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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에서 유색인종 여성으로 일한다는 것

"버클리에서 배운 급진보주의는 내 삶에서 그 흔적을 감췄다"

  • 김태성
  • 입력 2018.12.03 10:52
  • 수정 2018.12.03 10:54
ⓒHuffPost

동생처럼 여기는 친구가 내게 물었다. ”지금 일하는 곳의 분위기는 어때?” 내 거실에 있는 회색 소파에 앉아 파스타를 먹고 녹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대학교 2학년생인 그녀는 테크계 디스토피아를 대표하는 ‘Bay Area(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의 한 벤처투자업체에서 조만간 인턴십을 시작할 예정이다.

나는 우선 ”글쎄...”라고 운을 뗀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 지 난감하다. 이것저것 머리를 스쳐 간다. 그리고 직장에 대한 내 종합적인 태도를 잘 표현하는 의견을 그녀에게 말한다. ”남성들이 너무나 많아.”

나는 작년에 버클리에서 화학 생물학 학위를 땄다. 그러나 방황했다. 나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목청이 큰,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외로 내빼는 22세 졸업생이었다. 커리어로는 전혀 관심이 없는 분야를 전공했던 것이다. 제대로 된 언론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전통적인 저널리즘 일을 찾는 데 성공할 확률은 낮았다. 그렇다고 베이 지역을 떠날 생각도 없었다. 자신에게 물었다. 앞으로 무얼 해야 할까?

그러다가 터무니없는 임대료 때문에 허덕이는 수많은 베이 지역 젊은이처럼 테크계 언론인이란 일선에 들어섰다.

버클리에서 배운 급진보주의는 내 삶에서 그 흔적을 감췄다. 오히려 나로 인한 지역인들의 고통을 정당화하는 데 급급해졌다. 그들은 평생 살던 터전을 실리콘밸리 기업들, 그리고 그 기업에서 종사하는 이들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궁지에 몰렸다. 나는 이런 부조리한 제도로 이익을 보는 사람 중의 하나가 나 자신이며 그 결과 내가 속한 동남아시아계 커뮤니티까지 초토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했다. 이해받지 못하고, 동료의식도 존재하지 않는, 외톨이가 될 각오를 해야 하는 그런 일터로 나는 매일 향했다.

나는 졸업 후 첫 1년 동안 세계적인 테크놀러지 회사들에서 종사했다.

내가 이전부터 느꼈던, 이 업계에 속한 남성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게 곧바로 증명됐다. 그들의 수는 여성에 비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았고 단지 남성이란 이유로 권리를 주장했다. 실리콘 밸리에는 유색인종 여성 수가 높지 않다. 어쩌면 그래서 몇 되지 않는 그들과 더 쉽게 동지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직장에 나간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능력이 넘치는 유색인종 여성을 여럿 만났고 그 커뮤니티에 속하게 됐다. 첫 프로젝트 당시 회의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한 라틴계 여성과 친해졌다. 그녀는 내 멘토가 됐다. 홀로 지내는 내가 안타까웠던지 그녀는 함께 점심을 하자고 제안했다. 긴장이 스르르 가셨다. 내가 회의에서 무시당할 경우 그녀는 격려의 말을 잊지 않았다. 또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여성과 남성을 소개해줬다. 내가 속한 부서는 거의 백인으로만 가득했지만, 그녀는 내가 그런 환경에서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도와줬다.

그녀의 멘토링과 다른 동료/선배들의 도움 덕분에 끔찍하게 여기던 일터가 기대되는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한 유색인종 여성의 성공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여성들과 남성들을 만났다. 아직도 그때를 기억하면 놀라울 뿐이다.

그러나 참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유부남들의 역겨운 시선이 특히 그랬다. 뚫어지게 내 몸을 응시하는 그들의 시선 말이다. 회의도 문제였다. 여성 동료의 말을 막거나 무시하는 남성(주로 백인)이 입을 한번 벌리면 그 회의는 끝이었다. 백인 여성으로부터는 협조는커녕 유색인종 여성을 향한 경쟁적인 태도만 보였다. 내 성과 내 성공에 대해 꼭 ‘다른 세대이기 때문에’라고 토를 다는 선배들도 있었다. 내가 만들어낸 성과는 그만큼 가치가 떨어진다는 표현이었다.

더 짜증 나는 건 그들이 나를 무슨 ‘젊고 깨인’ 주제를 통달한 구루로 여기는 것이었다. 한창 유행인 밈(meme)이나 랩 음악, 또 젠더 이슈 등 자기들이 잘 모르는 게 떠오를 때마다 무조건 내게 질문하는 거였다.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이 ‘lit’라는 단어를 트위터에 공유했을 때 나는 그 단어의 어원을 밝혀야 했다. 또 남녀 성소수자들은 성 정체성의 이슈화를 사회적 조작으로 의심한다는 점을 점심마다 설명해야 했다. 

물론 나를 괴롭히는 사람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백인이 우월인 기업 문화에서는 이 같은 문제가 거의 일상이었다. 회사들은 더 진보적이고 더 포용적인 문화를 지향했고 그런 이상을 공유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은 나와 같은 유색인종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이토록 예상치 못한 이슈가 많았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가장 많은 죄의식을 안긴 건 다른 것이다. 그건 테크계에서 종사하고 그 발전을 돕는 내가 그 지역을 터전으로 알며 살던 유색인종의 추방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테크계 일을 찾아 더 많은 이가 베이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임대료는 물론 물가 자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테크계에 종사하는 사람도 그렇거니와 비 테크계 종사자에게는 재난도 이런 재난이 없다. 마켓 스트리트에서 폐품을 줍는 늙은 중국인 할머니를 볼 때마다, 쇠퇴라는 말로도 모자랄 정도의 허름한 오클랜드 동부 지역에 사는 중국계, 동남아시아계 이민자들을 생각할 때마다 창피하고 마음이 아프다. 나름대로 내 커뮤니티를 위해 노력하지만 역부족인 느낌이다.

동생/친구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야?”라고 몇 시간 동안의 대화 끝에 묻는다.

솔직히 말해 나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열정을 내 커리어에 어떻게 가장 잘 반영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아직 확신이 없다. 다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내 동생/친구 같은 다른 젊은 여성을 지지하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격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프포스트US의 글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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