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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적' 게시물 삭제에 혐오 발언까지, 서울대학생들로 이뤄진 안티 페미니즘 모임 활동이 논란이다

남초 커뮤니티 중심으로 퍼지는 백래시가 대학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 이인혜
  • 입력 2021.05.29 11:22
  • 수정 2021.05.29 11:23
서울대 재학·졸업생 중심으로 조직된 안티 페미니즘 모임 ‘Anti-F Union’ 오픈카카오톡방 대화 내용 일부 
서울대 재학·졸업생 중심으로 조직된 안티 페미니즘 모임 ‘Anti-F Union’ 오픈카카오톡방 대화 내용 일부  ⓒ‘Anti-F Union’ 오픈카카오톡방 갈무리

 

지난 24일 한 오픈 카카오톡 방에 “[신고] 익명1, 익명3”라는 지령과 함께 한 인터넷 주소 링크가 올라왔다. 곧바로 약속이라도 한 듯 “신고완” “2” “3” 등의 호응이 이어졌다. 숫자가 “7”까지 이어지고 10여분이 지나자 “익명1 글삭(댓글 삭제)됐네요” “한 마리 축출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등의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서울대 재학·졸업생들이 가입한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게시된 댓글을 조직적으로 신고해 삭제시킨 결과를 공유하는 것이다. 이 오픈 카카오톡 방의 이름은 ‘Anti-F Union(남혐발언신고방)’으로 서울대 학생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만든 것이다.
서울대 일부 학생들이 학교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 가운데 ‘페미니즘적’이라고 판단한 글에 동시다발적으로 신고를 눌러 삭제시키려 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남초 커뮤니티 중심으로 퍼지는 백래시(성평등에 대한 반발성 공격)가 대학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한겨레>는 지난 22~26일 서울대 에브리타임과 이 커뮤니티를 겨냥한 단체 채팅방인 ‘남혐발언신고방’에 들어가 봤다. 이 채팅방은 주소만 있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익명으로 운영되는 방이다. ‘남혐발언신고방’은 이달 중순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 ‘반페미톡방 지원 읍소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온 뒤 존재가 알려졌다. 글쓴이는 게시글에 호응하는 댓글을 단 이들과 스누라이프·에브리타임에 페미니즘에 반감을 표현한 글쓴이들에게 “페미글 신고하는 오픈채팅방 있는데 관심 있으면 들어올래? 누구든지 지원요청 가능해”라는 쪽지를 보내 회원을 모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쪽지를 받고 60여명이 모인 채팅방은 스스로 ‘포격방’이라고 부르고, 방장이 ‘페미니즘적’이라고 판단하는 글에 ‘좌표’를 찍으면, 구성원들이 해당 에브리타임·스누라이프 게시물 또는 댓글에 동시다발적으로 신고를 누르는 방식으로 ‘포격’을 진행했다. 스누라이프와 에브리타임 모두 일정 숫자의 신고가 접수되면 해당 게시물·댓글이 삭제되거나, 계정 정지를 당할 수 있는 것을 노린 것이다.

지난 24일 이들의 포격으로 삭제된 에브리타임 게시물은 ‘지에스(GS)25 손가락 논란’과 관련해 ‘gs 불매 잘 되가나??’라는 게시물에 달린 댓글로, ‘이 이슈에 관심 없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채팅방을 살펴보면, 이런 방식으로 닷새 동안 에브리타임 게시물 4개, 댓글 20개 이상이 ‘포격’으로 삭제된 것으로 추정된다. 포격방에서는 ‘페미니즘’ 글을 신고할 뿐만 아니라, ‘반페미니즘적’이라고 판단되는 글에는 조직적으로 추천을 누르고, 호응 댓글을 달기도 했다.

안티 페미니즘 모임 ‘Anti-F Union(남혐발언신고방)’의 신고로 삭제된 서울대 에브리타임 댓글 갈무리
안티 페미니즘 모임 ‘Anti-F Union(남혐발언신고방)’의 신고로 삭제된 서울대 에브리타임 댓글 갈무리 ⓒ서울대 에브리타임 댓글 갈무리

 

포격방은 여성·‘남페미(남성 페미니스트)’가 들어올 것을 우려해, 여성혐오적 발언이 나오면 바로 메시지를 삭제했다. 여성혐오적 발언을 포함한 사적인 이야기는 별도의 단체채팅방인 ‘인증방’에서만 할 것을 지시했다. 그럼에도 구성원들은 “페미는 절대악” “페미들은 인신공격만 하지 제대로 논박한 적이 있냐” 등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과 혐오 발언을 이어갔다. 방장은 ‘별도의 인증방에는 오프라인·영상통화 면접 등을 통해 검증된 사람만 들어올 수 있다’고 공지했다.

다만 포격방 내부에서도 커뮤니티 여론을 조작하는 방식이 옳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채팅방의 한 구성원이 “저격(포격)의 목적은 설득입니까? 우리가 주장하는 논리의 합당함을 입증하려는 것입니까?”라고 문제를 제기했으나, 방장을 비롯한 구성원들이 “(페미니스트들은) 애초에 논리가 없는 자들이니 설득도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기존 방식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스누라이프와 에브리타임에는 이 포격방을 지목하며 “내용이 뭐가됐던 누군가에게 좌표 찍힐까 봐 몸 사려야 하는 분위기 자체가 싫다”는 글이 올라왔다. 또 “이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조작으로 주된 여론인 것 같이 핫게(인기 게시물)를 보내는가 하면, 남의 글을 신고로 강제로 입을 막아버리려는 일이 어떻게 서울대 커뮤니티에서 일어날 수 있는가. 서로가 괴물이라 생각하며 괴물이 되어버린 그들을 보면 한스러울 따름”이라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이들은 이런 비판이 커지자 27일부터는 링크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포격방’을 폐쇄했다. 인증절차를 거쳐 사람을 받는 폐쇄적인 인증방만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티 페미니즘 모임 ‘Anti-F Union’ 오픈카카오톡방 갈무리
안티 페미니즘 모임 ‘Anti-F Union’ 오픈카카오톡방 갈무리 ⓒ안티 페미니즘 모임 ‘Anti-F Union(남혐발언신고방)’ 오픈카카오톡방 갈무리

한겨레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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