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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8월 07일 17시 13분 KST

'놀면 뭐하니?'로 촉발된 '부캐릭터 열풍'에 대중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유

싹쓰리, 둘째 이모 김다비, 카피추 등등.

MBC
그룹 싹쓰리 비룡, 린다G, 유두래곤

얼마 전 방송인 남희석은 페이스북에 동료 김구라의 방송 태도를 겨냥한 발언을 했다. MBC ‘라디오스타‘에서 ‘초대 손님이 말할 때 본인 입맛에 맞지 않으면 등을 돌린 채 인상을 쓰고 앉아 있다‘는 것이다. 남희석은 이를 ‘자기 캐릭터를 유지하려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라디오스타’ 제작진은 김구라가 실제로는 매우 배려심 깊은 사람이라며 남희석이 언급한 방송 태도 등은 해당 프로그램 만의 캐릭터이니 이해해 달라는 취지의 입장을 냈다.

이제 ‘(방송용) 캐릭터’는 방송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모두에게 그 의미가 합의된 단어다. 출연자의 실제 성격과 방송에서의 모습이 다르다는 걸 드러내기 시작한 건 ‘서세원쇼’ 류의 가십성 토크 예능이 늘어나고 온라인 커뮤니티가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하면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활발한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졌고, 풍부한 의견 공유와 방송이 태생적으로 ‘대본 놀음‘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정착됐다. 방송인이 프로그램 내외에서 한 행동을 지적당할 때 ‘대본‘과 ‘캐릭터’를 방패막 삼는 건 그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은 방송을 보면서도 방송을 믿지 못하게 됐다. ‘대본‘으로 대표되는 캐릭터와 실제 방송인의 괴리는 ‘진짜’를 내놓으라는 요구만을 남겼다.

최근 방송가에서 이 ‘괴리’가 ‘부캐릭터‘라는 상품이 되어 불티나게 팔리는 건 아이러니하다. ‘부캐릭터’란 말은 본디 게임에서 왔다. 이용자가 입맛대로, 혹은 레벨에 맞춰 설정을 변경할 수 있는 게임에서 마냥 한 캐릭터를 육성하는 건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용자들은 제2, 제3의 부캐릭터를 만들어 처음부터 다시 키운다. 이용자가 같기 때문에 본캐릭터의 특성이 부캐릭터에도 묻어날 수 있지만, 이 둘은 게임의 세계에서 완전히 다른 존재다.

방송가에서도 부캐릭터는 본캐릭터와 완벽히 결별하면서 시작한다. MBC ‘놀면 뭐하니?’가 혁신적인 이유는 방송에 ‘속고만 살았던’ 시청자들에게 속는 행위 그 자체를 놀이로 만들어 제공한 덕이다. 카메라가 켜지든 꺼지든 한결 같은 태도로 ‘미담제조기‘라 불리는 방송인 유재석은 ‘유고스타‘, ‘유르페우스‘, ‘유산슬‘, ‘라섹‘, ‘유두래곤‘이 되어 ‘유재석‘을 기대했을 시청자들을 대놓고 속인다. 다만, 이 대담한 사기는 ‘놀면 뭐하니?‘만의 세계관 속에서 펼쳐진다는 점에서 게임과 비슷하다. 속겠다고 합의한 자들이 ‘놀면 뭐하니?’ 세계에 입장하는 것이다.

 

 

사실 방송가에 부캐릭터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놀면 뭐하니?‘의 김태호 PD가 2005년부터 13년 동안 이끌었던 MBC ‘무한도전‘에는 ‘부캐 특집‘으로 불러도 좋을 회차들이 다수 방송됐다. 출연진의 캐릭터를 별명화했고, 일부러 학교 등 특정 장소를 기반으로 세계관을 짠 프로그램도 있었다. ‘공포의 쿵쿵따‘는 군복을, ‘여걸식스‘는 교복을, ‘해피투게더’는 사우나 가운을 각각 출연진에게 입히고 말투와 행동을 설정했다.

예전 부캐릭터들과 ‘놀면 뭐하니?‘가 다른 점은 뭘까? ‘놀면 뭐하니?‘는 암묵적 합의에 지나지 않았던 방송과 대본, 캐릭터와 관계 자체를 단숨에 상품으로 부상시켰다. 유재석은 이 프로그램에서 드러머 ‘유고스타‘, 트로트 가수 ‘유산슬‘, 라면 요리사 ‘유라섹‘, 하피스트 ‘유르페우스‘, 라디오 DJ ‘유DJ뽕디스파뤼‘, 뮤지컬 배우 ‘유샘‘, 치킨 요리사 ‘닥터유‘, 혼성 아이돌 그룹 멤버 ‘유두래곤’ 등으로 변신했다. 대중은 30년 예능계에 몸 담은 ‘유재석’이라는 익숙한 콘텐츠 대신 부캐릭터들과 그 서사를 소비한다. 이제는 질릴 법한 도전 콘셉트가 부캐릭터와 만나 최신 트렌드를 만드는 중이다.

덕분에 부캐릭터 시장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래퍼 ‘마미손‘은 ‘놀면 뭐하니?‘보다도 부캐릭터로 먼저 나왔고, 개그우먼 김신영은 ‘둘째 이모 김다비‘를 들고 나왔으며, MBC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 한혜진, 화사는 각각 조지나, 사만다, 마리아라는 부캐릭터를 띄우려는 중이다. 개그맨 허경환과 이상훈은 ‘억G와 조G’라는 부캐릭터 그룹을 결성해 관심을 받고 있다.

배우 유아인은 주연을 맡은 영화 ‘#살아있다’ 속 캐릭터 오준우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고, 앞서 SBS ‘하이에나’에 출연한 배우 김혜수는 극 중 역할인 정금자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을 보여줬다. JTBC는 ‘놀면 뭐하니?‘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와 방송인 박명수에게 입힌 예능 ‘할명수’ 론칭을 예고하기도 했다.

Mnet
래퍼 마미손

 

‘인스턴트‘라는 특성은 분야를 막론하고 ‘뜨고 있는’ 부캐릭터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부캐릭터는 도전 등 미션 하나가 끝나면 소멸된다. 물론 부캐릭터가 대중의 요청으로 향후 다시 소환될 여지는 있다. 그러나 한 부캐릭터가 연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오늘날의 시청자들은 피로감을 느낀다. ‘놀면 뭐하니?’의 최근 프로젝트 ‘싹쓰리(이효리, 비, 유재석이 만든 그룹)’는 일회성임을 못박고 시작했기에 빛났다.

더 근본적으로 피로감을 줄 수 있는 건 부캐릭터의 홍수다. 이미 방송 팬들은 예능 하나가 성공하면 방송가 전체가 같은 프로그램을 찍어내는 익숙한 광경을 걱정한다. 음식 예능, 육아 예능, 관찰 예능, 경연 예능, 여행 예능까지 전개 과정은 똑같은데 출연진만 돌려 끼운 방송들이 넘쳐나는 게으른 현실에 아직 방송가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놀면 뭐하니?’와 부캐릭터의 전성시대가 또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어 낸 시점, 이런 우려에 방송가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