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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의사] 케어팜 대신 '치유농장'

글 읽는 속도를 높여주는 한글 의사 시리즈 10편

  • 황혜원
  • 입력 2020.09.28 11:35
  • 수정 2020.09.29 10:06

<허프포스트>가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의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한글 의사’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한글 의사는 영어로 써진 어려운 용어 등을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이로서 ‘글 읽는 속도를 높여주겠다’라는 포부를 가진 인물입니다. 어려운 용어 때문에 정보에 소외되는 국민 없이 모두가 함께 소통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꽃이 좋은지 모르겠다. 어머니인 이 여사의 영향이 가장 크다. 크는 내내 베란다는 말 그대로 정글이었다. 5살 때부터 키워온 ‘군자란’은 너무 커져 버린 나머지 화분을 몇 번이나 깨뜨렸으며 여전히 대대손손 잘 자라고 있다. 6살에 찍은 사진 속 아이비는 내 평생 기른 머리보다 더 길게 자랐으며, 옛날 아이비 품종 그대로 자그맣고 빛바랜 잎을 헝클어트리며 30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과 오랜 시간 함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여사의 관심과 사랑이 있다.

한 여성이 꽃다발을 들고 있다.
한 여성이 꽃다발을 들고 있다. ⓒTom Merton via Getty Images

화분을 보면서 ”쟤네들이 얼마나 예민한데, 볕 좋은 자리는 돌아가면서 앉혀줘야 해”라며 애정을 쏟는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식물인데도 신기하게 잘 자란다. 그들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채는 건 수시로 들여다보는 엄마뿐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탓인지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버려졌던 앙상한 식물들도 우리 집에만 오면 꽃망울을 틔워댄다.

다만 이렇게 자란 탓인지 배우기 싫은 엄마의 버릇 하나를 습득해버렸다. 소름 끼치게도 그들에게 말을 붙인다는 거다. 잎이 버스럭거리면 ”목말랐어?”하고 묻고는 ”네가 ‘아우 목말라‘라고 지금 당장한 마디만 하면 베란다가 아니라 시스템에어컨이 작동하는 유리 온실에서 살 수 있다”고 협박도 해보고, 물을 흠뻑 마신 후 쪼그라든 잎이 쫙 펴진 모습을 온몸으로 따라 해보기도 한다. ‘캬!’ 

따뜻한 늦여름 아침, 집에서 엄마와 아기 딸이 정원에서 신선한 딸기를 따는 모습.
따뜻한 늦여름 아침, 집에서 엄마와 아기 딸이 정원에서 신선한 딸기를 따는 모습. ⓒRyanJLane via Getty Images

먼지로 착각할 만큼 자그마한 씨앗이 열심히 흙을 밀고 올라오는 모습이 기특하고, 어느새 으쓱대며 친구들과 키 크기 내기를 하는 걸 흐뭇하게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작은 생명이 있는 힘껏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위로를 받는다. 생명을 키운다는 건 책임감과 부담의 영역이라고 늘 강조되지만, 반대로 함께 에너지를 주고받는 일이기도 하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힘에 기대어 케어팜(Care farm), 우리 말로 ‘치유 농장‘을 오래전부터 운영해왔다. ‘치유 농장’이란, 농장이나 텃밭을 가꾸고 동물을 돌보면서 심리적, 사회적, 신체적 건강을 회복하거나 증진하도록 하는 것, 또는 그런 시설을 가리킨다. 1990년대 후반,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이 ‘치유 농장’은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농장에서 일하며 농가 경제와 보건복지 분야에 도움이 되는 사례를 거쳐 확장되었다.

먹이를 주는 여성 옆으로 알파카들이 몰려들었다.
먹이를 주는 여성 옆으로 알파카들이 몰려들었다. ⓒIgor Emmerich via Getty Images

당시 네덜란드는 1999년 본격적으로 국가지원센터를 만들어 ‘치유 농장’을 발전시킬 체계를 만든다. 그 결과 1998년 75개였던 농장은 2019년 기준 1,400개를 넘어섰다. 특히 치매 노인들이 요양원 침대에 갇혀 여생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치유 농장’ 겸 용양원에서 농사를 짓고 스스로 요리도 하면서 신체적, 정신적 자유를 얻는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냈다. 사실 1800년대 후반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에서는 기도원, 교회, 요양원, 병원 등의 부속 정원을 중심으로 ‘치유 농장’ 형태의 사회적 농업이 운영된 바 있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안규미 연구원이 쓴 ‘독일의 사회적 농업’에 따르면 참여자들이 정원을 가꾸면서 다양한 노동조건이나 날씨 등에 의연해질 수 있으며, 식물들이 성장해가고 아름다워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자아의식, 분별력, 세심함, 자신감이 향상된 것으로 보고됐다고 한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나 슬럼프에 빠진 이들,  약물중독자에게도 추천한다.

한 여자와 10대 소년이 지역 농장의 지역 정원에서 일을 돕고 있는 모습.
한 여자와 10대 소년이 지역 농장의 지역 정원에서 일을 돕고 있는 모습. ⓒSolStock via Getty Images
누군가 작은 화분을 들고 있다.
누군가 작은 화분을 들고 있다. ⓒGrapeImages via Getty Images

농장의 동물을 기르는 것 또한 정서적, 심리적 발달과 효용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자존감과 독립심, 신뢰, 관용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공감 능력과 책임감, 배려, 존경 같은 가치를 배울 수 있어서 어린이들에게 효용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며 우리나라 곳곳에서도 ‘치유 농장’을 만드는 중이다. 충청북도 진천군의 경우 지난 2월부터 읍면 7곳에 26개의 치유 농장을 조성했다.  동네 복지사라 하여 마을 사정을 잘 아는 부녀회장이나 전직 이장, 공무원 등을 각 농장에 한 명씩 배치하는 방식으로 농장 조성을 자율적으로 꾸려가도록 했다. 부천시도 경증치매 어르신과 함께 텃밭을 꾸려 이미 쌈 채소, 감자, 오이 등 수확의 기쁨도 누렸다. 텃밭과 꽃밭이 심신 치유에 좋고 어르신들의 반응이 좋은 터라 지자체별로 다양한 사업이 전개될 예정이다. 다만, 좋은 정책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케어팜이라는 외래어보다 ‘치유 농장’이라 써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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