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2020년 11월 18일 17시 38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11월 19일 14시 15분 KST

여자축구의 세계, 1년차 풋린이가 묻고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작가이자 6년차 선수인 김혼비가 답하다

아마추어 세계에는 프로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따뜻함이 있다.

풋린이 도혜민|퇴근 후엔 풋살을 하고 출근해선 풋살을 씁니다. 둘 다 좋습니다.

″노 골(no goal)!” 이번에도 못 넣다니. 벌써 1년 가까이 풋살을 하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못하는 걸까? 언제쯤 풋살장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걸까? 그게 가능하긴 할까? 아아아 속상하다 정말...-2020년 11월9일(월) 풋린이의 일기
도혜민
풋린이 도혜민. 골을 넣지 못해 슬퍼도 인증샷을 찍을 때는 웃어야 한다. 마스크에 가려 안 보이지만.

언제부터인가 풋살을 하고 나면 즐겁기보다 자괴감에 몸서리치는 일이 많았다. 1년 정도 하고 나면 풋살을 꽤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엉엉엉. 나보다 공을 오래 찬 사람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울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이리저리 상처 난 풋살공을 눈물로 닦을 때쯤 축구 선배를 만났다. 김혼비다. 올해로 축구 6년차인 김혼비는 운동 좀 한다는 여성들이 필독서로 꼽는 책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쓴 작가다. 그에게 묻고 싶었다. 저도 6년 동안 공을 차면 실력이 조금은 늘까요, 작가님?

김혼비
이제는 볼 수 없는 장발의 김혼비 작가. 김혼비 작가는 축구를 시작하고 나서 머리를 짧게 잘랐다. 오로지 축구 때문이다.

김혼비 작가는 선출(축구선수 출신)과 비선출이 섞인 아마추어 축구팀에서 수비수로 뛴다. 포지션은 풀백. 골키퍼 바로 앞에서 상대를 막는다. 풋린이 도혜민은 비선출뿐인 풋살팀에서 뛴다. 포지션은 날마다 바뀌는데, 주로 최전방에서 한 골을 노린다. 풋살은 미니 축구로 이해하면 된다.

 

⚽ 아마추어 축구선수로 살기

김혼비 작가 또한 여느 풋린이들과 마찬가지로 축구를 막 시작했을 때는 6년 정도 하면 대단한 실력을 가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6년이 흐른 지금은? 공을 무서워하지 않게 된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애계계, 겨우??? 작아 보이지만, 사실은 큰 변화다.

″축구 실력은…….글쎄요. 대신 마음에 자신이 생겼어요. 이제는 실수를 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아요. 쿨하게 다음을 기약합니다. 예전 김혼비는 공이 와도 무서운 마음에 슬쩍 피해버릴 때가 많았거든요. 공을 제대로 처리할 확률이 도무지 높아지지 않는 이유였죠. 경우의 수 자체를 안 만들었으니까요.”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 김혼비는 주2회 팀 운동을 했고, 틈틈이 개인 훈련을 했다. K-리그 골수팬이자 조기축구 회원이자 혼비를 축구의 세계로 인도한 남편 역할이 컸다. (남편도 축구 책을 쓴 작가다.) 두 사람은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콘을 세워두고 훈련했다. 혼비는 주구장창 드리블 연습만 했다. 축구는 풋살보다 넓은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기 때문에 개인이 공을 소유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다. 혼자 공을 처리할 일이 많다 보니 드리블은 빼놓을 수 없는 기본 기술이다.

드리블을 하다 보면 속도가 붙어 공이 멀리 도망가버리는 일이 잦다. 그래서 혼비는 드리블할 때 힘을 빼는 연습을 특히 많이 했다. 하다 보니 드리블하면서 여유를 찾았고,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까지 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제는 혼비의 수비에 상대방이 우왕좌왕하는 일도 많다.

김혼비
김혼비 작가의 축구화. 바닥이 평평한 풋살화와는 생김새부 다르다.

⚽ 여자축구팀 ‘풀백’으로 살기

김혼비는 6년째 같은 팀에서 뛴다. 포지션도 6년 전 그대로다. 

″서로 6년을 봤으니 말로 설명하기엔 어려운 끈끈한 무언가가 있어요. 그냥 축구 같이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동료라는 느낌이 커요. ‘축구 친구’라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참 든든하죠.”

자기 자신을 초개인주의자로 정의하는 김혼비는 팀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다른 건 안 하고 그냥 축구만 했다. 올해 마흔, 축구 6년차인 혼비는 나이로나 경력으로나 팀에서 막내급이다. 십수년씩 축구를 한 큰언니들의 의견을 그대로 따르는 편이다. 하지만 할 일은 빠지지 않고 한다. 예를 들면 팀 유니폼을 만들 때 단톡방에서 투표가 진행되면 얼른 하는 식이다.

- 6년째 팀이 유지되는 게 신기해요. 요즘에는 여자축구팀이 잘 만들어지긴 하지만 금방 없어져버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 제가 축구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팀 선택지가 별로 없었어요. 현재 팀이 아니면 뛸 팀이 없을 정도로요. 그래서 버티다보니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팀이 엉망인데 죽어라 버틴 것은 아니에요. 선출 언니들이 팀을 잘 이끌어줬고, 동네분들이 모여 만든 팀이라 유대감이 다른 팀보다는 좀 더 있었던 것 같아요.

- 6년 동안 같은 팀인데, 선수로서 아쉬운 점은 없나요?

= 실력이 빠르게 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은 있어요. 늘 같은 사람들이랑 경기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할지가 눈에 보이거든요. 그렇게 매번 비슷하게 뛰니까 실력이 느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똑같은 문제로 시험을 반복해서 치는 것과 같죠. 이건 다른 팀과 친선 경기를 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되는 부분이에요.

도혜민
풋린이 도혜민의 소속팀 에뿌씨 뽀레버의 발들.

⚽ 여자축구 세계에서 살아남기

여자축구를 주제로 에세이까지 쓴 김혼비는 어쩌다보니 축구 전도사 위치에 올랐다. 북 토크에서 ‘축구 시작했다’는 독자를 꽤 만났고, 그런 현실 친구도 4명이나 된다. 그러나 그들이 현재까지 축구를 하고 있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실제로 혼비팀을 거쳐간 수많은 신입들은 1년도 되지 않아 팀을 나갔다. 약속이나 한 듯 ”시간이 없다”던 그들은 아마 축구라는 운동 자체에 적응하기 힘들었거나, 팀이 그들과 맞지 않았을 테다.

- 저 같은 초짜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너무 궁금해요. 경력 있는 분들이랑 경기할 때면 괜히 민폐 끼칠까봐 걱정이거든요.

= 민폐라뇨? 절대 아니에요. 초보분들이 의욕적으로 앞으로 나가는 경우가 꽤 있는데, 앞에서 뭔가 하려고 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다는 건 팀에 큰 보탬이 된다고 생각해요. 상대팀으로 만나도 그런 분들은 왠지 기특(?)하고요.

- 아, 정말 다행이에요! 저는 정말 평생 공을 차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 에이, 그냥 하면 되죠, 지금도 하고 있잖아요! 다치지만 않으면 돼요. 우리 오래오래 공 차야 하잖아요. 다행히 아마추어의 세계는 따뜻한 구석이 있어요. 서로 매섭게 몰아붙이다가도 상대가 다칠까 봐 한 걸음 물러난 경험, 에디터님도 있으시죠? 프로라면 실력 없는 선수로 낙인찍히겠지만, 우리는 서로 다치지 않기를 더 바라잖아요.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할머니가 되어서도 축구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김혼비는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실력이 아니라 즐거움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축구가 삶을 재미있게 해주는 게 좋지, 축구 때문에 삶이 불편해지면 안 되잖아요. 뜨거운 열정으로 축구에 올인하는 분들이 오히려 금방 지치시더라고요. 저도, 다른 분들도 재미있게 즐기면서 축구를 했으면 좋겠어요.”

도혜민 에디터: hyemin.do@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