계로 격상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공을 차던 소속팀 FC FOREVER는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며 경기 일정을 잡지 않았다. 몇 달 전부터 계획한 대부도 전지 훈련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자료사진. '꺼져라 코로나야'를 수없이 외쳤던 지난 날들.
자료사진. '꺼져라 코로나야'를 수없이 외쳤던 지난 날들. ⓒKhosrork via Getty Images

풋린이 도혜민 멈춤 기간’은 공식적으로 9월14일 0시까지였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하향한 시점이다. 인고의 시간은 지겨울 만큼 길었지만, 팀 운동을 바로 재개할 순 없었다. 코로나 위험이 여전한 탓에 팀 전원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아, 나는 정말이지 풋살이 그리웠다. 풋살이 단체 운동이라는 점이 이렇게  야속한 때도 없었다. 

‘혼자서 풋살을 할 순 없는가?’ 놀랍게도 방법이 있었다. ‘플랩풋볼’이라는 소셜 축구 플랫폼이다. 플랩풋볼의 모토는 이랬다. ‘내가 하고 싶을 때‘, ‘내가 하고 싶은 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사람들과’ 경기를 한다!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곧바로 플랩풋볼 사이트에 접속해 집 근처에서 열리는 여성 매치 일반 레벨 경기를 신청했다.

플랩 경기가 열리는 야외 구장. 여성 매치가 끝난 오후 10시에는 남자 선수들의 경기가 곧바로 진행됐다. 다들 정말 이날만 기다린 모양이다.
플랩 경기가 열리는 야외 구장. 여성 매치가 끝난 오후 10시에는 남자 선수들의 경기가 곧바로 진행됐다. 다들 정말 이날만 기다린 모양이다. ⓒHUFFPOST KOREA/HYEMIN DO

???? 원하는 날짜, 시간, 구장 선택 가능

9월14일 월요일, 디데이가 밝았다. 재택근무를 마치자마자 설레는 마음을 안고 풋살장으로 향했다. 서울 은평구 롯데몰 옥상에 위치한 야외 구장이었다. 초행길이라 헤매다 보니 경기 10분 전에야 도착했다. 매니저가 출석 체크를 하고 있었다. 일면식 없는 이들이 모이다보니 관리자는 필수였다.  

 

???? ‘실력‘보다는 ‘친분’에 따른 팀 구성

모두 16명이 모였다. 8명이 한 팀이었고, 나는 초록팀 6번 조끼를 받았다. 상대팀은 노란 조끼였다. 매니저는 그동안 플랩에 참여한 레벨을 참고해 팀을 구성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아는 사람끼리 같은 팀이 되었다. 다만, 경기력 차이가 심하면 중간에 조정한다고 했다.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는 팀 조끼.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는 팀 조끼. ⓒHUFFPOST KOREA/HYEMIN DO

상대팀은 평소에 같이 운동하는 팀원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사실상 ‘원팀‘이었다. 우리 팀은 대부분 모르는 사이였다. 다행히 ‘프로 플래버’인 에푸씨 뽀레버 친구가 있어 함께 초록 조끼를 입었다. 참고로, 여자 풋살을 하다보면 같은 팀이 아니어도 자주 마주치는 얼굴들이 있다. 뛸 수 있는 구장, 경기 등이 한정적이다보니 그렇다.

 

???? 3배 규모 구장에서 15분간 쉼 없이 질주

오후 8시7분, 경기가 시작되었다. 7분이 지체된 건 지각자들이 있어서였다. 경기는 15분 단위로 하되, 멤버를 교체하면서 총 2시간을 뛴다. 

처음에는 마냥 신나기만 했다. 55일 만에 뛰어다니는 풋살장 아닌가. 다리에 힘이 팍 풀리는 느낌을 받은 건 5분 만이었다. 고작 5분 뛰고 지치다니. 너무 오래 쉰 탓일까? 알고 보니 플랩 운동장은 20mX40m이었다. 국제 풋살 규정에 맞는 구장으로, 내가 자주 뛰던 구장보다 3배는 넓었다. 그런 곳을 쉼 없이 뛴다고 생각해보라. 안 지치는 게 이상하다. 15분 내내 마스크까지 쓰고 뛰니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초록 조끼 vs. 노란 조끼, 120분 동안 쉼 없이 달렸던 풋살러들. 2020.9.14
초록 조끼 vs. 노란 조끼, 120분 동안 쉼 없이 달렸던 풋살러들. 2020.9.14 ⓒHUFFPOST KOREA/HYEMIN DO

힘들다고 해서 걸어다닐 수도, 쉴 수도 없었다. 친목을 다진 팀원끼리 하는 경기였다면 잠깐씩 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에푸씨 뽀레버’ 경기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하는 ‘플랩풋볼’ 경기였다. 막중한 책임감으로 쉼 없이 나 자신을 몰아부쳐야 했고, 체력의 한계를 절감했다. 추울까봐 입은 긴 팔 상의는 이내 거추장스러워졌다. 한 타임 뛰고 축축하게 젖은 상의를 벗어버렸다. 

처음 15분 뛰고 나서 혼이 쏙 빠진 상태. 마스크를 잠깐 내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후~~~
처음 15분 뛰고 나서 혼이 쏙 빠진 상태. 마스크를 잠깐 내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후~~~ ⓒHUFFPOST KOREA/HYEMIN DO

???? 못 해도 괜찮아: 눈 찡끗, 박수, 그리고 ”나이스!”

날아온 공을 그대로 골 라인 밖으로 보내버리는 실수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아쉬운 마음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컸다. ”죄송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팀 사람들은 박수를 쳐주며 미안해하지 말라는 무언의 응원을 보냈다. 어떤 이는 찡끗 눈짓을 해주기도 했다. 응원을 받았다고 해서 내가 거짓말처럼 잘해버리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나는 끝까지 쭈욱 정신 없이 달리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풋살장에는 응원이 끊이지 않았다. ”나이스!”, ”파이팅!” 어느 누구도 시킨 건 아니었지만,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한 뜻으로 ”나이스!”를 외치고 있었다. 나이스한 플레이는 덩달아 따라왔다.

 

???? 팀 워크 < 개인 능력: 초보자는 웁니다

풋살은 원래 팀 워크가 중요하다. 드리블 → 패스 → 패스 →  슛. 팀원간 짧은 패스 플레이가 인상적인 종목이다. 낯선 이들과 하는 풋살은 달랐다. 팀 워크보다는 개인 능력이 중요했다.

내가 그다지 잘하지 못하는 선수라는 건 안다. 그래도 나는 공을 받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최선을 다했다. 안타까운 건 공이 나한테 잘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초보자의 자격지심일지 모르지만 내 느낌은 그랬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 팀 골키퍼가 지켜보다 답답했는지, 갑자기 반대편 골대로 골을 차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실력자였기에 화려한 그의 돌파를 넋 놓고 보기만 했다. 그대로 슛, 골-인! 매니저가 그의 이름을 호명하기까지 했으니 아무래로 프~로 플래버였나 보다.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준 데다 득점도 했지만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는 골대를 자주 벗어났고, 개인 플레이에 집중했다. 

???? 뛰어난 선수들과 호흡하며 ‘눈치력’ 상승

뛰어난 개인기를 보여준 그분은 감독 본능도 발휘했다. 우왕좌왕하는 나에게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슛! 슛!’을 외쳤다. 조언이 아닌 답답함의 표출이었을지 모르지만 감을 못잡던 나는 큰 도움을 받았다. 

함께 뛴 16명 중 5명은 축구선수 출신이었고, 비선출(선수 출신 아닌) 실력자들도 많았다. 그들의 화려한 플레이를 보며 ‘아, 저럴 때는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눈치가 생겼다. 눈치력이 상승한 덕분일까? 골문 앞에서 서성대다 골키퍼가 실수로 놓친 공을 골문 안으로 때려넣었을 땐 나도 모르게 괴성을 지르고 말았다. 

 

???? 스코어는 없고, 즐거움만 있다

분명 초록 조끼팀의 ‘대패’였지만, 정확한 스코어는 고지되지 않았다.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16명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풋살로 하나된 여성들은 이팀 저팀 가리지 않고 하하호호 즐거웠다.  

대학교 때까지 축구 선수로 뛰었다는 최아영씨(25)는 여성 풋살팀 ‘알콜도수’ 멤버다. 일주일에 3번씩 팀 운동을 하지만, 플랩에만 한 달에 20만원 넘게 쏟아붓는다. ″여자끼리 풋살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워요. 일주일에 적게는 3번, 많게는 4번까지 나와요. 팀 운동도 비슷하게 하고요.”

황금같은 연차를 내고 온 진은진씨(29)는 플랩을 ”낯선 이들과의 놀이”라고 정의했다. 은진씨는 최근 ‘에이스’라는 여성 풋살팀에 들어갔다. 익숙한 팀원들 사이에서는 잘 느낄 수 없는 짜릿함을 플랩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대팀분이 주신 소중한 코코 리치 포도맛. 정말로 꿀맛이었지만, 광고 아님.
상대팀분이 주신 소중한 코코 리치 포도맛. 정말로 꿀맛이었지만, 광고 아님. ⓒHUFFPOST KOREA/HYEMIN DO

???? 남성 경기보다 턱없이 부족한 여성 경기

팀 운동만으로 부족하거나, 개인 운동이 필요한 ‘여자 사람’이 플랩풋볼로 몰리지만, 여성 매치는 턱없이 부족하다. 남성 매치가 전국 구장에서 수시로 열리는 것과는 상반된 현실이다. 여성 매치는 요일별로 특정 구장에서만 진행된다.  

사실 이번 경기를 앞두고 목표를 하나 정했다. 다치지 않기. 선수 출신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이리 발리고 저리 발리며 광광 울었지만, 나는 넘어지지 않았고 다치지도 않았다. 4일이 지난 지금까지 온몸이 뻐근할지언정 소기의 목표를 달성해선지 마음만은 개운하다. 

나는 또다시 플랩을 신청했다. 이번에는 다른 목표를 세웠다. 패스받은 공을 놓치거나 수비수에게 뺏기지 않고 드리블하기. 또는 우리 팀에게 패스하기. 목표 달성을 위해 체력 훈련도 다시 시작했다.

풋살을 막 시작했거나, 익숙해진 팀 운동을 대체할 새로움이 필요하다면 플랩풋볼을 추천한다. 단, 마스크와 매너는 필수다. ”마스크 쓰세요” ”코까지 올려주세요”  경기 내내 들었던 말이다. 넓은 풋살장을 뛰다보니 마스크가 흘러내리기도 했고, 마스크를 잠깐 내리고 숨을 몰아쉬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모두들 마스크를 꼭꼭 쓰려고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다 함께 플랩에서 뛰는 날을 고대하며 오늘은 여기까지!

*플랩풋볼은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일 경우 발열 체크, 손 소독, 경기 중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운영한다. 단, 서울, 경기, 대전, 광주, 부산 등 9개 지역 71개 구장 가운데 일부 구장은 운영을 중단했다.

도혜민 에디터: hyemin.d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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