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트랜스젠더인 노마치 미네코 씨는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었다. 20년 간 독신생활 끝에 찾아온 감정이었다. 단순한 하우스메이트를 원한 건 아니었다. “좀 더 확실한 관계, 즉 결혼을 원했어요.” 연애결혼은 노마치 씨와 맞지 않았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바로 ‘연애감정이 없는 사람과 살자는 것’. 이게 ‘남편’ 다카하시를 선택하게 된 이유다. 다카하시는 게이다.
그들은 집에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져도 싸우지 않는다. 질투 같은 소모적인 감정으로 대립하지도 않는다. ‘코로나 이혼’이 급증한다지만, 그들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노마치 씨는 최근 ‘결혼이라는 녀석’이라는 책을 펴냈다. 책에는 ‘생활공동체로서 결혼’을 추구하는 그의 목소리가 담겼다. 연애를 생략하고 게이 친구와 결혼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경험담으로도 읽힌다. 노마 씨를 만나 결혼에 이른 과정과 현재의 삶, 자기다운 삶이란 어떤 것인지 들어봤다.
있는 그대로 자기답게.
자주 들리는 문구다. 정말로 무리 없이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런 문구 또한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자기다운 건 무엇일까? 자기가 대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특히 연애나 결혼에 관해서는,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보통’ 기준에 괴리감을 느끼는 이들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책이 나왔다. 작가 노마치 미네코의 ‘결혼이라는 녀석’이다.
이 책에는 연애를 거치지 않고 ‘생활 공동체로서의 결혼’을 추구해 연애를 생략하고 게이 친구와 결혼한 트랜스 여성의 경험담이 담겨 있다.
노마치씨를 만나 어떻게 결혼하게 됐는지, 현재의 삶은 어떤지, 자기다운 삶이란 어떤 것인지 들었다.
‘결혼이라는 녀석’
- 지금의 상태를 ”결혼(가칭)”이라 표현하시는데요. 어쩌다가 지금 같은 결혼을 택하셨나요?
= 20년 동안 독신 생활을 했는데, 그 중 마지막 5년은 혼자 사는 게 싫어진 참이었어요. 누군가와 같이 살려면 하우스메이트를 구하거나 결혼하는 게 방법일텐데, 하우스메이트보다는 좀 더 확고한 관계를 원해서 결혼이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연애 결혼은 저한테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연애를 분리한 결혼‘을 하자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역으로 생각해서, ‘나를 연애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게이가 좋겠다고 생각했죠.
나와 상대 모두 절대 연애 감정을 가지지 않지만 서로 기분은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을 생각했을 때 떠오른 게 지금의 ”남편(가칭)”인 다카하시입니다.
- 지인에서 결혼 상대가 된 후 달라진 점이나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 그 시점을 경계로 확 달라진 것은 없는데요. 기억에 남는 일은 있어요. ‘시범 동거 기간’에 처음 집에 갔는데, 15분 동안 서로 스마트폰만 보면서 침묵했죠. (웃음)
- 15분이나요? 그런 상황은 오랜 친구라고 해도 어색할 수 있을 거 같아요.
= 저쪽도 어색함이 없었고, 저도 ‘이 사람 기분 상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안 했어요. 그래서 ‘이 사람과 결혼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죠.
- 연애 감정이 없으니 실제로는 하우스메이트 관계 같은데요. 굳이 ‘결혼’을 한 이유가 있나요?
= 연애로 하는 결혼이 아닌 걸 아는 사람들도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고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축하해주더군요. 하우스메이트가 된다고 누가 축하해주지 않잖아요. 축하 받고 싶었다는 게 아니라, 결혼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훨씬 쉽게 인정해주는 (주거공동체) 형태라면, 그걸 반대로 이용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우스메이트’는 임시 상태 느낌이니까요.
- ‘결혼이라는 녀석’이란 건, 결혼을 이용한다는 뜻이군요.
= 같은 집에 산다는 점만 보면 결혼도 하우스메이트도 실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타이틀‘이 다른 것이죠. 저는 감히 과장된 ‘타이틀’을 붙여보고 싶었어요.
원만한 부부 관계의 비결은, 서로 연애 감정이 없다는 것
- 실제로 ”결혼(가칭)”을 해보니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 생각보다 극적으로 바뀌었는데요. 하루 일정이 앞당겨져서 효율적으로 일하게 됐어요.
혼자 살 때는 새벽 4시에 자서 아무리 빨리 일어나봐야 아침 10시 정도였어요. 그리고 오후 1시쯤 배고파져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그 다음 카페에 가서야 드디어 일을 시작했죠. 밤 10시 정도까지 느릿느릿 일하다가, 밥 먹다가, 다시 일하는 그런 생활이었어요.
하지만 동거인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런 생활에 심리적으로 저항이 생기더라고요. 아침 식사도 만들어주는 타이밍에 먹지 않으면 나쁘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은 밤 1시에 자고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춰 일어나고 있어요.
- 요리는 다카하시씨 담당인가 보네요.
= 지금까지 2년 반 함께 살면서 전 한 번도 요리한 적이 없어요. 원래 요리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좋아하지도 않는데 무리하면서 하다가 여러 번 좌절했기 때문에 이제 안 해요. 하지만 동거인에게 맡긴 후로 식사도 건강해지고 있어요.
- 처음 함께 살기 시작한 2년 반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변화가 있나요?
=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됐어요. 별로 아이나 동물을 귀여워할 것 같은 이미지는 아니지만, 고양이 소리를 내면서 ‘냥냥아~’ 부르기도 하고요.
- 이상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다카하시씨는 고양이에게 질투 같은 건 하지 않나요?
= 우리 사이에 연애 감정이 없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없네요. 다만 제가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소리 내는 것 가지고 그만 하라고 뭐라고 할 때는 있어요.
- 사이가 좋으신 것 같네요.(웃음) 요즘은 ‘코로나 이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불화가 쌓인다는 부부들의 이야기도 들리는데요. 두 사람은 어떤가요?
= 불화가 생기지 않아요.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지만, 기본적으로 2층과 3층에 나눠서 살고 있고, 식사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오래 같이 시간 보내는 일도 없거든요.
작은 불만은 여러가지 있지만, ‘얼굴 보기 싫다‘든가 ‘오늘은 말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싫은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