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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선 들을 수 없는 말 - 중증·정신장애인 시설 실태 조사원의 기록

  • 비마이너
  • 입력 2018.06.05 15:31
  • 수정 2018.06.05 17:38
ⓒhuffpost

올해 초, 국가인권위원회가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인권위가 중증장애인거주시설 45개, 정신요양시설 30개를 무작위로 추출해 2017년 7월부터 10월까지 거주인 1500명을 대상으로 1:1 면담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거주인의 10명 중 6명이 강제입소 당했으며 20년 이상의 장기 거주자도 상당수였다. 자신이 퇴소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거주자 절반은 즉시 나가서 살고 싶다고 응답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비마이너는 앞으로 총 6회에 걸쳐 당시 실태조사에 조사원으로 참여했던 이들의 글을 싣는다. 보고서 속의 수치화된 언어가 차마 전달하지 못한 경험의 언어를 이들의 글로 전한다. 조사원은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그곳의 냄새를 기록하여 전함으로써 그들이 만났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우리는 이제까지 접한 ‘시설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스펙터클’을 넘어, ‘시설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내가 경험해 본 격리 생활은 2년간의 군 생활이다. 군에 들어가 넉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전방으로 가게 됐다. 해안바닷가 산꼭대기 낙후된 초소.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전화기도 없었다. 3개월 정도 가족, 친구들과 연락을 못 하니 내 몸뚱이가 온전히 이곳에 내맡겨진 기분이 들었다. 생활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밀려왔다. 매일 매일 자기성취와는 무관한 일들. 그렇다고 딱히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 상황. 단지 감옥엔 갈 수 없어 들어온 곳에서 나갈 날짜 세는 것이 공통의 희망이었다. 스무 명 남짓의 남성들을 외진 바닷가에 붙잡아 놓고 위계질서 아래 살게 하니 스트레스를 못 참는 사람도 생겼다. 탈영시도와 성폭행 사건도 발생했다. 휴가를 나오면 나는 눈 맞는 강아지 마냥 집에 들러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미리 연락해 놓은 친구들을 만났다. 안에서 먹을 수 없었던 음식들을 먹고, 못살게 굴던 선임병 욕도 하고, 재밌었던 일화들을 실컷 떠들어 댔다. 밥을 먹고 싶은 시간에 먹고, 만나고 싶은 친구를 만나고,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하는 구보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조깅을 할 수 있다는 것, 정해진 어투가 아니라 하고 싶은 말들을 하며 크게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것. 그렇게까지 눈치가 안 보이는 것. 그것이 그렇게나 기뻤다.

30년에서 40년. 어느 사람들이 시설에 격리되어 산 해의 숫자다. “여기서 100년을 넘게 산 것 같아.” 한 시설 거주인에게서 내가 들은 말이다. 나는 그의 경험을 오롯이 체감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아직도 군 생활 2년을 다른 때보다 몇십 배 더 길게 느끼는 것처럼 그분도 그때의 그 시간들이 뭘 해볼 수가 없었던 시간들, 붙잡혀 있던 시간들, 아침에 일어나도 좀처럼 흘러가지 않는 시간들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여기서 무기징역을 살았습니다.” “이유 없이 잡아 와놓고 40년 동안을…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는 겁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나가고 싶지)” 그곳에서 내 귀로 똑똑히 들은 말들이다. 대부분 가족이 없거나 장애가 있는 분들이 오랜 기간 갇혀 지내야 했다.

갇힌 것은 몸뿐만이 아니었다. 꿈도 갇혀 버렸다. “나가면 무얼 하고 싶으세요?”라고 물으면 지금 몸으로는 불가능할 법한 30년, 40년 전 시설에 들어오기 전에 해봤던 일들을 꺼내놓으신다. 시설 안에서 “뭘 해볼 수 있겠다”라거나 “나가서 뭘 해보고 싶다”고 만드는 체험이 없었던 까닭일 터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종종 ‘탈시설 욕구 조사’라는 말로 거주인들에게 다가가야 할 때 일종의 뻔뻔함을 느낀다. 우리의 ‘무관심’, ‘준비되지 않음’을 그들의 ‘비욕구’라는 말로 살그머니 감추는 말처럼 느낀다. 시설 생활을 정말 참다 참다 못 견디겠는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말이어서 그렇다. 개인의 의사 중요하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욕구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처음엔 안 나간다고 손사래 치던 분들도 “이제는 활동지원사가 몇 시간 함께 할 수 있다. 살 곳도 지원받을 수 있다. 같은 장애 정도로 바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 ‘나는 나가서 살 수 없을 것’이라는 굳은 확신도 “이래도 괜찮냐”, “시간은 어디서 몇 시간 나오냐”라는 물음으로 바뀐다. 감금과 격리, 동정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오고 싶으세요? 안 나오고 싶으세요?”라고 묻는 것은 “여기가 죽기보다 싫진 않으시죠? 견딜 만은 하시죠?”라는 물음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사실, 격리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 장애가 있어 가족들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경우, 나이가 많고 나가도 혼자 살아야 하는 경우였다. 나는 이분들에게서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나는 끝났다”, “(자기 팔과 다리를 가리키며) 이게 이런데…”, “나가면 사람들이 쳐다볼 거고”. 정말 어쩔 수 없어 시설을 찾은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는 그럼에도 이런 말들은 다름 아닌 바로 시설이 낳고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나는 탈시설한 장애인들에게서 “힘들다” 소리는 들었어도 이런 자기포기의 말들은 듣지 못했다.  

장애인수용시설. 사회에서 ‘버려진’이라는 낙인을 들고 살아야 하는 격리 생활은 자기포기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제아무리 시설 노동자가 선하고 좋은 뜻을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안의 사람들에게 줄 수 없는 것이 있다. 자신을 바라보는 편견에 맞설 수 있는 힘,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실제로 해볼 수 있는 것, 그런 것들을 해나갈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보는 것들 말이다.

시설에서 사는 사람들을 만났던 날, 저녁을 먹다 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 자기와 같이 살고 있는 형들의 대단함을 새삼 느끼고 있다고. 무슨 말인가 싶어 들어보니 자기가 아는 한 형은 오늘 시설에서 만난 사람들보다 장애 정도는 더 심하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닌데 몇십 년간 살던 시설에서 나오겠다고 결심도 하고, 그동안 밟아보지 못한 지하철도 이용하고, 자립주택생활도 구해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는 거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 몰라봤던 그 일상의 말들을 다시 듣고 싶었다. “지하철을 어떤 것을 타고 왔다, 내 집은 어딘데 어떻게 왔다, ○○을 해보면 어떨까, 요즘은 뭘 해보고 있어”라는 말들. 이 말들이 한 형에게는, 한 친구에게는 몇십 년 만의 탈출이 낳은 말이다. 자기를 규정하고 가르던 그 척도를 움직여 일으킨 말이라 생각이 드니 다시금 그 말들을 느끼고 싶어졌다.

* 장애인언론 비마이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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