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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맨' 작은 한 걸음을 위하여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란 자막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

  • 민용준
  • 입력 2018.10.24 15:39
  • 수정 2018.10.24 15:45
ⓒhuffpost

‘퍼스트맨’은 다시 살아가기 위해 가장 멀리 날아간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는 테스트 파일럿이었다. 20만 피트가 넘는 고도에서 추락하는 비행기 기체를 다시 띄워야 했다. 중력을 이겨내야 했다. 가까스로 기체를 돌려 비행기를 띄웠고 기체의 떨림도 잦아졌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비행기가 점점 떠올랐다. 중력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기체의 고도가 제어되지 않았다. 중력을 되찾아야 했다. 아니면 대기권 밖으로 날아가버릴 판이었다. 남자의 사정과 무관하게 고요한 하늘에서 중력과 무중력 사이를 오가는 남자는 생사의 기로를 날고 있었다. 그가 믿을 것은 교신으로 전달되는 목소리를 들으며 묵묵하게 조종간을 잡고 있는 자기 자신뿐이었다. 가까스로 기체를 선회해 중력 지대로 복귀한 남자는 겨우 하늘에서 날아와 지상에 착륙했다. 생의 중력을 찾았다. 그의 이름은 닐 암스트롱, 인류 최초로 달을 밟은 남자다. ‘퍼스트맨’은 바로 닐 암스트롱에 관한 영화다. 

‘퍼스트맨‘은 ‘라라랜드‘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데이미언 셔젤의 차기작이다. 사실 데이미언 셔젤은 ‘라라랜드‘가 개봉하기 전인 2015년에 이미 ‘퍼스트맨’ 감독으로 결정돼 있었다. ‘퍼스트맨‘은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던 닐 암스트롱의 전기 ‘퍼스트맨‘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원작자인 제임스 R. 핸슨 또한 제작에 관여한다고 했다. ‘퍼스트맨‘은 데이미언 셔젤이 처음으로 자신이 쓰지 않은 각본으로 연출한 작품이기도 하다. 각본가로는 ‘스포트라이트‘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조시 싱어가 내정돼 있었고 닐 암스트롱을 맡을 배우도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라라랜드’로 데이미언 셔젤 감독과 함께한 바 있는 라이언 고슬링은 각본이 완성되기 전에 이미 닐 암스트롱 역을 맡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2017년쯤 영화를 제작할 것이란 전망이 가시화됐는데, 라이언 고슬링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전망대로 2017년에 촬영이 시작됐다. 

‘퍼스트맨‘은 닐 암스트롱이 테스트 파일럿이었던 1961년부터, 나사(미국항공우주국)의 우주 비행사가 돼서 끝내 달에 착륙하게 된 1968년까지의 서사를 다룬 작품이다. 분명 닐 암스트롱이라는 실존 인물이 세계 최초로 달에 착륙해 두 발을 딛기까지의 여정을 다루고 있음에도 영화는 단 한 번도 이것이 실화를 바탕에 둔 이야기라고 주지하지 않는다. 이런 유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란 식의 자막이 등장하지 않는다. 엔딩 시퀀스 이후에도 닐 암스트롱에 관련된 실제 사진 같은 것을 나열하며 이것이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고 강조하지 않는다. 시작부터 끝까지 실화라는 것을 명시하는 일말의 조각도 없다. 어차피 누구나 아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퍼스트맨’이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의 유명한 실화를 만인이 아는 것처럼 재현하기 위해 마련된 세계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퍼스트맨‘을 최초로 공개한 올해 베니스 영화제 기자회견에서 라이언 고슬링은 이와 같이 말했 다. “나는 닐 암스트롱이 자신을 미국의 영웅으로 여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가족과 지인들을 인터뷰한 결과 그 반대였다. 우리는 이 영화가 그를 반영하길 원했다.” 라이언 고슬링의 말은 ‘퍼스트맨‘의 지향점을 확실하게 대변한 것이었다. ‘퍼스트맨’은 닐 암스트롱에 관한 영화이고, 인류 최초로 달을 밟은 남자에 관한 이야기지만 닐 암스트롱을 영웅으로 만들 생각도,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역사를 대단한 업적으로 추앙할 의도도 없어 보인다. 최초의 달 착륙이라는 역사를 닐 암스트롱의 목에 걸린 금메달처럼 전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공과 승리로 포장된 신화를 벗겨내고 끊임없이 실패와 상실에 시달렸던 한 인간이 견뎌내고 나아간 고통과 분투를 추출하고 주시하는 데 힘을 기울인 작품처럼 보인다.

“닐 암스트롱은 건전한 미국의 영웅으로서 달에 갔고, 아무런 문제없이 잘 돌아왔다. 그게 우리가 아는 닐 암스트롱에 대한 전부였다. 나는 그 문제없음이 신화화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 뒤에 그것이 사실과 너무 멀게 느껴 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데이미언 셔젤은 처음부터 ‘퍼스트맨’을 닐 암스트롱의 영웅담으로 그려낼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 신화에 매몰된 개인의 서사가 궁금했고, 그것이야말로 관객들을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로 밀어 올릴 동력이라 여긴 것 같다. “당시 나사의 역사를 신화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있는 거 같다. 그런 분위기에서 여전히 달에 남아 있는 듯한 닐 암스트롱을 지구로 다시 데려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처럼 보였다.” 데이미언 셔젤은 달에 착륙하는 닐 암스트롱보다 지구에 있었던 닐 암스트롱에 대 한 관심이 더 컸다. 그리고 지금껏 세상이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남자의 가장 낯선 모습을 보여줄 참이었다.

출발선에서부터 영화의 목표는 명확해진다. 사력을 다해 테스트 비행을 마친 닐 암스트롱은 집 으로 돌아온다. 가족을 만난다. 어린 딸을 마주한다. 죽음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 집으로 돌아온 닐 암스트롱이 마주한 어린 딸은 사실 죽음의 중력에 끌려 가는 중이다. 두 살배기 딸 캐런은 뇌종양과 씨름하고 있었다. 그리고 1962년 1월 두 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영화는 닐 암스트롱이 딸의 죽음을 목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살아생전의 딸을 돌아보던 닐 암스트롱의 온화한 표정과 딸의 장례를 치르는 닐 암스트롱의 침통한 표정을 직접적으로 연결한다. 실제로 닐 암스트롱은 딸이 죽는 순간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 그는 업무차 출장 중이었다고 한다. 그가 보지 못한 것을 관객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딸의 죽음 전후로 달라진 그의 표정으로부터 감정의 온도 차가 생생하게 전이된다. 

하지만 영화는 딸의 죽음을 비통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연출하지 않는다. 굳은 표정으로 상실 감을 견디는 남자의 얼굴과 새로운 인생으로 눈을 돌리는 남자의 도전을 지켜볼 뿐이다. 마치 감정의 밀실을 바라보듯이 닐 암스트롱의 슬픔을 추측할 뿐 그가 감당하는 슬픔의 무게와 그가 바라보는 슬픔의 깊이와 그가 느끼는 슬픔의 온도를 체감하지 못한다. 그는 감정이 새어 나갈 수 없는 중력을 가진 남자처럼 보인다. 그리고 딸의 죽음 이후로 우주비행사가 되길 결심한다. 딸의 죽음이 닐 암스트롱을 달로 밀어 올린 첫 번째 추진체였다고 짐작하게끔 만든다. ‘퍼스트맨‘은 닐 암스트롱의 그런 면에 대해 호기심을 느낀 결과물처럼 보인다. ‘어떻게 달에 가는 모습을 그릴 것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왜 그는 달에 가려고 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마련하기 위해 제작한 영화 같다. 

딸의 죽음 이후로 우주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된 닐 암스트롱은 끊임없이 죽음과 조우한다. 달 탐사 이전에 우주상에서 모선과 유인선의 도킹을 시도하기 위한 프로젝트에서 기체의 결함으로 무중력 상태로 빠르게 회전하는 모선을 제어하지 못해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가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또 몇 년간 함께 훈련받고 우주로 나아가는 꿈을 공유했던 동료들이 예상치 못한 화재 사고로 우주 비행선 안에서 전소돼 사망하는 사건과 맞닥뜨리기도 하며, 달 착륙선의 비행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한 시험 비행 중에 바닥에 추락하는 위기에서 가까스로 탈출하기도 한다. 지구의 중력에서 벗어나 달의 중력으로 착지하기 이전에 끊임없이 죽음의 중력과 대면한다. 

“닐 암스트롱과 그의 가족은 나사의 프로젝트를 위해 노력을 거듭하면서도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었다. 실제로 달 위를 걸어가는 순간까지도 말이다.” 데이미언 셔젤은 ‘퍼스트맨‘을 통해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가기까지 겪은 숱한 고난사를 객석을 향해 중계한다. 닐 암스트롱에게 지구란 끊임없이 죽음을 환기시키는 중력이었다. 그는 달에 가야만 했다. 그곳에 닿아야만 죽음의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으므로. 그에게 달은 오히려 생의 중력이었다. 설사 달에 다다르지 못한다 해도, 다시 지구로 돌아와 생을 이어갈 수 없다 해도 그는 달에 가야만 했다. 달은 닐 암스트롱의 내면에 침전한 고통과 상실을 떨쳐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결말은 닐 암스트롱이 ‘왜 달에 가야 했는가?’라는 질문을 위해 마련한 최선의 답변 같다. 묵묵하게 거대한 통증을 안고 있던 인물이 비로소 그 통증을 내보이며 돌아올 수 없는 시절과 이별을 다짐하는 순간, 최초로 달에 다다라야 했던 어느 한 사람의 삶에 대한 연민으로 묵직하게 내려앉는 중력이 형성된다. 거대한 연민의 달이 뜬다. 

‘퍼스트맨‘은 위대한 역사 속에 파묻혀 있던 한 인간의 서사를 길어 올리는 작품이다. 이는 결국 우리가 손쉽게 언급하는 거대한 결과 속에서 끝없이 소모되는 어떤 과정을 되새기게 만든다. 거대한 목표를 위해 끝없이 대체되고 소모되는 존재들에 대한 비애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표를 향해 부단하게 전진해나가는 이들에 대한 애수가 전해진다. 그리고 ‘퍼스트맨‘은 우주로 나아가고, 달에 다다르고자 했던 우주비행사들의 고난사를 보다 생생한 감각으로 전달하고자 최선의 방식을 고려한 작품이기도 하다. 비행 장면을 비롯해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장면 대부분을 극 중 인물의 시선을 중계하듯이 촬영했고, 덕분에 관객은 우주에서 겪는 모든 역경을 그 현장에 있는 우주비행사의 관점으로 이해하게 된다. 극 중 인물들이 체감하는 우주에 대한 감각을 굉장히 사실적인 방식으로 객석에 전이한다. 무엇보다도 나사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퍼스트맨’은 모든 면에서 시대에 어울리는 현실감으로 무장한 우주 영화로 완성됐다. 

무엇보다도 64mm 초고화질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엔딩 신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로소 모두가 기다리던 달 착륙 신에서 와이드한 스크린이 상하로 확장되며 아이맥스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순간 등장하는 달의 표면은 마치 관객을 달로 인도하겠다는 의지처럼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닐 암스트롱이 달의 표면으로 나아가는 순간 일말의 소음조차 없는 진공 상태의 우주를 청각적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동시에 광활한 아이맥스 스크린을 가득 메운 달의 압도적인 풍광을 함께 제시하는데 이는 상영관의 관객들이 달 한복판에 서있다는 공감각적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경이롭고 황홀한 체험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적막한 장관 속에서 닐 암스트롱이 비로소 묵묵히 자신의 통증을 대면하고 끝내 이별을 시행할 때 영화가 누르고 있었던 감정이 떠오른다. 죽음의 중력에서 날아올라 생의 중력으로 착지하고 싶었던 묵묵한 집념이 느껴진다. 

‘퍼스트맨‘은 진실의 중력과 상상의 무중력 사이에서 탁월한 결말로 비행하는 영화다. 중력과 무중력 사이에서 왈츠를 추듯 우아하게 회전하는 우주선처럼 생과 사의 경계에서 꿈을 향해 추진하는 이들의 역경은 숭고하면서도 비장하다. ‘퍼스트맨‘은 죽음의 중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한 점이었던 달의 표면으로 착지해 생의 중력을 되찾은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실제로 닐 암스트롱은 자신이 달에 무엇을 가져갔는지 밝힌 바가 없다고 했다. 영화는 닐 암스트롱과 달 사이에 존재했을지도 모를 비밀을 상상하고 이를 통해 길어 올린 감동을 관객에게 안긴다. 비록 그것이 진짜는 아닐지라도 지나간 시대에 이룬 거짓말 같은 진실, 즉 달로 날아오른 인간의 역사에 거짓말을 더함으로써 비현실의 감동을 띄워 올린다. 그 감동 너머에서 떠오르는 건 결국 생의 중력이다.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멀리 떠나야만 했던 남자는 그렇게 다시 삶과 조우한다. ‘퍼스트맨’은 결국 인류의 도약보다도 한 인간의 작은 한 걸음을 위한 영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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