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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 04일 15시 31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6월 04일 15시 35분 KST

"섹스만 하는 친구 사이"가 완벽한 거짓말인 이유

애인이거나, 친구이거나, 섹스 파트너일 수는 있지만

RedlineVector via Getty Images

‘프렌즈 위드 베네핏’(friends with benefit), 즉 사귀지는 않되 성관계를 갖는 사이만 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내가 데이팅 앱에서 ”나는 지금 연애를 원하는 건 아니고 섹스 파트너만 원한다”는 프로필을 얼마나 많이 봤던가.

하지만 사람들이 이 ‘즐기기만 하는 친구’라는 말이 개소리라는 걸, 최소한 요즘 시대에 연애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건 개소리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섹스만 하는 친구 사이’는 거짓말이다. 그 아래엔 더 많은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 혹은 실패한 의사소통, 절반의 진실. 이 교활한 문구를 분석하려고만 해도 두통이 생기는 것 같다.

나는 원나잇이나 일주일 정도의 짧은 기간만 만나는 관계에 반대하지 않는다. 출장왔을 때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섹스하는 ‘파트타임 연인’ 관계도 반대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우리 모두가 언제든 가능할 때면 만족스럽고 즐거운 섹스를 할 수 있길 바란다. 자아실현을 하는 두 성인 파트너(혹은 더 많은 사람들)이 합의하고 열린 눈, 마음, 정신으로 섹스에 임할 때는 감정이 아예 또는 거의 없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섹스만 하는 친구 사이’는 그 범위에 들지 않는다. 섹스하면서 친구이기를 바란다는 건, 섹스에 어느 정도의 친밀함이 있기를 원하지만 전면적인 관계는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강하고 안전한 우정, 그리고 인간 관계는 중요하다. 우리가 단골 가게들을 다시 찾고, 좀 별로였지만 그럭저럭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옛직장 상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도 인간 관계라는 게 쌓여있기 때문이다.

‘섹스만 하는 사이’, 즉 몸을 섞고 싶지만 인간 관계는 맺지 않고 싶다는 말은 상대가 당신이 실제로 인간 관계를 맺고 사는 수백 명의 사람들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불을 같이 덮고 누워있을 때, 혹은 당신 자동차의 뒷자리에서 엉켜 있을 때 섹스 파트너와 맺는 관계는 평소 다니는 헬스장 트레이너와 맺는 것보다 의미가 덜할까, 아니면 더할까?

‘섹스만 하는 친구 사이’를 원하는 사람들이 이 부분의 위험성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들은 관계에 있어 자신이 언제나 모든 규칙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섹스를 언제, 어디서, 얼마나 자주 할지, 특히 섹스 상대가 그에 대해 어떻게 느껴야 할지까지 자기가 정한대로 흘러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섹스만 하는 친구 사이‘를 원한다는 말은 자신이 편하지 않은 어떤 것에도 일체의 감정적 에너지를 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한 욕구를 쏟기도, 감정적 접근을 하기도 절대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쩌다 속깊은 이야기를 하게 됐다 해도 이건 ‘진짜 연애’가 아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야 한다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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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 이런 관계를 두 번 경험했다. 두 번 다 외국인이었고(*필자는 미국인이다) 다른 도시에 살았다. 나는 독점적인 연인 관계를 선호하지만, 그 둘은 서로 그런 필요를 느낀 사이들이 아니었다.

유럽 출신의 한 남성은 나와 만난지 얼마 안되어 자신은 섹스하는 친구 사이가 되기만 원한다고 말했다. 또한 내가 자신의 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해줬다. 우리는 같이 술을 마시러 갔다가 어색하게 스킨십을 했고(안 할 때도 있었다), 그는 나와 이야기하지 않으려 하는, 자기 삶의 영역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남성은 오후에 내 집에 와서 진토닉을 몇 잔 마시고 노닥거리다가 낮잠자기를 즐겼다. 그리곤 예의없이 떠나버렸다. 친구들끼리는 그러지 않는다. 친구라면 일주일 동안 야한 문자를 주고받다가 비행기를 타고 찾아온 다음, 아무 설명도 없이 앞으로 나흘 동안은 만나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계획을 세웠다가 바꿨다가 취소하기를 밥먹듯 했다. 당시 나는 출장이 잦았는데, 그와의 일정을 짰다가 막판에 취소를 당한 적도 몇 번 있었다.

나는 몇 번 그의 행동을 지적하며 우리 관계에서 ‘친구’가 좀 더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가깝고 친밀하며 애정이 있는, 나에게 중요한 것이 그에게 중요한 것 만큼의 의미가 있어야 하는 관계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언제나 자신에게는 나를 위한 감정적 공간이 없으며 그런 여유는 앞으로도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좋았기 때문에 몇 년 동안 이런 형편없는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자신이 내 친구가 아님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보여주었지만 나는 그와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와 나는 브루클린의 후진 술집에서 서로 소리를 지르며 끝이 났다. 나는 역겨운 화장실에서 울었고, 혼자 리프트(*우버와 같은 차량공유 서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며 내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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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사람은 진짜 섹스만 하는 친구 사이였다. 우리는 매우 인상적인 첫 데이트 후 즉시 가까워졌고, 섹스를 했고, 그가 다음 번에 내가 사는 도시에 왔을 때도 같이 잤다. 그리고 그는 내게 왓츠앱으로 메시지를 보내 내가 정말 좋지만 그냥 ‘친구’로 지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알겠다, 다음에 여기 오면 다정하게 술이나 마시자고 답했다. 그는 다음번에 오기 전에 나와 같이 잘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내게 무얼 원하는지, 친구라는 게 내게 어떤 의미인지 등은 물어보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같이 잤다. 나는 쓰레기고 그는 섹시했다.)

어쩌면 진정한, 건강한, 신성한, 숭고한 관계도 존재할 수 있다. 옛 룸메이트와 동네 술집에서 과음을 하고 같이 집에 갈 수도 있다. 그리고 한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느 날 소프트볼 연습을 마친 뒤 차에서 스킨십을 하고 난 뒤에야 이 투수가 정말 매력적이라는 걸 깨달을 수도 있다. 이 사람들은 당신의 친구고, 당신은 그들에게 당신의 야한 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예로 든 두 사람은 나에게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들은 내 친구가 아니었다. 같은 데이팅 앱을 쓰고 함께 술을 마셨다고 해서, 산책을 오래 했다고 해서, 첫 만남에 심리상담 치료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친구인 건 아니다. 만나자마자 성욕이 동해서 같이 집에 갔다고 친구는 아니다. 만날 때마다 같이 잔다고 친구는 아니다. 연인이나 섹스 파트너일 수는 있지만 말이다.

서로 공유하는 경험과 감정이 있어야 친구다. 친구 사이는 성장하고 변화한다. 당신의 못된 상사가 늘 바르는 매니큐어를 당신이 싫어한다는 걸 내가 알 때, 내가 귀기울여주고 함께 울어줄 것을 아는 당신이 새벽 3시에 전화를 걸어 예전에 죽은 고양이 이야기를 하며 울 때 우리는 친구다.

하지만 ‘섹스만 하는 친구 사이’를 구한다고 말하는 당신이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당신이 인간관계의 지평을 넓히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섹스와 우정, 인간 관계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아는 감정적인 성숙함이 없는 이들을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허프포스트 미국판의 독자 기고 글 Why ‘Friends With Benefits’ Is The Biggest Lie In Modern Dating을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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