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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화장하던 날, 오라비의 아내가 같이 울어주었다

  • 김비
  • 입력 2018.06.29 14:19
ⓒPeopleImages via Getty Images
ⓒhuffpost

나에게도, 처음 화장을 하던 때가 있다. 남자의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이 내 삶을 옥죄어 더 이상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르고서, 나는 치료를 시작해야겠다고 오라비에게 말했었다. 내 오라비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그럼에도 내 선택을 이해했다. 어릴 때부터 나를 보아왔으니, 그는 보통 남자 아이들과는 달랐던 내 어린 시절을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오라비가 아니라 그의 아내였다. 거친 말투에 내 오라비만큼이나 술을 즐겼던 그녀는, 처음 나에게 화장을 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곰팡내가 가득한 창문도 없는 내 방에서, 그녀는 자신의 화장품을 들고 와 나를 거울 앞에 앉혔다.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해서 나는 그녀의 두 눈 사이만 보고 있었다. 화장을 하느라 내게 가까이 얼굴을 들이민 그녀는 땀을 흘리며 열심히 나에게 화장을 해주었다. 조금 이상한지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내가 실망할까봐 ‘괜찮은데요?’를 연발하며 열심히 내 커다란 얼굴 위에 손을 놀렸다. 마침내 땀 범벅이 된 얼굴을 닦으며 그녀가 내 앞에 거울을 내밀었을 때, 나는 비로소 처음 화장을 한 나를 보았다. 빨간 입술, 퍼렇게 뭉개진 눈가, 분가루가 덕지덕지 묻은 뺨이 똑똑히 보이는데도, 그녀는 거울을 보는 내 뒤에서 계속해서 어색하지 않다고, 자연스럽다고, 처음이라 어색해서 그렇지 남자가 화장한 것 같지는 않다고 과장되게 큰 소리로 말해주었다. 내 얼굴에 실망하는 기색이 보일까봐, 그녀는 당신 얼굴의 화장이 모두 지워져 내 얼굴처럼 엉망이 되어버렸는데도, 연신 괜찮다고 조금만 더 연습하면 되겠다고 말해주었다.

여동생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은 그 때였다. 고등학생이던 동생은 문을 열고 들어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버럭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오빠, 이게 뭐야? 징그러워, 징그럽다고!’ 순식간에 눈물이 쏟아져 나는 화장을 손으로 문지르며 화장실로 뛰어갔다. 텅 빈 변기 위에 앉아 울고 또 울었다. 징그럽구나, 그럴 수 밖에 없구나. 그게 내 삶이고 그게 나의 미래겠구나.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근 채 나는 소리내어 울고 또 울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극복할 수 없는 내 한계가, 나의 미래라는 것이 너무도 억울하고 또 억울해 울고 또 울었다. 문 밖에서 내게 화장을 해주었던 그녀는 괜찮다고, 처음이라서 좀 어색한 것 뿐이라고, 울고있는 나와 함께 같이 울어주었다.

지나고 보면, 지금의 나의 삶을 지켜준 이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그 때 나에게 화장을 해주고 약국에서 호르몬 주사를 사다주었던 것도 내 오라비의 아내였고, 내가 혼자서 성전환수술을 받고 병실에 누워 신음하고 있을 때 나에게 따스한 죽 한 그릇을 보내주셨던 것도 친구의 어머니셨다. 퇴원을 하던 날 나에게 작은 꽃무늬 팬티를 선물했던 것도 방송국의 여성 작가였고, 처음으로 여탕에 나를 끌고 가 내 등짝을 밀어주었던 것도 오래전 나를 버렸던 내 불쌍한 어미였다.

당신들의 기준을 따르자면, 나는 여성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으니 당신들이 말하는 ‘진짜’ 페미니스트일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땅의 여성들에게 큰 빚을 졌다. 그저 모호하고 흐릿한 의미의 빚이 아니라 실제로 내 삶을 일으켰고 나를 지켜주었던 ‘진짜’ 빚 말이다.

적지 않은 분들이 몇몇 트랜스젠더들의 과장된 여성성을 근거로 트랜스젠더 혐오 논리를 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오늘 페미니스트인 지인 분의 글을 읽다가, 그 분이 강연장에서 트랜스젠더 편에 선 것만으로 몹쓸 비난과 욕설을 듣는 글을 보게 되었다. 마음이 너무 아려왔고, 속상했다. 그 동안 그들이 말하는 자격이 정말 나에게 있는 걸까, 스스로 의심할 수 밖에 없어 말을 자제했는데, 아무래도 가만히 있는 것은 곳곳에 우리들을 위해 발언하고 용기를 내시는 지인분들을 위해서도, 우리를 위해서도 옳은 일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 거역할 수 없는 페미니즘의 물결이 계속되어야한다고 믿는다. 성소수자들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생명들까지, 암수의 섭리에 갇힌 모든 생명들이 함께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한다. 그 때 우리가 했던 화장이 징그럽고 추한 것일지라도, 그것으로 우리 삶의 모두를 알고있다 생각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쉰을 목전에 둔 지금의 나조차도, 여전히 나를 모른다. 오래도록 자기 혐오에 갇혀 못난 스스로를 드러내 보일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나는 단체의 대표도 아니고, 하다 못해 신념을 가지고 앞장서는 운동가도 아니다. 그저 당신들처럼 모두와 함께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늙고 병든 트랜스젠더라는 이름의 한 인간일 뿐이다. 우리의 희망과 꿈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역설을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시간이 걸리고, 또 텅 빈 변기 위에 앉아 울고 또 울어야할 일이다.

부디 우리들의 존재로, 
거울 속 나를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우리들의 이 어리석음으로 
페미니즘의 이 거대한 물결이 훼손되거나 오역되지 않기를 바란다. 
트랜스젠더들 중에 누군가의 사죄를 딛고 올라서야하겠다면, 
나이든 트랜스젠더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를 드린다.

혐오가 더 이상 신념이 되지 않기를, 
우리들의 믿음이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 널리 퍼지기를. 
그래서 다시 또 부둥켜안고 울 수 있는 서로가 되기를.

사랑만이, 이긴다.

*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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