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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여기, 남극에 오고 말았다

남극에 도착하기까지 지옥의 3일을 겪었다

한국에서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를 걸쳐서, 그린피스의 쇄빙선 ‘아틱선라이즈호’를 탑승. 3일 동안의 계속된 멀미와의 전쟁을 극복하고 드디어 남극에 도착했습니다. 남극이 훼손되진 않았는지 감시와 탐사활동을 벌이면서 남극의 위대함도 잔뜩 담아올 계획입니다. 4주간의 여정, 함께 해주실 거죠?

[어쩌다 남극③]

 

“El avión aterrizará pronto. Bienvenidos a Punta Arenas! Disfruta de tu viaje.”(“비행기가 곧 착륙합니다. 푼타 아레나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행복한 여행이 되시길.”)

칠레 시간으로 새벽 12시 반. 한국을 떠난 지 무려 47시간 만에 드디어 남극으로 가는 관문,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에 도착했습니다.

그린피스 아틱선라이즈호
그린피스 아틱선라이즈호 ⓒ그린피스

공항에서 차로 20분 정도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달리다 보면 한적한 항구가 나타납니다. 입구에서 티켓을 보여주고 5분 정도를 더 걸어들어가자 저 멀리 배가 한 척 보입니다. 진초록으로 칠해진 뱃머리에 흰색 글씨로 ‘ARCTIC SUNRISE’라고 적혀 있습니다. ‘아틱선라이즈’ - 앞으로 4주 동안 제가 일해야 할 직장이자, 생활해야 할 집이자, 생존해야 할 공간의 이름입니다.

출항 전, 비상 상황에 대비한 안전 교육을 받는 모습
출항 전, 비상 상황에 대비한 안전 교육을 받는 모습 ⓒ그린피스

선상 생활, 타이타닉 vs 캐리비안의 해적

처음 주변 사람들에게 배를 타고 남극에 간다고 했을 때 보이는 반응은 크게 두 개로 나뉘었습니다. 아주 많이 부러워하거나 아주 많이 걱정했죠. 한 쪽은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호화 유람선 같은 걸 탈거라고 생각했고, 다른 쪽은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하는 해적선 비슷한 배를 탈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 또한 배를 타 본 경험이라곤 소규모 여객선을 몇 번 타본 게 전부였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제 배 위에서의 생활은 두 영화와는 아주 거리가 멉니다.

‘아틱선라이즈호’에서의 생활은 마치 고등학교 기숙사 같습니다. 개개인의 자유는 조금 제한되고, 지켜야 할 규칙들이 많지만 모여서 수다떠는 재미가 있는 그런 생활 말입니다.

아틱선라이즈호 선상 생활
아틱선라이즈호 선상 생활 ⓒ그린피스

배에서는 누구나 같은 시간에 기상해야 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기상!” 외치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됩니다. 삼십 분간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면 8시, 청소 시간이 다가오죠. 자발적으로 복도, 화장실, 식당, 라운지 등 구역을 맡아 배 구석구석을 쓸고 닦습니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나면 9시, 본격적으로 업무가 시작됩니다. 배의 선원들은 각자 맡은 역할을, 저를 포함한 캠페이너들은 캠페인룸으로 불리는 회의실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여느 때와 같이 일을 합니다.

정해진 스케줄에도 좋은 점이 있다면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각각 30분씩 티타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보통 다들 메스룸(Mess room)으로 불리는 식당에 모입니다. 늘 과일과 음료, 스낵 등 먹을거리로 넘쳐나서 제가 배에서 가장 애정하는 공간입니다. 아, 식당에서는 재밌는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은 식사 시간과 커피 브레이크를 제외하고는 늘 비어있지만, 휴대폰이나 노트북 등 일거리를 가져와서는 안됩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매일 부딪히며 지내는 사람들끼리 오롯이 교류하고 대화하기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죠.

식사를 하는 공간, 메스룸-Mess room
식사를 하는 공간, 메스룸-Mess room ⓒ그린피스

그리고 오후 6시, 드디어 공적인 하루 일과가 끝나는 시간입니다. 이후엔 개인이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냅니다. 라운지에 모여 카드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기도 하고 각자 방에서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하죠.

임시로 마련된 캠페인룸에서 일하는 캠페이너들
임시로 마련된 캠페인룸에서 일하는 캠페이너들 ⓒ그린피스

10미터 높이의 파도와 지독한 멀미

보통 배에서의 하루라면 위와 같이 흘러갔겠지만, 처음 푼타 아레나스를 떠나 남극에 도착하기까지의 3일간은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지옥의 3일이었죠.

제가 배에서 쓰는 캐빈(선실)은 화장실 바로 옆 칸입니다. 처음 배정받았을 때는 샤워실과 가까워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밤낮으로 동료들이 속을 게워내는 소리를 고스란히 들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남미에서 남극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해역 중 하나인 ‘드레이크 해협’을 거쳐가야만 합니다. 이 해협의 별명인 ‘세탁기’에 걸맞게 장장 이틀 동안 평균 높이 10m에 달하는 파도를 견디다 보면 가장 숙련된 선원들조차도 뱃멀미를 앓게 되죠. 실제로 3등 항해사인 제 룸메이트 시냐(Sinja)도 드레이크 해협을 지나는 첫날은 방 안에서 꼼짝도 못했습니다. 저 또한 꼬박 3일을 침대에 누워 일렁이는 파도 그림자를 보며 크래커 몇 조각과 물로 버텼습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던 회색빛 바다도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다시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좌우로 45도씩 기울며 선반 위의 물건을 쓸어내리던 선체도 균형을 되찾았죠. 그리고 저 멀리, 사방이 물로만 둘러싸여 있던 시간 동안 무수히 그리워하던 그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밟고 서있느라 존재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던 단단하고 굳건한 땅, 대륙 – 드디어 남극에 도착한 것입니다.

선실 창문 밖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남극대륙
선실 창문 밖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남극대륙 ⓒ그린피스

카메라가 감동도 담을 수 있었다면

한여름인 2월의 남극은 백야 현상을 보입니다. 밤 9시가 돼도 해가 지지 않죠. 아틱선라이즈호가 남극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녘. 뱃멀미로 창백해진 얼굴을 한 채지만 남극의 첫 모습을 보기 위해 모두가 갑판 위로 올라갔습니다. 분명 올라오던 계단까지는 다들 흥분해서 시끌벅적 했는데, 막상 밖으로 나오자 정적이 이어졌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자 이유를 알 수 있었죠. 잔잔하게 물결치는 바다, 꼭대기가 어딘지 보이지도 않는 거대한 설산, 낮게 가라앉은 안개, 유유히 떠다니는 푸른 얼음조각들, 무언가 불쑥 물 위로 떠올랐다가 사라지며 만들어진 파동... 그때 누군가 외쳤습니다 “고래다!”

ⓒ그린피스

진짜 고래였습니다. 마치 TV 다큐멘터리에서처럼 검은 등을 드러냈다가 물을 뿜고 다시 물속으로 유유히 사라졌죠. 그 모습을 찍으려 휴대폰을 꺼내 몇 번이고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러고는 곧 깨달았죠. 보통 때는 별거 아닌 일상도 조금의 필터와 터치 몇 번으로 그럴듯하게 바꿔주던 이 카메라 어플로는 제가 지금 느끼는 감동의 십분의 일도 담을 수가 없다는 것을요.

사실 이후로도 남극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은 하루에도 몇 번씩 고래와 펭귄, 물개 등 남극의 아름다운 생물들을 마주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직접 눈으로 보는 만큼의 감동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을 수가 없었죠.

만약 제가 느끼는 남극의 감동을 카메라에 그대로 담는 일이 가능했다면 ‘남극보호’ 캠페인을 알리는 일이 지금보다 수 십 배는 더 수월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랬다면 제가 남극까지 직접 오게 될 일도, 시시각각 색을 바꾸는 거대한 설산과 유유하게 아틱선라이즈호 앞을 유영하는 펭귄 무리를 보며 감탄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앞으로 4주간, 저는 최선을 다해 남극의 모든 모습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남극에 도착한 그린피스 현지원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남극에 도착한 그린피스 현지원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그린피스

*지구상에서 가장 큰 보호구역을 남극에 만들기 위한 캠페인, #ProtectAntarctic의 항해기가 궁금하다면,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진짜 남극 이야기 – 고래, 펭귄, 물개가 주인으로 살아가는 지구 마지막 원시의 자연 이야기 – 는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글 : 현지원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남극해를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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