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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들끓고, 돼지 사체 널려있었다 : '동물복지 축산’ 스페인의 돼지 농가 실체가 폭로됐다

동물권단체가 2년 간 스페인 전역 농가 30곳을 잠입 취재했다.

  • 이소윤
  • 입력 2020.11.19 11:01
  • 수정 2024.03.22 10:01
유럽 내 최대 돼지고기 생산국 중 하나인 스페인에서 돼지가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있다는 폭로가 나왔다. 사진은 목에 종양이 생겨 앉지도 못하는 카스티야라만차 한 농가의 돼지.
유럽 내 최대 돼지고기 생산국 중 하나인 스페인에서 돼지가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있다는 폭로가 나왔다. 사진은 목에 종양이 생겨 앉지도 못하는 카스티야라만차 한 농가의 돼지. ⓒTros los Muros 제공

돈사 내에는 쥐가 들끓고, 죽은 돼지 사체가 곳곳에 널려 있다. 축구공만 한 종양을 단 돼지는 앉지도 못하고 서성대고, 염증으로 두 눈이 아예 붉게 변해 버린 돼지도 여러 마리 눈에 띈다. 배설물 위에 돼지 사체가 널부러져 있고, 사체를 고양이가 뜯어먹는 모습도 포착됐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사육환경이 ‘동물복지 축산’의 선두주자로 이름을 날린 스페인에서 폭로됐다. 스페인은 유럽 최대 돼지고기 생산국 중 하나로 윤리적 양돈으로 유명한 ‘이베리코 흑돼지’의 나라다. 이번에 논란이 된 것은 전통 방식 이베리코 흑돼지가 아닌 공장식 축산으로 사육한 돼지들이다.

돼지들은 염증으로 인한 안구질환, 종양, 탈구, 탈장 등의 심각한 질병 등을 앓고 있었다.
돼지들은 염증으로 인한 안구질환, 종양, 탈구, 탈장 등의 심각한 질병 등을 앓고 있었다. ⓒTros los Muros 제공
몸도 돌릴 수 없는 좁은 스톨에 갇혀 있는 임신사 돼지들.
몸도 돌릴 수 없는 좁은 스톨에 갇혀 있는 임신사 돼지들. ⓒTros los Muros 제공

11월16일(현지시간) 스페인 동물권단체 ‘트라스 로스 무로스’(Tras los Muros)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스페인 축산농가 30여 곳을 잠입조사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공장: 산업적으로 착취 당하는 돼지’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글과 사진, 영상에는 충격적인 돼지 사육실태가 담겼다. ‘벽의 뒤편’이란 뜻의 트라스 로스 무로스는 스페인 사진기자 아이터 가르멘디아(Aitor Garmendia)가 주축이 된 동물해방 프로젝트팀이다.

이번 폭로는 트라스 로스 무로스가 북동부 지역인 아라곤부터 중북부 카스티야이레온, 중남부 카스티야라만차 등 스페인 전역의 농장 30곳을 조사한 것으로 스페인 내 사육농가 8만6000여 곳 중 17%가 이곳에 있다. 이들은 “돼지 중 일부는 심각하게 다친 것으로 보였으며 탈장, 농양, 탈구, 관절염 또는 괴사 조직과 같은 심각한 질환을 앓고 있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들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돼지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통받고 있었다. 영상은 돼지들의 사육공간을 임신사, 분만사, 육성·비육사 등으로 구분해 소개하고 있었다. 임신사의 어미 돼지들은 몸도 돌릴 수 없는 스톨(감금틀) 안에서 기진맥진 해 누워있었다. 그나마도 이 공간은 다른 돈사들보다 깨끗한 편이었다.

분만사에선 죽은 새끼돼지들의 사체가 여럿 포착된다. 갓 태어난 새끼돼지가 배설물 위에 누워있거나 배수로에 여러 마리가 죽어있는 식이다. 가장 처참한 상태를 보인 곳은 육성·비육사로, 탈장되거나 피부가 괴사한 돼지, 고름을 흘리고, 종양을 매달고 있는 돼지가 다수였다. 백골 상태가 되도록 방치되거나 다른 동물들에 의해 사체가 훼손되는 모습도 담겨있었다.

죽은 채 방치된 새끼 사체들이 여러 분만사에서 발견됐다.
죽은 채 방치된 새끼 사체들이 여러 분만사에서 발견됐다. ⓒTros los Muros 제공
스페인 내에서 사육되는 돼지의 수는 약 5000만 마리로, 유럽 전체 내애서 가장 많다.
스페인 내에서 사육되는 돼지의 수는 약 5000만 마리로, 유럽 전체 내애서 가장 많다. ⓒTros los Muros 제공

 스페인의 돼지고기 산업은 지난해 매출 150억유로(약 19조6000억원)를 넘어설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 독일이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으로 인한 육류수출 금지 조치를 취하며, 유럽 내에서도 최대 돼지고기 수출국이 될 거라는 예상이 나왔다.

스페인의 돼지 사육수는 유럽 전체에서 가장 많고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다. 공식 통계를 보면, 2020년 초 스페인 내에는 약 3100만 마리의 돼지가 사육되고 있었으며 이는 도살된 돼지의 수가 아니라 일정한 시기에 실제로 살아있는 돼지의 수를 계산해 얻은 수치였다.(관련기사: 스페인, 돼지가 사람보다 많아져) 스페인에서 소비되는 돼지고기의 95%는 이런 공장식 축산농장에서 온다.

트라스 로스 무로스는 열악한 사육환경이 일부 농장의 문제인지 확인하기 위해 동일한 곳에 두번씩 들어갔다. 이들은 “한 농장에서 수많은 돼지 사체들을 목격했고, 다시 확인 하기 위해 3개월 뒤 방문을 했지만 사체들은 같은 장소에 누워있었다. 아무도 사체들을 치워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이 잠입한 농가의 돼지들은 EU가 금지한 단미수술이 되어 있었다.
이들이 잠입한 농가의 돼지들은 EU가 금지한 단미수술이 되어 있었다. ⓒTros los Muros 제공

한편 동물보호단체 ‘유로그룹 포 애니멀스’는 이번에 폭로된 농가들이 유럽연합(EU)의 가축사육 법령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고 영국 매체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단체의 농장동물 자문 수의사는 “영상 속 농가들은 EU 법이 규정한 사육환경과 고통 기준을 위반하고 있고 있다. 사육 돼지들의 대부분이 EU가 금지한 단미 수술을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돼지 농가에서는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돼지들이 스트레스로 서로의 꼬리를 물어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꼬리를 자르는데(단미 수술), 이는 돼지들에게 큰 고통과 트라우마를 일으켜 EU에서는 금지하고 있다.

트라스 로스 무로스는 이런 열악한 축산농가의 실태가 정부의 캠페인, 로비 등에 가려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잠입수사, 몰래카메라 등으로 농장이나 도축장의 현실을 폭로하지만 육류업계의 홍보전은 대중에게 매우 다른 이미지를 선전한다. 값비싼 선전 덕분에 농장동물의 이야기는 통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공수정 기구들이 임신사 입구 바닥에 흩어져 있다.
인공수정 기구들이 임신사 입구 바닥에 흩어져 있다. ⓒTros los Muros 제공

스페인 양돈 산업은 최근 수년간 EU로부터 수백만 유로의 홍보비를 지원받고 있다. 유럽위원회는 지난해 ‘돼지고기의 지속가능성과 동불복지에 대한 논란’을 해결하겠다며 500만 유로(약 65억원) 지원을 승인하기도 했다.

스페인 백돈농가를 대표하는 무역기구 ‘인터포크’는 즉각 반박 성명을 내고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 스페인 농가들에 대한 불법적인 공격”이라며 “이들의 영상은 8만 개가 넘는 돼지 농장의 현실과는 맞지 않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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