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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걸 사랑하는 이들의 ‘리얼 먹방’ 전성시대가 열렸다

  • 이진우
  • 입력 2018.04.26 17:10
  • 수정 2018.04.26 17:11
ⓒMBC

새벽 1시, 잠들기 전 TV를 끌 때 김준현이 곱창을 먹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TV를 켜니 김민경이 불고기 잡채를 먹고 있다. 채널을 돌리다 보면 어딘가에선 김준현, 유민상, 김민경, 문세윤이 반드시 먹고 있다.

농담이 아니다. 26일(목)을 기준으로 이 네 명의 코미디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은 12개의 케이블 채널에서 다양한 회차의 재방송이 24번이나 편성되어 있다. 케이블 TV에서 이들이 먹는 모습을 보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본방송 시청률은 1%를 넘지 못하지만, 여러 타사 채널에 재방송용 콘텐츠로 팔리며 콘텐츠 판매 수익에 크게 기여하고 있어 ‘효자 방송’으로 불린다.

이 방송의 주된 컨셉은 ‘대식’이다. 하루 두끼, 같은 날 점심과 저녁에 식당을 방문해 먹을 수 있는 한 먹는다. 4인분짜리 만두 전골을 1인당 하나꼴로 싹쓸이하고, 갈비탕을 시켜놓고 메인 메뉴가 나오기 전에 김치와 함께 공깃밥 하나를 애피타이저로 먹으며 명성을 얻었다.

한쪽에서는 ‘폭식’이라며 걱정의 소리를 하지만, 시청자들의 대부분은 호의적이다. 대중이 호의적이지 않다면 이 프로그램이 지금처럼 여기저기에 재생될 이유가 없다. 이 방송을 즐겨보는 박아무개(30) 씨는 “‘어떻게 저렇게 계속 먹지?’하는 신기함도 들고, 나만 음식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죄책감도 덜어진다”며 “이들이 먹는 걸 보면서 느끼는 대리 만족도 있다”고 밝혔다.

ⓒcomedy TV

<맛있는 녀석들>은 2015년부터 4년 동안 166회에 달하는 회차를 기록 중이다. 코미디 TV 나름의 장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성공 요인이 ‘대식’ 만은 아니다. 이 방송을 제작하는 이영식 피디는 <맛있는 녀석들>의 성공 요인으로 ‘리얼’과 ‘먹는 걸 좋아하는 이들의 진심’을 꼽았다. 이 피디는 “우리 출연진들은 진짜로 먹는다. 제작진은 그냥 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는 게 전부라 모든 게 리얼이다”라며 “점심 저녁을 다른 날 찍어 합친 적도 없다. 먹는 걸 좋아하는 이들의 진심이 시청자들에게 전해진 것 같다”고 밝혔다.

최근에 새롭게 주목받는 대식가 이영자의 컨셉도 진정 맛을 사랑하는 자가 펼치는 ‘리얼 대식’이다. 불과 두 달 전인 3월 10일 첫 방송을 시작한 문화방송(MBC)의 새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의 시청률을 8.7%(닐슨코리아 기준)까지 끌어올린 건 코너 속의 코너 ‘영자 미식회’다.

자신만의 맛집 리스트를 만들고, 맛이 조금이라도 변하면 사장에게 알려주는 등 사후 관리까지 철저하게 한다는 미식가 이영자의 대식 어드벤처에 시청자들이 푹 빠졌다. 4회 방송까지 5%대이던 시청률이 7.3%로 훌쩍 뛴 5회 방송 시점이 결정적 대식의 포인트로 꼽힌다.

이 회에서 매니저와 함께 2시간짜리 강연을 위해 대전으로 내려가던 이영자는 지나치는 거의 모든 휴게소에 들러 간판 상품을 맛본다. 맥반석 오징어, 호두과자, 소떡소떡을 먹고 ‘휴게소 계의 세종대왕’이라는 금강휴게소에서 우동과 도리뱅뱅을 해치운다. 이어진 일정에서 이영자는 대전의 유명 빵집에서 7만원 어치의 빵을 사 들고 기쁨의 미소를 지은 뒤 매니저에게 “이제 제대로 된 밥을 사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먹고 “이제 제대로 된 밥을 사겠다”니…. ‘첫 곡기’를 들기 위해 찾은 두부 두루치기 집에서 국수를 한 젓가락 입에 넣으며 “이제 한 끼 제대로 먹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장면이 웃음 포인트. 매니저는 이 말을 듣고 땀을 흘리며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는 반응을 보였다. 음식에 관해 설명을 할 때마다 이영자의 눈가에 흐르는 숨길 수 없는 기쁨과 이 먹방의 고행적 동참자인 매니저 송성호 씨가 이 방송을 ‘진짜’로 만드는 증거와 증인이다. 이 방송을 즐겨보는 시청자 강아무개(36) 씨는 “이영자가 먹는 걸 보면 정말 음식을 사랑한다는 게 느껴진다”며 “그녀가 먹으며 느끼는 즐거움이 나에게도 전해져 기분이 좋다”고 밝혔다.

ⓒMBC

최근 대식가들의 인기 행보는 유튜브 등의 하위 채널에서 유행하던 폭식 방송이나 과거 ‘식신로드’ 부류의 음식점 소개 프로그램과는 또 다른 흐름이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선영 씨는 “과거 유튜브 등에서 먹방이 범람하면서 원초적 즐거움을 위한 푸드 포르노라는 비판이 있었다”며 “그러나 언급한 프로그램들은 많이 먹는 게 목적이 아니다. 많이 먹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맛있게 먹는 게 목적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폭식 프로그램과는 달리 미식의 영역에 겹쳐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또 “지난 3~4년 동안 방송에는 ‘식신로드’ 부류의 각종 쿡방과 먹방이 범람했는데, 걸그룹 아이돌들을 출연시켜 놓고는 먹는 것만큼은 복스럽게 먹어야 한다며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식의 연출이 꼭 등장했다”며 “이런 연출에 질린 대중들이 대식가들의 솔직한 모습에 반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리얼 대식가’들의 등장은 미식의 흐름과도 관련이 있다. 김 씨는 이어 “일본에서는 버블 경제가 붕괴한 직후 대중적인 음식을 많이 먹으러 다니는 먹방이 대세로 등장했는데, 이는 호황기에 융성했던 지나친 미식주의에 대한 반발로도 해석할 수 있다”며 “마찬가지로 지난 3~4년 동안 스타 셰프들이 등장하고 미식 프로그램 등을 통해 식도락의 중요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세대로부터 과도한 미식주의에 대한 반발심이 생겼다. 수년 전 백종원 씨의 대중 음식이 인기를 얻은 것, 이번에 이영자 씨나 <맛있는 녀석들>의 대식가들이 인기를 얻게 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일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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