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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25일 10시 00분 KST

혼자일 땐 나를 '팔고', 결혼하면 배우자·자녀 '파는' 사생활 예능 한평생 사이클

늙어 다시 혼자 되니 또 '싱글'인 나를 판다.

혼자일 땐 나를 ‘팔고’, 결혼하면 아내(남편)를 ‘팔고’, 부모가 되면 아이를 ‘팔고’, 온 가족을 ‘팔고’, 다시 혼자가 되면 또 나를 팔고…. 연예인과 그 가족의 사생활을 보여주는 예능프로그램이 지상파와 케이블을 넘나들어 15개에 이르면서 한평생 나와 가족을 팔아도 될 상황이 됐다. 수년 전부터 인기가 치솟은 연예인과 가족 사생활 프로그램은 ‘미운 우리 새끼‘(에스비에스)가 시청률 19%(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하는 등 반응이 좋다. 남의 사생활을 엿보고 싶은 심리 등이 영향을 미친다. 친근함이 인기의 동력이 되면서 연예인들도 출연을 반긴다. 방송사들은 “출연료 외에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효자프로그램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후죽순 늘면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10대 딸과 ‘유자식 상팔자‘(제이티비시)에 나왔던 홍서범은 그 딸이 20대가 되자 ‘내 딸의 남자들‘(이채널)에 출연하고, 아내 조갑경과는 ‘아내가 뿔났다‘(채널에이)에 나오는 등 한 가족이 여러 조합으로 이곳저곳에 출연하는 촌극도 벌어진다. 연예인과 가족 출연 프로그램, 이대로 괜찮을까? 그 실태를 가상의 ‘나’를 내세워 1인칭 시점으로 정리했다.

 

한겨레

■ 싱글일 땐 나를 팔았다

나 싱글 연예인. 언제부턴가 사생활을 팔기 시작했다. 처음엔 실력으로 주목받고 싶었다. 하지만 연예인이 넘쳐나는 시대에 ‘부모빽’ ‘기획사빽’ 없는 내가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어쩌다 나간 프로그램에서 ‘싱글 라이프’를 보여줬더니 시청자들이 열광했다. ‘어, 나의 모습을 좋아하네?’ 용기가 생겼고, 사생활을 보여주는 데 부담이 팍 줄었다. 갈수록 욕심도 생겼다. 이미지 포장을 시작했다. 요가도 하고, 요리도 하고, 책도 좋아하는 척했다. 어느 순간 가식 떨지 말라는 악플이 등장했다. 털털한 이미지로 다시 궤도 수정을 했다. 평소 몸매 관리 때문에 고구마 두 개로 버티지만 방송에서는 뭐든 잘 먹는 척 폭식했다. 악플이 사라졌다. “카메라 앞에서 리얼은 없다”며 “시청자 반응을 살피며 이미지와 캐릭터를 만들라”던 회사의 전략이 맞았다. 사생활을 보여줬더니 협찬도 들어오더라. 제작진이 믹서기를 주기에 방송에선 평소 마시지도 않는 건강 주스를 갈아먹었다. 어떤 부부들은 집 공개 프로그램에 나간다고 가구회사에서 가구를 싹 다 바꿔줬다는데, 정말 사생활 한번 까발렸더니 얻는 게 쏠쏠했다.

 

한겨레

■ 결혼해선 아내(남편)을 팔았다

결혼을 하고 나니 싱글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사생활을 팔 수 있는 부부 예능이 싱글 예능의 두배였다. 남편(아내)과 ‘동상이몽-너는 내 운명 시즌3’(에스비에스)에서 부부 일상 보여주고, ‘아내의 맛‘(티브이 조선)에서는 요리도 좀 하면 됐다. 결혼하면 부부만 있나? 장모 혹은 장인과는 ‘백년손님‘(에스비에스)에 나가고, 시어머니와는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문화방송)에서 고부갈등을 보여줬다. 혼자일 때보다 가족 구성원이 늘어났으니 ‘출연 가지치기’는 좋은데 어째 콘셉트 잡기는 어려웠다. 부부 사이는 티격태격해야 시청률이 오른다는데, 우리 부부 사이가 너무 좋았다. 이래서야 반응을 얻기가 힘들잖아! 과장하기 시작했다. 더 서운한 척, 더 힘든 척, 더 요리 못 하는 척했다. 남편 잔소리는 방송에서 세 배로 늘었다. 상황이 과장될수록 기사가 많이 나고, 시청률은 높은데, 내 남편(아내), 부모님을 향한 악플이 느는 것은 괴로웠다. 지금은 종영한 종합편성채널 관찰 예능에 남편과 출연한 배우도 “방송에서 남편이 나쁜 사람이 됐다”고 괴로워하지 않았나. 비호감 가족 되기 전에, 더 욕먹기 전에 그만둬야지 하면서도, 포기는 쉽지 않다. 눈 한번 질끈 감으면 그보다 더한 것들이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혹시 아나, 추자현 부부처럼 단숨에 스타 부부가 될지.

한겨레

■ 부모 되니 아이 내세워 호감도 키웠다

비호감이 될 경우에도 회심의 카드는 남아 있다. 아이를 동원하면 된다.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아이와 함께 예능에 나갔다. 우리나라 연예인들은 아이를 티브이에 출연시키고 싶어서 안달이지 않나. 외국 연예인들은 자아 형성 안 된 아이를 미디어로부터 보호하려고 하는데, 우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에스엔에스)에 아이 사진을 열심히 올린다. 처음에는 뒷모습으로 간을 보다가, 반응이 좋으면 옆모습, 앞모습까지 드러내는 게 순서란다. 피디 등 제작진에게 출연 로비 경쟁도 치열하다.

나도 따라 했다. 아이 덕분에 비호감 연예인도 호감이 되고, 아이 덕분에 끊겼던 드라마 섭외도 다시 오고, 아이 덕분에 온 가족이 먹고 사는 다른 연예인 가족들을 보니 안 할 수가 없었다. 1~7살일 때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아빠와 시간을 보내고, 10대가 되니 ‘둥지 탈출‘에서 여행도 보내줬다. 20대가 되니 ‘내 딸의 남자들’에서 내 딸 연애도 시켜줬다. 아이들을 24시간 감시하는 게 성장에 악영향을 줄까 우려는 했지만, 아이 덕분에 집안이 일어서는데 그게 대수랴. 아이들도 나쁠 건 없었다. 부모 덕에 방송 나갔더니 수시 전형으로 대학도 가고, 그 어렵다는 배우로도 데뷔했다. 이경규 딸도, 조재현 딸도, 강석우 딸로 그랬는데 나라고 왜 안돼? 시청자와 언론이 아이 인권 문제, 연예인 직업 세습에 대해 아무리 지적해도 바뀌지 않으니 갈수록 맘 편하게 비판에도 귀를 닫았다.

 

한겨레

■ 나이 들어 손주와 출연…다시 혼자 돼선? 또 나를 팔았다!

한때는 사생활 그만 팔고 본업에 충실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게 나 같은 일이 별로 없는 연예인한테는 주 수입원이니 자꾸 찾게 되더라. 제작진도 다른데 나왔던 사람을 또 찾는다. “정말 보여주고 싶은 거물급 연예인들은 사생활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며 노출에 거부감 없는 나를 계속 찾았다. 소이현-인교진 부부도 아이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더니 지금은 부부끼리 ‘동상이몽’에 나오지 않나.

하지만, 나이가 드니 슬슬 걱정은 됐다. 더 이상 팔 곳도, 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도 없고, 남편(아내)도 늙었고 누가 내 사생활을 궁금해할까? 가끔 ‘인생다큐 마이웨이’ 같은 교양 다큐에 출연해 단발성으로 잠시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 예능도 가지치기한다. 할머니가 되니 손주와 출연하라더라. ‘할머니네 똥강아지‘에서 열심히 손주와 하루를 보내며 또 꾸준히 사생활을 팔았다. 손주가 크니 이젠 정말 끝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장노년기의 싱글들이 모여 사는 프로그램(‘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이 나를 유혹하더라. 아, 연예인과 그 가족의 사생활 예능 세계는 무궁무진하구나. 제작진의 무한 확장 능력에 감탄하던 순간, 무릎을 탁 쳤다. 그래, 나이가 들었을 뿐이지 난 다시 싱글이 된 거야! 싱글로 시작해 돌고 돌아 다시 싱글이 된 나는 다시 싱글프로그램에서 나를 팔기 시작했다. 아, 평생을 나를, 남편(아내)을, 아이를, 가족을 팔며 살 수 있는 행복한 한국 연예인 인생이여! 그런데 평생 사생활 예능에만 출연해 온 내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