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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회계법인 '언스트앤영'이 여성 임원들 상대로 성차별적인 교육 진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언스트앤영 측은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보도한 언론을 비판했다.

언스트앤영 세미나 자료
언스트앤영 세미나 자료 ⓒISABELLA CARAPELLA / HUFFPOST

여성들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해서는 안 된다. 보기 좋은 옷을 입어야 하지만 짧은 스커트는 금기다. 성욕은 정신을 엉망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건강해 보이면서도 보기 좋은 몸매를 유지해야 하며 머리는 단정하게, 손톱에는 매니큐어를 바른 상태여야 한다.

모두 글로벌 회계법인 언스트앤영(Ernst & Young)이 지난해 여성 임원 30여 명에게 건넨 충고다. 이는 여성 임원들이 하루하고도 반나절 동안 참석해야 했던 리더십과 권위에 대한 세미나에서 언급된 내용 중 일부에 불과하다. 그 내용에 놀란 참석자 한 명은 무려 55페이지에 달하는 발표 자료를 허프포스트 미국판에 전달했다. 이 자료는 여성들이 스스로 어떻게 변화해야 직원 대다수가 남성인 직장에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집중했다. 

PPP(힘-존재감-목적, Power-Presence-Purpose)라는 제목의 이 세미나는 미투 운동이 한창 이어지던 지난해 6월 미국 뉴저지주 호보컨에서 진행됐다. 미투 운동 촉발에 따라 언스트앤영을 비롯한 대기업들은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정책을 강화했고 일부 기업들은 성차별이나 성폭력 피해 발생시 피해자과 가해자합의하도록 강제하는 일을 금지했다. 이로 인해 해고된 남성 직원들도 있었다.

언스트앤영은 전 세계에 직원 27만명을 두고 2019 회계연도 한 해에만 364억달러를 벌어들인 세계 최대 회계 법인 중 하나다. 아직 미투 고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기업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세미나가 열리기 몇 달 전, 언스트앤영의 임원이었던 제시카 카수치가 한 남성 임원에게 성폭행당한 일과 관련해 회사 측과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카수치는 수년 전 내부적으로 성폭행 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이 문제는 사건 발생 3년 뒤인 지난해에야 해결됐다. 언스트앤영 측은 카수치가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폭로한 뒤에야 가해 남성을 해고했다.

문제의 세미나에서 이런 주제는 다루지조차 않았다. 단지 여성 직원들의 자기 개선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이다.

허프포스트는 세미나 내용에 대해 언스트앤영 측에 문의했으나 ”현재 세미나 내용을 검토 중이며 해당 자료가 사용된 건 2018년 6월이 마지막이었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언스트앤영 측은 해당 세미나가 남녀 직원 모두에게 제공 중인 여러 교육 과정 중 하나라며 ”외부 업체에서 기획한 세미나를 일부 여성 직원들이 요청해 제공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언스트앤영은 또 공식 성명을 통해 세미나에 대한 허프포스트의 설명 방식에 반대한다며 ”맥락에서 벗어난 설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작 세미나에 참석한 여성 직원들은 호평을 쏟아냈다고 덧붙였다. 언스트앤영의 커뮤니케이션팀은 현 직원 두 명의 세미나 후기를 공유하기도 했다. 물론, 이들의 후기 내용은 긍정적이었다.

언스트앤영 측은 허프포스트에 ”우리는 여성들을 비롯한 모두가 소속감을 느끼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깊이 헌신하고 있다. 이와 반대되는 주장은 모두 100% 거짓이다”라고 전했다.

'몸매를 드러내지 말라'
"몸매를 드러내지 말라" ⓒISABELLA CARAPELLA / HUFFPOST

″몸을 드러내지 말라”

언스트앤영의 전 임원 제인은 ‘회사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조언을 제공할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세미나에 참가했다고 한다. 제인은 세미나 이후 언스트앤영에서 퇴사했으나 업무상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을 우려하며 가명 사용을 요청해왔다.

제인은 세미나 이후 한 남성 파트너로부터 ”남성 비하적인 행사였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를 되돌아보니 그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아이러니하게도 그 세미나는 오히려 여성 비하적이었다”라고 말했다. 

허프포스트가 받은 자료에 따르면 언스트앤영은 외부 컨설턴트인 마샤 클라크를 고용해 여성 직원들에게 인맥을 넓히는 방법, 협상하는 법, ”더 강하고 성과를 잘 내는 팀을 구성하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세미나 자료에 젠더 논바이너리(gender nonbinary,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제3의 성)가 언급되지 않았던 점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 또 이 자료는 여성들이 인종이나 성적 지향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 역시 명시하지 않았다. 

이 자료에는 외모 관리에 대한 조언이 가득했다. 36쪽에는 자신을 세련되게 꾸미고, 단정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며 손톱에는 매니큐어를 칠하고 체형에 맞는 옷을 입으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다만 ”성욕은 남녀 모두의 정신을 뒤죽박죽으로 만들 수 있으니 몸매를 과시하지 말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여성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이 건강하고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라고도 조언했다. 

제인은 여성이 하는 말의 핵심에 남성들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살을 드러내지 말라”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살을 드러내면 ”섹스에 대한 생각 때문에” 남성들의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제인은 이 조언을 듣고 자신이 ”고깃덩어리가 된 기분”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13쪽에는 성차별적인 대화 방식을 나열하고 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여성들은 회의에서 ”말을 별로 하지 않으며 말을 하더라도 횡설수설해 요점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라고 한다. 반면 남성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진심으로 믿기 때문에 여성과 달리 길게 말할 수 있다”고 묘사했다. 또 여성들은 남성들처럼 효과적으로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며 손을 든 채 (절대 오지 않을) 자기 차례를 기다리곤 한다”라는 문구도 있었다.

'말은 짧게, 차례를 기다려라'
"말은 짧게, 차례를 기다려라" ⓒISABELLA CARAPELLA / HUFFPOST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지 말라”

세미나 진행 전, 여성들에게는 ‘남성성, 여성성 설문지’가 주어졌다. 직장 안팎에서 스스로 어떤 성향을 보이는지 점수를 매기는 것이었다.

설문지에 나열된 ‘남성성이 드러나는 특징‘에는 ”리더처럼 행동한다”, ”공격적이다”, ”야심 차다”, ”분석적이다”, ”리더가 지녀야 할 능력이 있다”, ”강한 성격의 소유자다”, ”누군가에게 맞설 의지가 있다” 등이 있었다. 반대로 ‘여성성이 드러나는 특징’으로는 ”다정하다”, ”발랄하다”, ”순진하다”, ”연민을 잘 느낀다”, ”잘 속는다”, ”아이를 좋아한다”, ”순종적이다” 등이 나열됐다. 이중 리더로서의 능력과 관련된 묘사는 단 하나도 없었다.

세미나 참석자들이 받은 설문지
세미나 참석자들이 받은 설문지 ⓒISABELLA CARAPELLA / HUFFPOST

제인에 의하면 이 세미나는 여성들이 여성성이 드러나는 행동을 하지 않거나 남성성을 보이려 한다면 남녀 모두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고 한다. 성공하고 싶다면 이것을 염두에 두라는 뜻도 담겨 있었다.

세미나를 진행한 마샤 클라크는 해당 자료에 대한 허프포스트의 문의에 답변을 거부했다. 클라크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그는텍사스주의 한 기술 기업에서 21년간 임원으로 지내다 2000년부터는 컨설턴트로 일해왔다. 

1980~90년대 텍사스 기술업계에서 몇 안 되는 여성 임원으로 일하는 것은 성차별 지뢰밭에 던져지는 것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클라크는 당시 경험 때문에 고정 관념에 맞서기보다는 피해가기를 권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태도를 지금도 고수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언스트앤영은 클라크의 PPP 세미나 자료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그와 협력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클라크는 자신의 링크드인(비즈니스 소셜미디어) 페이지를 통해 지난 2일에도 언스트앤영에서 워크숍을 진행했다고 밝힌 바 있다. 

″남성과 마주 보고 대화하지 말라”

제인은 지난해 세미나 도중 직장에서 남성과 교류하는 방법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적은 메모를 허프포스트에 공유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회의 도중 남성 직원에게 직접적으로 맞서지 말라. 여성들과 달리 남성들은 그런 행동을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회의 전이나 후에 만나라.
  • 남성과 대화할 때는 대각선 자리에 다리를 꼬고 앉아라. 마주 보고 대화는 금물이다. 남성들은 이 역시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 너무 공격적이거나 거침없이 얘기하지 말라.

제인은 당시 ”당신의 생각을 상냥하게 전달해야 한다. 당신은 완벽하고 순종적인 아내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세미나가 ”여성을 고정관념대로 정의하고 있는 것 같았다”면서 ”(모두가) 잘 웃고 그 누구에게도 맞서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여성의 두뇌가 남성보다 6~11% 작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제인은 세미나 당시 이런 발언이 왜 나왔는지 알 수 없었으며 발표 자료를 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여성의 두뇌는 시럽을 빨아들이는 팬케이크 같아서 무언가에 집중하기 어려운 반면, 남성의 두뇌는 더 많은 시럽(정보)을 담을 수 있는 와플과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한다. 

록펠러대학교 신경과학자인 브루스 믹유엔은 ”두뇌 크기와 (기능은) 상관이 없다”라며 여성들에게 뇌 크기를 언급하는 유일한 이유는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느끼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남성들을 피해 일하자”

언스트앤영은 그간 ”깨어있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자처해왔다. 일하는 여성들을 조명하며 ‘여성의 발전을 가속화하자’(#WomenFastForward)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하는가 하면, 설문조사 등을 통해 여성 직원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의 바람과 크게 달랐다. 언스트앤영의 2018 회계연도 발표 자료에 따르면 여성인 주요 클라이언트 서비스 파트너 중 여성은 12%에 불과하며 고위급 간부인 여성은 그보다 조금 높은 20.4%로 드러났다. 핵심 직급에 여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 회계 업계 전반의 문제다.

제인은 언스트앤영에서 노골적으로 성희롱을 당한 적은 없으나 성차별은 확실히 경험했다고 밝혔다. 남성 동료들로부터 고립당했고 중요한 회의에 들어가지 못했으며 심지어 클라이언트와 대화할 때는 ‘누가 말을 걸기 전까지 말하지 말라’는 말까지 들었다. 

문제의 세미나에 참가한 다른 여성 직원들 역시 그런 일이 언스트앤영에서는 비일비재하다고 증언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성 직원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일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는 것이다.

언스트앤영은 제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구체적인 주장에 답할 수는 없으나 철저한 수사를 통해 회사 정책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난 직원에 대해서는 ”가혹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여성들을 ‘실패작’처럼 느끼게 하는 법

여성들이 일하기 시작한 이래, 업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조언하는 전문가들은 늘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성들에게 외모와 행동을 보다 남성같이 하라는 조언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깨에 패드를 넣고 골프를 배우라는 식이었다. 그러다 최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조언을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페이스북 최고 운영 책임자 셰릴 샌드버그다. 샌드버그는 여성들에게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야망을 품으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조언은 여러 세대에 걸친 여성들이 스스로를 ‘실패작’으로 느끼게 했을 뿐이다. 최근 연구 결과, 여성의 발목을 잡는 건 그들 스스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 전반적인 문제라는 분석도 나왔다. 

남성이 설립하고 운영하는 조직은 남성의 자신감과 자기주장을 높게 평가하는 반면, 여성의 자신감은 부정적으로 보는 경항이 있다. 남성을 평가할 때는 잠재력을 바탕으로 평가하지만, 여성들의 경우에는 이미 성취한 일로만 평가한다. 또 아주 최근까지는 조직 내 성희롱 피해를 무시하는 일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았다.

사실 여성이 기업에서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는 이유는 패션 스타일이나 협상 능력, 남성과 대화할 때 서 있는 자세와는 별 관련이 없다. 그러나 여성들이 더 잘해야 한다는 편견은 여전히 팽배하다. 개인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매력적인 통념 때문이다. 그러나 데보라 콜브 시몬스 컬리지 명예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콜브는 여성이 성공하려면 조직 전체가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인은 언스트앤영에서 나와 다른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환경에) 천천히 적응하고 있다”라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언스트앤영이 일부 관행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 세미나 자료를 공개했다며 ”언스트앤영이 달라지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언스트앤영의 입장

언스트앤영은 허프포스트의 보도가 나온 지 사흘만인 23일(현지시각)에야 입장을 밝혔다. 언스트앤영 미국 대표이자 경영총괄 파트너인 켈리 그리어는 이날 언스트앤영 전직 직원 일동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해당 세미나에 대한 언론의 부정적인 표현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라고 전했다. 허프포스트는 해당 이메일을 입수해 그 내용을 살펴봤다. 

그리어는 이메일에 첨부한 5분 분량의 영상에서 ”해당 세미나의 조언을 따랐다면 나는 현재 이 자리에 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해당 세미나에 참가한 여성 직원 수는 전체의 1%도 되지 않지만 내용 검토를 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러운 실수”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수를 인지한다”라면서도 언론이 언스트앤영의 기업문화를 ”불공평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게 묘사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영상은 같은 날 오후 언론에 대한 비판을 모두 제외한 짧은 버전으로 편집돼 재공유됐다. 

언스트앤영에서 퇴사한 전 직원 두 명은 그리어의 입장 발표에 탐탁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전 직원들은 ”그런 입장문을 낼 줄 알았다”라면서 ”일부러 특정 세미나 내용에 초점을 맞춰 문제를 최소화했다. 문제는 기업문화 전체로 퍼져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허프포스트US의 ‘Women At Ernst & Young Instructed On How To Dress, Act Nicely Around Men’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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